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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이름이 신인선? 사실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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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이름이 신인선? 사실 아닙니다”

입력
2017.01.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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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상상력 용인되지만

교양프로서 틀린 팩트를 소개

사료에 충실 정본소설 썼어요”

멀게는 허준부터 가깝게는 이순신, 덕혜옹주까지 역사 속 실제 모델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영화가 만들어질 때 이렇게 출판계가 들썩인 적이 또 있었을까. 26일 첫 전파를 타는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얘기다. 배우 이영애의 13년만의 TV 복귀작으로 한중 동시 방영으로 화제가 된 ‘사임당…’은 기존 역사 드라마가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돼 방영 후 원작이 인기를 구가했던 것과 달리, 팩션 사극을 표방했다. ‘원작이 없다’는 사실은 역으로 드라마 방영을 앞두고 역사적 고증에 상상력을 더한 소설, 인문서, 어린이 책이 십 수 종 출간되는 ‘사임당 붐’을 만들고 있다.

이 유행에 중견작가 이순원(60)이 동참했다. 최근 출간한 ‘사임당’(노란잠수함 발행) 앞에 ‘정본 소설’이란 타이틀도 달았다.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국내 굵직한 소설상을 휩쓴 등단 32년 차의 작가가 왜 이런 ‘기획’에 뛰어들었을까.

23일 인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드라마가 아니라 교양프로그램에 자극 받았다. 국모의 반열에서 ‘닥치고 존경’하는 현상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년 전쯤 KBS ‘역사저널 그날’을 보는데 패널들이 신사임당의 이름을 신인선이라고 소개하더라고요. 사임당 진짜 이름은 전해지지 않거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싶었는데, 설모 씨가 인터넷 강의에서 신사임당을 또 신인선이라고 말하더라고요. 고증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에서 틀린 팩트를 알려주니 불편했죠.”

어떻게 그런 팩트를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제가 강원도 출신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440년 전통을 자랑하는 대동계를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강원도 강릉 성산면 위촌리 출신의 그는 문단에서 곧잘 ‘전통 감성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사임당이 태어난 오죽헌과 불과 6km 떨어진 곳에서 자랐으니 어릴 적부터 많이 보고 들었을 수 밖에. “9살에 처음 오죽헌을 갔을 때 작은 집 한채 뿐이었어요. 10년 지나 19살에 갔을 때는 오죽헌 현판을 찾지 않으면 ‘진짜 오죽헌’을 못 알아볼 정도로 볼륨이 커졌죠. 오죽헌이 커진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신사임당이 평범한 여인에서 현모양처로, 교육의 아이콘으로 신화가 되는 모습을 지켜봤죠.”

당장 향토사학자 박도식 선생에게 고증을 의뢰했다. 사임당 관련 서적을 읽고, 원문 번역을 감수 받고, 여러 ‘카더라’ 통신의 진의도 확인했다. 무슨 자신감으로 소설에 ‘정본’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느냐는 질문에 그가 “사료에 충실한, 실제 사임당 삶의 정본으로 삼아도 좋다는 뜻으로 붙였다”고 답하는 이유다.

26일 첫 방영을 앞둔 SBS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의 한 장면. 드라마는 실존 인물 사임당에서 모티프를 따와 ‘조선판 개츠비’ 이겸과의 러브 스토리를 상상해 덧붙인다. SBS제공
26일 첫 방영을 앞둔 SBS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의 한 장면. 드라마는 실존 인물 사임당에서 모티프를 따와 ‘조선판 개츠비’ 이겸과의 러브 스토리를 상상해 덧붙인다. SBS제공

작가가 본 사임당은 “집 밖을 나가야 그릴 수 있는 산수화가의 대가, 드물게도 교육을 받은 여성 지식인”이다. “사임당은 안견 이후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에 견줄 만한 최고의 화가로 기록돼 있어요. 하지만 이후 성리학 노론 소론 동인 서인의 입장에 따라 현숙한 부인으로, 구한말에는 구국의 어머니로, 박정희 정권에서는 육영수 여사 이미지에 맞추는 현모양처가 됐습니다. 요즘에는 강남의 극성스러운 교육 어머니로 바뀌었는데, 시대의 성격에 따라 야사까지 만들어져 왜곡됐죠.”

고증을 끝낸 작가가 ‘역사 소설’을 쓸 때 어디까지 팩트를 기본으로 삼고 어디까지 상상력을 가미해도 좋을까. 그는 “19살에 결혼해 5달 뒤 아버지가 객사하는 ‘역사적 사실’은 바꿀 수가 없다”고 답했다. 상상을 가미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대화도 기록을 밑천으로 삼거나, 최소한 당대 풍습은 제대로 고증해 재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예컨대 소설 ‘사임당’에서 사임당의 어머니 용인 이씨와 아버지 신명화의 대화는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했고, 신명화가 부모 3년 상을 마치고 사임당에게 친필로 쓴 천자문 책을 선물한다는 설정은 당대 풍습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했다.

‘정본 소설’의 작가는 그러나, 팩션 사극 ‘사임당…’에 대해서는 “드라마적 상상력을 가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미디를 보고 왜 진지하지 않느냐고 비난하지 않잖아요. 드라마 제작진들이 ‘역사를 근간으로 만들었다’고 장담하지 않는 한, 고증 안 했다고 잘못이라 말할 순 없죠.” 그러니까, 드라마를 보다 역사적 사실이 궁금하면 그의 소설을 보란 말씀.

이왕 쓴 소설, 출간 시기를 드라마 방영에 맞췄냐는 질문에는 그는 “원래 방영이 (지난해)7월 예정이지 않았었나요”라고 되물었다. “한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후에 (방영이) 미뤄진 걸로 아는데 그때는 한참 썼고 11월에 탈고했어요. 드라마 재미 붙인 사람들이 ‘이 이야기 역사적으로 맞나? 틀렸나? 궁금할 때 책 사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 목표로 했으면 드라마 방영 한두 달 후에 냈을 거에요(웃음).”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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