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단독] 반기문 심경토로 “정치인들 다 자기 계산 있더라”

알림

[단독] 반기문 심경토로 “정치인들 다 자기 계산 있더라”

입력
2017.02.02 02:32
0 0

김숙 전 대사 통해 기자회견문 작성

기자회견 뒤 유엔 사무총장이 격려전화

“유엔 있을 땐 문제 안됐는데” 억울함 호소

“지지 후보 없어… 대선도 관여하지 않을 것”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inliner@hankookilbo.com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inliner@hankookilbo.com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스스로 “용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불출마’라는 폭탄을 던지고도 표정은 의외로 편안해 보였다. 1일 밤 자택에서 잠들기 직전의 편안한 차림으로 기자를 맞는 표정이 딱 그랬다.

반 전 총장은 한국일보와 40분간 심야 단독 인터뷰에서 귀국 뒤 현실 정치의 벽을 실감했다는 듯 “정치가 한국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고 영향도 어마어마하게 크더라”고 말했다. 특히 여야의 정치인들을 두루 만났던 일을 거론하면서 “다 자기 계산이 있다”는 표현을 썼다. 정치인들 사이에선 으레 쓰는 표현이지만 반 전 총장에게선 그래서 충격이었다는 심경이 읽혔다.

반 전 총장은 또 1일 일정을 시작하기 전 사퇴 결심을 한 뒤 김숙 전 유엔대사를 통해 기자회견문을 작성했다는 등의 상세한 불출마 선언 과정도 털어놨다. 기자회견 후 안토니오 구테헤스 현 유엔 사무총장으로부터 격려의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반 전 총장은 언론과 상대 진영의 검증 공세를 두고는 “그게 정치는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이나, 일반인들은 무심코 하기도 하는 ‘다운계약서’만으로도 공직자가 낙마하는 한국 정치의 도덕적 기준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은 듯했다. 반 전 총장은 “솔직히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는 데 무슨 에비앙(프랑스 생수)을 잡았느니, 전철을 (티켓 발권 미숙으로) 잘못 타느니, 이건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건데도 신문 1면에 나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동생 반기상씨나 조카 주현씨의 비리 연루 의혹 등 자질 검증 보도에 특히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유엔 사무총장을 할 때는 진실성을 의심한 사람이 없었는데 여기 와서는 왜 그렇게 내 문제가 많은지 놀랐다”는 것이다.

보수의 대안으로도 평가 받은 터라 그가 누구를 지지할 지도 관심사다. 그러나 그는 그는 차기 대선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 전 총장은 “그런 데(대선에) 관여 안하려고 한다”며 “다른 일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지하려는 후보가 있느냐는 물음에도 “없다”고 단호히 답했다.

다음은 반 전 총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뒤로 한 채 건물을 나서고 있다. 오대근 기자 inliner@hankookilbo.com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뒤로 한 채 건물을 나서고 있다. 오대근 기자 inliner@hankookilbo.com

-1일 새벽에 대선 불출마를 결심했다고.

“그 전날 저녁부터 고민했다. 주변에 상의도 안 했다. 혼자 초안을 쓰고 (예비캠프를 총괄했던) 김숙 전 유엔 대사에게 언질을 해놨다. 그러곤 이도운 대변인한테도 국회 정론관에서 발표할 게 있다고만 하고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이 대변인은 물론이고 캠프에서 나를 도왔던 직원들하고도 협의를 안했다. 그랬다면 나를 말렸을 테니까. 우리 캠프 직원들 중에도 눈물 흘리는 분도 있었고, 저도 그들을 보니 눈물이 났다. 그들의 열정에 한없이 고맙다.”

-불출마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뭔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데 힘든 건 없었다. 나는 아주 단련이 돼있으니까. 아직도 정치가 한국을 너무 지배하고 있고 정치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치인들은 전부 다 자기 계산이 있더라. 말은 대의라고 하면서도 정작 대의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할 준비가 안돼있는 사람이 많더라.”

-그걸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나.

“(손사래를 치며) 그걸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다. 쭉 지나다 보니 그런 걸 느꼈다. 어떤 분들은 여론조사 (지지율 추락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하던데 사실 그건 20일 사이에 조사한 것 아닌가. 그 전에는 내가 1등 한 적도 있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에 나타난 여러 현상들을 이해 한다.”

