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경(40ㆍ피아노, 신서사이저, 장구)은 재즈 뮤지션이되 재즈와 결부되어 있는 독특한 방식으로 구별된다.
맨 처음 만난 서양의 재즈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보다 존재론적으로 자신의 삶을 녹여 낼 수 있는 재즈 혹은 다른 표현 양식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최근에 낸 책 ‘조금 특별한 음악 태교’가 그 중 하나일 것이다 . “분만 중에 전화가 왔다. 한참 진통으로 고통스러워 하다가 무통 주사를 맞고, 한시름 놓을 때였다. 육아 전문 잡지 M사인데, 태교에 좋은 음악을 선정해서 소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무사히 순산하고 산후 조리실에서 글을 써서 보냈다. 그렇게 ‘(피아니스트 엄마의) 조금 특별한 음악 태교’(이담 발행)가 시작되었다.” 이를테면 서문인 셈인데 조금 특별하다.
그렇게 출산하고 하니 클럽 활동은 불가했다. 일단 작년 가을 임신했을 때부터 원고를 쓰기 시작, 돌 지나고도 쓰고 탈고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외의 여가’를 선용한 대가였다. 블로그(naver/lnkjazz)에 일상을 기록하는 소박한 출발이었으나 돌 이후로도 계속 이어보자는 출판사의 요청을 받아 들인 것이다. “40대가 되니 기획의 마인드가 필요한 나이임을 깨달은 거죠.” 2003년 에세이 ‘재즈 캣(‘아가씨’란 뜻)’에 ‘글 쓰는 재즈 뮤지션’으로도 각인됐던 그녀가 11년 안에 엄마가 돼 밝히는 소감에는 세월의 무게가 씌워져 있었다.
그녀는 석사가 두 개다. 1999~2000년 미국 퀸스칼리지에서 재즈퍼포먼스 전공으로, 2007~2009년 중앙대 국악교육원 국악 전문 교육과에서 국악포괄교육 전공으로 취득한 학위다. 2001~2007년은 재즈 강의로 내실을 다지던 때다. 재즈에서 국악으로 이어진 다양한 길을 걸어왔지만 그녀를 아직 달큰한 음악을 들려주는 피아니스트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2005년 솔로 피아노 연주집 ‘플라워 포 유’로 데뷔했다. “대중을 의식해 뉴 에이지 풍으로 만든 음반인데, 거기 수록된 곡을 많은 사람이 아직 이야기 합니다.” 이후 다양하게 전개될 음악적 탐색의 출발점일 뿐이었다. 트로트 탐구 음반도 냈지만 이후는 재즈와 국악을 중심으로 한 월드뮤직을 탐색 중이다. 2012년 발표한 5집 ‘아이토리’는 하나의 답이다. 태평소, 피리, 피아노, 베이스, 드럼, 랩, 판소리가 어우러진 음반이었다. “이제는 내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이 모두가 젊어지려 노력하자며 스스로에게 가하는 채찍질로 믿고 있다. 자아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순간적으로 들기도 하지만 스스로 일침을 놓으며 그냥 가만히 있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아기 낳고 나면 호르몬이 변하는 것 같아요.” 밤에 재즈 클럽 못 나가는 대신 집에서 미디(MIDI)로라도 하는 작업의 근저에는 저 같은 자기 진단이 있었던 것이다.
작은 연구실을 만들어 아명을 딴 이름 ‘이노 랩’(이노는 아명, 랩은 연구실)을 붙이고 미래를 가늠 중이다. “미디 작업이죠 . 말하자면 기능성 작업이랄까요.” 새로운 미학적 지평에 도달하겠다는 차원이라기보다 내재돼 있는 음악적 자산을 기반으로 새 것을 만들어 내겠다는 말이다. 내년에 시작할 시리즈 작업은 구체적 대안이다. 환경 음악, 힐링 음악, 더 보이스 프로젝트 등 세 가지 목표가 있다. 정가, 판소리, 장고와 구음이 융합한 이 프로젝트는 9월 북촌 뮤직 페스티벌에서 시도했던 판소리꾼 이상화와의 듀엣 작업으로 큰 가능성을 보였던 터다.
“이른바 정통 재즈는 제 몫이 아닌 것 같아요. 여러 음악의 접목과 융합이 제 희망이랄까요. 재즈 피아니스트라기보다는 그냥 피아니스트로 불리고 싶어요. 재즈라는 말을 떼는데 10년 걸렸구나 싶네요.”
그녀는 새 지평을 말하고 있었다. “정통 재즈의 필수 요소인 스윙과 블루 노트는 학창 시절 다 한 것 아니에요? 다음에는 굿 음악을 해보고 싶어요.” 대금의 최상화, 판소리의 이상화, 장구의 임용주 등 국악의 젊은 기운들이 이미 자신의 진영에 포진하고 있다.
그녀에게서는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으려는 고도의 균형 감각이 느껴진다. “테크닉의 정점으로 몰아가는 음악보다 듣는 이에게 많은 여지를 남기는 앰비언트(ambient music) 계열이 좋아요.”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말기에 이르러 일체의 콘서트는 거부하고 녹음에 전념했던 정황을 자신의 선택에 비기고 싶어 했다. “제 음악이 원래 화려하게 클라이맥스를 지향하지 않았잖아요. 사람이 자기 일 하면서도 내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반복되면서도 조금씩 달라지는 음악….”
지금 딸 서해인은 39개월 된 아기가 받을 수 있는 거의 최대치의 사랑을 받으며 커가고 있다. 아주 특별한 태교를 제공한 어머니는 아이를 위한 재즈에도 눈을 떴다. 이제 창작의 근원이 딸에게서 나온다고 서슴지 않고 말할 정도다. 동요를 재즈로 편곡ㆍ연주하는 작업으로 목표를 설정한 것은 작은 일례일지 모른다. “음악을 위해 제가 사는 게 아니라, 제 삶이 음악을 선택한 거니까요.”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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