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경기라는 상품을 어떻게 포장해 내놓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무궁무진해진다. 스포츠 산업화 속 스포츠와 디자인의 결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총 10회에 걸친 '스포츠, 디자인을 입다' 기획을 통해 한국 프로스포츠의 가치를 높인 사례를 조명한다.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요. 관중이 분산되지 않아 꽉 찬 느낌인데다 응원 소리도 집중 된 느낌이에요. 눈으로도 귀로도 힘을 얻었습니다. 없던 힘도 나겠던데요?"
지난달 25일 수원 삼성과 우라와 레즈(일본)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1차전 경기가 열린 수원월드컵경기장. 경기를 마치고 경기장을 빠져 나오던 수원 공격수 염기훈(32)은 활짝 웃으며 이 날의 소회를 전했다. 신예 권창훈(21) 역시 "관중의 응원소리가 집중돼 선수들 역시 마지막까지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처음 뛴 선수들도 아닌데 때 아닌 '경기장 예찬'은 왜 터져 나왔을까. 비밀은 바로 '2층 없는 경기장'에 있었다. 수원은 올해부터 경기장의 2층 구역을 폐쇄했다. 지난해 관중 동원 1위 (총 관중 270,675명·평균 관중 19,334명)를 기록한 수원이지만 44,047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의 2층은 대부분 비어있기 일쑤여서 관중의 경기 몰입도가 줄어든다는 지적이 많았다.
비단 수원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K리그 구단들이 사용하는 홈 구장의 대다수가 2002 한일월드컵 개최를 목적으로 지어진 ‘대형 경기장’. 따라서 상대적으로 관중이 적은 K리그 경기에서는 언제나 휑한 모습일 수밖에 없었다. 66,806석의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FC서울도 3층 관중석을 폐쇄하고 팀 상징인 붉은색과 검은색 통천으로 채웠다.
● "경기장 도착 순간부터 감동이었다"
하지만 수원의 시도가 더 주목 받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디자인'이다. 목적은 비슷하지만 다양한 의미를 집어 넣어 선수와 서포터의 자긍심을 높였다. 수원 경기장에 들어선 순간 축구수도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을 담은 새로운 슬로건 'Home of Football'과 창단 20주년 기념 엠블럼, 그리고 수원의 우승 역사(K리그 4회, AFC 챔피언스리그 2회, FA컵 3회)가 펼쳐졌다. 여기에 서포터 '프렌테 트리콜로'의 대표 이미지도 더해져 ‘팬은 곧 구단 역사’라는 의미를 집어 넣었다.
수원 팬 20년 차인 이윤석(33)씨는 "경기장이 궁금해 두근대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2층 관중석 통천 설치 이야기는 지난해부터 접했지만, 팬들 대부분이 삼성 계열사의 광고로 채우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았다 "며 "언론을 통해 경기장 내 통천 디자인이 공개되니 많은 서포터들이 '빨리 개막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수원은 또 올해 창단 20주년을 맞아 경기장 외부 기둥에 연간회원들의 이름이 들어간 '히스토리 월(history wall)'과 레전드 선수들의 사진들을 부착했다. 이 씨는 "사실 팬들 사이에서는 이운재·곽희주의 이적 과정 등을 보며 구단이 레전드 예우에 박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며 "경기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들어서는 순간까지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수원 최원창 차장은 "통천 설치는 단순히 관중석을 가리자는 목표는 아니었다"며 "디자인을 통해 수원이 설정한 구단 운영 정책을 확인 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최 차장은 "공급을 줄여 경기라는 상품에 대한 가치를 높이는 게 1차적 목표"라며 "궁극적인 목표는 상품(경기)의 가치를 높인 뒤 통천을 다시 거둬 관중으로 가득 찬 경기장을 만드는 것" 이라고 밝혔다.
● 신축·리모델링으로 팬들에 한 발 더
'스타디움 코디네이션(stadium cordination)'의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수원 삼성과 서울 이랜드 등 국내 프로축구단의 벤치마킹 사례가 된 미국 프로축구(MLS) 시애틀 사운더스는 67,000석 규모의 홈구장인 센추리링크 필드의 관중석 상단을 폐쇄해 4만석 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폐쇄 영역에는 대형 광고를 넣어 수익을 얻고 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구장 신축과 리모델링 시 획기적인 건축 디자인을 도입해 팬 친화적 환경을 갖춰가고 있다. 제 10구단 kt wiz가 사용할 수원야구장은 현재 사업비 310억원 규모의 리모델링이 진행 중이다. kt 관계자는 "메이저리그 및 해외 선진 스포츠 시설의 건축 디자인을 벤치마킹 해 스카이박스, 외야 스포츠펍, 옥상 스탠딩석 등 최고의 야구 복합문화 공간을 조성했다"고 소개했다.
KIA는 지난해 개장한 챔피언스필드를 한 번 더 업그레이드했다. 특히 외벽에는 KIA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인트 컬러로 적용해 도색하고, 지붕은 감색 바탕에 하얀색 레터 마크(GWANGJU KIA CHAMPIONS FIELD)를 적용해 변경한다.
NC 다이노스가 쓰는 마산구장은 전체 좌석을 줄이되 홈 팬들의 선호도가 높은 좌석들을 늘렸다. 특히 치열한 경쟁률을 보이던 1루 내야석을 늘려 팬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여기에 '야구장 모임'을 원하는 팬들을 위해 외야 파티석을 400석으로 늘렸다.
2016년 시즌 개막 시점을 개장 시점으로 설정한 대구 신축 야구장은 미국 메이저리그(MLB)급 설계로 벌써부터 팬들의 야구 팬들의 기대를 얻고 있다. 국내 최초로 '팔각형' 형태의 경기장 외관에 '다이아몬드' 형태의 외야를 갖춰 미관과 편의성을 모두 잡겠다는 계획이다.
수원=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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