-불출마 결단 뒤 주위의 반응은.

“사실 지금 한 5분 전에 현직 유엔 사무총장(안토니오 구테헤스)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가 건 게 아니고 뉴스를 보고 걸어왔더라. 고마웠다. 사실 그 분은 총리 출신 아닌가. 유엔을 나올 때 내가 이런 계획(대선 출마)이 있다고 하니 절대 여론의 영향을 받지 말라고 하더라. 자기도 총리를 8년 하면서 많은 어려움 있었다고. 그런데 내 불출마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한다면서 국내정치는 다르다고 이야기 해주더라. 힘 내고 또 다른 방면으로 (국가에) 기여할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통화 시간은) 10분도 안 됐다. 주변에선 잘 했다는 분들이 더 많다.”

-그렇다면 대권 도전하겠다고 결심한 시점은 언젠가.

“꽤 최근이다. 제가 지난해 말에 국제 미디어와 수십 건의 인터뷰를 했다. 마지막 회고하고 정리하는. 그 와중에 12월 20일 날인가 한국 특파원들만 와서 인터뷰를 한 일이 있다. 그 때 주로 대화가 국내 정치문제였다. 저도 그런 면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몸을 불사르겠다고 이야기한 거다.”

-국정농단 사태 때문에 대선에 도전해도 보수의 후보라는 이미지 때문에 어려우리라는 예상을 했을 텐데.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어렵죠. 아니 그때 이미 1등으로 가던 여론(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0월 중순부터 하강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그때 이미 저는 그런 거를 다 감안했다. 하지만, 내가 잘 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국가 위해 할 역할이 있으면 하겠다는 마음이 컸던 건가.

“그렇다. 저는 평생 사심 없이 순수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국제사회에서도 저의 integrity(진실성)를 의심한 사람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 와서 왜 그렇게 내게 문제가 많은지 놀랐다. 솔직히 말해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는 데 무슨 에비앙(프랑스 생수) 병을 잘못 잡았느니, 전철을 (티켓 발권 미숙으로) 잘못 타느니, 이런 건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거 아닌가. 그런데 신문 1면에 나가거든. 언론이 국민들을 어떻게 계도를 하려고 하는 건지…. 참 안타깝다.”

-그런 쪽으로 염증을 느끼셨나.

“그런 걸 보면 한심했다. 내가 성인(聖人)은 아니니까. 정치인들은 내게 그런 건 무시하라고 하던데 그러면 사람이 뻔뻔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못하겠더라.”

-이미 동생과 조카가 비리 연루 혐의로 보도 됐는데, 검증 공세도 불출마 결심에 영향을 미쳤나?

“내가 자세한 건 모르지만 맏형으로서 그런 보도가 나니까 내가 할 말이 없죠. 동생과 조카에게 야단도 치고 했지만 사실은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할 문제 아닌가. 그런데 (언론이) 계속 확대 재생산하는 의도가 뭐냐는 생각도 들었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인데, 범보수 세력이 집권하는 게 맞냐는 고민도 있었나.

“나는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분법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보수든 진보든 다 국민이니까. 그런데 오늘 당황스러운 게,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더니, 딱 앉자마자 내게 ‘보수에 속합니까, 진보에 속합니까’라는 질문을 하더라. (미간 찌푸리며) 이건 적절치 않은 질문 아닌가. 누가 뭐래도 나는 보수다. 그런데 그걸 구분 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가 그런 부분에 환멸을 느끼는 것이다. 어떻게 모든 사람을 진보냐 보수냐 나누나. 유럽에서도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보수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보수당이라고 해서 그런 정책만 내놓고 하는 건 아니다.”

-정체성이 비슷하다고 일컬어 지는 바른정당에 입당했으면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미소지음) 글쎄요. 쉽게 하려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여야) 전체를 아울러보고 싶었다.”

-지지하고 싶은 후보가 있나?

“없다.”

-앞으로 대선 레이스 동안 지지 선언을 할 가능성은?

“저는 그런 데 관여 하지 않으려고 한다. (정치와는) 다른 일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

-무슨 일을 염두에 두고 있나.

“서울에 있다가 지방에 가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잠시 (해외에) 나갈 수도 있지 않겠나.”

-남아 있는 대선주자들 중에서 국가위기를 극복하는 데 가장 적절한 후보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그건 내가 투표장에서…. (웃음)”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