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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재즈 음악에는 한국 정서가 박혀 있죠"

입력
2015.04.1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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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입 한국의 재즈 지형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 전진용씨.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21세기 초입 한국의 재즈 지형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 전진용씨.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음악 프로듀서, 크리에이터, 작 - 편곡, 연주, 공연 ㆍ 콘텐츠 기획, 강연, 집필. 스스로가 규정하는 자신의 활동 영역이다. 재즈라는 키워드로 펼칠 수 있는 콘텐츠를 쫙 망라해 놓은 것이기라도 하듯. 그 사람, 전진용은 그 같은 다면적 규정을 뭉

뚱그려 스스로를 ‘재즈 경영가’라고도 일컫는다. 용어의 적합성 내지는 엄밀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여하튼 간에 그는 21세기 초입 한국의 재즈 지형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꽤 오래 전부터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명색에 재즈 기사를 연재한다니 이래저래 관련 자료가 제법 들어오긴 하지만 그는 초지일관 꿋꿋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 사람으로 남달랐다. 해묵은 숙제를 해결하는 마음으로 그를 초대했다.

“대학부터 (재즈에) 관심을 가졌어요. 집안의 반대로 원하던 건축과에 못 가 방황 중 피아노의 즉흥 연주를 접하고 자유의 이미지에 끌렸죠. 특히 마일스 데이비스의 쿨 재즈에 빠져들었죠.”대입 전까지는 그림, 특히 만화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재즈를 어떤 자유의 이미지로 받아들였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거꾸로 음악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어느 스타일리스트의 삶을 알고 나서 그의 재즈 속으로 들어간 식이었죠. 내게 재즈는 목표가 아닌 도구(tool)에 가까우니까요.”. 외가 쪽으로 화가, 피아니스트, 소설가 등 예술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으나, 막상 자신의 집은 보수적이라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그나마 이과 쪽으로 갈 데리고는 건축 디자인쪽이 가장 근접했지만, 집에서 안정적인 의대나 기계과를 집요하게 원하는 바람에 타협책으로 결정한 것이 기계과였어요.” 그러나 그것은 음악과 본격 인연의 시작이었다.

“대학 가서는 음악 서클에 들어가 취미로 음악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2학년 마치고 입대해 밴드부에 들었죠. 거기서 음악 하는 친구를 만나 비로소 재즈를 알게 됐고요. 먼저 일본의 퓨전 밴드 카시오페아를 거쳐 마일스를 만났어요,”

3학년으로 복학했다. 마일스에 빠져드니 재즈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고는 도저히 배겨날 수 없는 상태가 찾아왔다. 그렇게 재즈 신이 강림한 그에게는 한참 뒤 버클리 음대 입학의수순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3학년 때 강변가요제 출전했고, 4학년때는 시실리(時失理)라는 퓨전 재즈 밴드에 잠시 몸 담그고 있기도 했어요. 1집까지 참여헸으나 집안의 반대로 접어야 했고….” 내면의 요구는 그러나 강인했다.

7시 출근해 오후 4시 퇴근한다는 그럴싸한 조건을 내건 모 대기업의 사원 공모 광고에 혹했던 것은 저 정도면 재즈를 놓지 않아도 되겠다 싶은 심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입사해 보니 실제 퇴근 시간은 오후 9시였다. 1년 버티던 그는 결국 퇴사하고 말았다. 이후 8년 동안 기나긴 설득 끝에 오를 수 있었던 유학길이었다.

그러나 돈이 없어 먼저 일본에 갔다.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학 비용을 차곡차곡 모을 요량이었고 실제 그리 되었다. 대학 시절 일어를 열심히 공부해 둔 덕이었다. 도쿄에서 홀로 살며 낮에는 길거리 전단 돌리기, 밤에는 식당일 등 하루에 최소 세 건 알바를 해 가며 학비를 벌었다.

그 곳의 음악 전문 학교 TCA는 학비만 해도 미국과 맞먹는 데였다. 나름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바에야 일본서 벌어 미국에 가자는 심산으로 1년을 “독하게” 아르바이트 해 가며 돈을 모았다. 2년 동안 편곡을 공부한 뒤 버클리 음대 뮤직 synthesis과 입학해 멀티 미디어, 사운드 디자인 등 주로 컴퓨터 작업을 위주로 공부했고 4년만에 졸업할 수 있었다. 다음 뉴욕으로 가 낮에는 일본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 밤에는 재즈 클럽이나 스튜디오에서 일하기를 1년여 하다 귀국한 것이다.

