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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노년이라는 무게

입력
2016.09.2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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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두 할머니가 유모차를 끌며 가고 있다. 젊은 엄마가 아기와 함께 걷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굽은 허리를 낡은 유모차에 기대어 힘겹게 가는 곳은 2㎞쯤 떨어진 보건소다. 제일 긴 여행이자 한 주일에 서너 번씩 오가는 곳이기도 하다. 여든이 훌쩍 넘은 두 할머니에게 보건소는 생명을 연장해주는 신성한 장소이기도 하다. 추석 명절에도 외롭기 짝이 없는 시간을 보낸 두 노인은 그나마 마을의 공동체성에 의지해 살아간다. 보건소에서 거저 주는 한 움큼의 알약보다 아직은 남아있는 이웃들의 보살핌이 그들의 삶에 더 중요함을 그들 역시 알고 있다.

얼마 전, 내가 속한 한 정당의 지역 당원 모임이 있었다. 그 당은 그리 규모가 크지 않아서 절반 가까운 당원이 참석했는데도 네 명이 전부였다. 아마 추석 연휴 언저리라서 출석률이 낮은 거라 위로하며 우리는 소수라는 사실에 주눅 들지 않고 당원들답게 당면한 현실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었다. 가을이 오는 스산한 저녁에 동태찌개를 바글바글 끓여가며 사드와 양극화, 유전자조작 식품 등등 소주잔을 기울이며 하기에는 그다지 재미없는 이야기를 길게 나누었다. 그런데 그날 가장 길게 나누었던 주제는 노인 문제였다.

네 사람은 모두 연로한 부모가 있었고 제각각 노년의 존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한 당원은 지역 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병원 의사여서 노인 문제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서 내후년부터 시행될 연명치료 중단법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듣고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당장 나부터 미리 의사를 밝히는 문서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다른 이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해온 당원은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노인 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의료체계와 요양제도 등에 대한 문제점을 짚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결국 내 장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치매가 깊어진 장인을 두어 달 전에 요양원으로 모셨다. 피치 못할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보수적인 측면이 강하게 남아있는 나 같은 오십대가 부모를 요양원으로 모시는 일에 선뜻 마음이 갈 리 없었다. 평소 병원을 가면 혈압 측정도 하기 전에 집으로 간다며 문을 박차고 나오기 일쑤인 장인이 요양원에서 과연 며칠이나 견딜지 의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간 어른의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무더위에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요양원이 집보다 더 쾌적하기도 했지만 치매로 인해 때로 강퍅해지는 어른의 마음을 어루만진 것은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몇 번 가서 확인해 보았는데 상당히 가족적인 분위기에 요양사분들의 밝고 쾌활한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나나 아내가 언제 그렇게 장인 앞에서 즐겁게 웃고 떠든 적이 있었던가. 장인어른이 단 한 번도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집으로 돌려보낼까 걱정하는 빛을 보며 우리 부부는 그동안 참으로 불효막심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어른의 치매도 노년의 외로움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몰랐다.

당원 모임에서 내가 발언한 내용은 주로 기초연금에 대한 것이었다. 현 정권의 공약이기도 했던 기초연금은 보편복지에서 선별복지로 후퇴한 것인데, 이 나라의 산업화에 공로자라고 치켜세우며 지급을 약속했던 기초연금은 실로 모욕적이다. 그 액수가 보잘것없는 것은 둘째 치고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도 받을 수 있는 최대 액수가 20만원이다. 이게 그들이 말하는 근대화의 공로자에게 합당한 대접인가. 혹 과거에 그랬듯이 노년에도 여전히 행정력이라는 권력 앞에 굽실거리라는 잔인한 폭력은 아닌가.

인간의 진화가 짊어진 숙명이라는 점에서 노년의 문제는 심오한 인문의 영역이기도 하다. 다만 지금처럼 저열한 시대에 해결은 난망해 보인다.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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