상당히 별난 재즈 입문기다. 특별한 경험이었던 만큼 소중한 통찰을 얻었다. “음악, 글쓰기, 요리가 내겐 똑 같아요.”일본과 미국을 전전하며 음악과 생활을 겸해야 하다 보니 그 기간 중 그가 거친 직업은 열댓 개를 헤아릴 정도였다. 그는 갖가지 직업을 융합한 것이다. 마치 퓨전 재즈처럼. “경계가 없어진 셈이,”이어 그는 선언하듯 말했다. “삶이 곧 콘텐츠”라고,

“현 시대의 흐름 자체가 융ㆍ복합적이지 않아요?. 제겐 반가운 시대죠. 곡 쓰기, 공연 기획, 경영과의 접목 등 재즈를 중심으로 여러 일이 가능했듯….” 그의 삶 자체는 무한 증식하는 콘텐츠라는 자신감이다.

그는 2004년 EBS-TV의 ‘공감’을 통해 본격 자신을 알렸다. 퓨전, 국악, 라틴을 나름 얼버무려 낸 5인조 밴드 ‘Find The Lost River(FLR)’가 그 구심점이었다. 기억 너머로의 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TV 출연 때는 최대 17인조 밴드로 몸피를 부풀리며 풍성한 사운드를 구사, 깊은 인상을 심었다. 길은 구비구비 이어진다.

“한국서는 미국에서 배운 음악을 잊어버리려 하죠. 서구 음악을 무조건 모방하는 것이 아닌, 한국 혹은 아시아인만의 음악을 해야 한다는 믿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요.” 아닌게아니라 FLR의 대표곡 ‘징기스칸’의 리듬은 국악의 7채 장단이다. 또 다른 곡 ‘Radio Galaxy’는 동양적 선율에 펑크 리듬을 가미했고. ‘사물 펑크(Samul Funk)’는 글자 그대로 사물놀이와 펑크 음악을 결합시킨 것이다. 라틴 음악처럼 자신의 정체성이 느껴지되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겠다는 꿈이다.

지난해 7월~12월 그가 띄워 올린 ‘서울 재즈 원더 랜드’(그의 표현을 빌면 융복합문화페스티벌)는 합정동의 클럽 ‘재즈다’를 별난 신명으로 가득 채운 무대였다. 매주 토요일 2시간씩 재즈사를 탐구하는 시간이었다. 암스트롱에서 팻 메스니까지 24명의 거장들을 1시간은 입담을 섞어 풀어헤쳤고, 다른 1시간 동안은 친분 있는 재즈맨들의 실제 연주로 들려주었다. 국내의 대표적 재즈 밴드 25개팀 150여명의 뮤지션들이 6개월 걸쳐 미국 재즈의 거장들을 라이브 음악으로 녹인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는 세계 최초라 자신한다.

재즈 원더랜드는 융복합 프로그램이다. 바로 재즈가 융합을 키워드로 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재즈를 한식, 특히 비빔밥으로 맛있게 설명하는 그의 수업이 융복합 그 자체다. “한식의 달인들은 재즈를 음악으로는 몰라도 직관적으로 이해하시죠.”물론 다양한 재즈 스타일이나 미학적 원리를 그가 한식을 원용해 풀어내고 난 뒤의 이야기다.

☞ 서울재즈원더랜드 하이라이트?보기

거대한 계획이었지만 그 페스티벌은 또 다른 출발의 예고편일 뿐이었다. “이제 한국의 재즈맨들을 테마로 해 계속 이어나갈 거에요.”

지난해 서울재즈원더랜드 때는 스폰서를 못 구해 1인다역을 해야 했다.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야 했던 것은 그 과정의 아픈 기록이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니 스폰(스폰서 물색 작업)이 아예 불가했어요. 5년 준비한 건데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어 독한 마음으로 강행했어요.” 취지에 공감한 뮤지션, 자원 봉사자들에 큰 빚을 졌다. .

2010년의 저서 ‘재즈스타일’(새빛에듀넷 刊)은 재즈를 광의의 예술 현상으로 풀어 일반의 눈높이에서 소개한 대표적 저서다. 재즈적인 문화 혹은 시대적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그는 본다 “재즈는 모바일 시대에 가장 적합한 철학적ㆍ미학적 기반을 갖고 있을뿐더러 삶의 방식으로도 유효하기 때문이죠.” 자신의 저서 <오감 재즈>에도 상술돼 있는 지론이다.

그는 자신을 일컬어 “예술과 현실의 가교 역할”이라고 했다. 21세기를 움직이는 근본적 동력으로서 재즈라는 미학적ㆍ철학적 원리를 그가 터득한 것은 일찌기 1999년이다. 이제 그는 확신한다. “재즈는 다음 시대를 열어줄 패러다임”이라고.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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