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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센터, 사진관, 모자공장… 모퉁이 작은 집 30년 풍경

입력
2016.11.1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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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집’은 오래되고, 낡고, 소박한 집 한 채가 거듭 새로이 변신하는 역사를 담아낸다. 상수리 제공
‘나의 작은 집’은 오래되고, 낡고, 소박한 집 한 채가 거듭 새로이 변신하는 역사를 담아낸다. 상수리 제공

나의 작은 집

김선진 글 그림

상수리 발행ㆍ48쪽ㆍ1만3,000원

아귀다툼 비명 겹겹 거짓 헛 맹세/ 뒤숭숭 어두컴컴 퀘퀘한 집/ 그 집에서 종신토록 누추하게 산다/ 살 수밖에 없다는 악몽/ 악몽에 늘어붙은 어른들 팔을 질질 끌며 흔들어 깨우며/ 촛불 든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바람이 통하는 맑은 집에서 살고 싶어요/ 도둑이 들 수 없는 환한 집에서 살고 싶어요/ 두드리는 이마다 활짝 문 열리는 따뜻한 집에서 살고 싶어요….

온종일 귓속에서 소리치는 아우성을 받아 써본다. 죽은 아이들 소리, 살아보자는 아이들 소리가 웅웅거린다. ‘국가는 국민의 집이다’. 눈길 둘 데 없이 누추한 여기저기를 짚어보다가 떠오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끄덕이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북유럽 국가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던 연전의 독서에서 인상적인 이름으로 남아있는 타게 엘란데르 스웨덴 총리, 2차 세계대전 이후 그지없이 황량했던 스웨덴을 평등하고 조화로운 복지국가로 만들면서 초지일관 외쳤던 슬로건이었다. 국가는 국민들을 위한 좋은 집이 되어야 한다고…. 밝고 맑고 따뜻한 집, 좋은 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누가 만드는가?

김선진이 만든 그림책 ‘나의 작은 집’은 ‘오래되고, 낡고, 소박한’ 집 한 채가 거듭 새로이 변신하는 역사를 담아낸다. 사과나무 언덕에 서있던 튼튼하고 아름다운 작은 집이 믿을 수 없는 격변을 겪으며 고가도로 밑 누옥이 되는 우여곡절 끝에 원래 자리와 흡사한 고즈넉한 시골로 돌아간다는 그림책의 고전 ‘작은 집 이야기’가 산업혁명 전후의 변화라는 거대담론을 품고 있다면, 이 그림책은 그림만큼이나 세세하고 담담하게 30년쯤 경과하는 시간의 풍경을 조근조근 속삭인다.

연립주택가 모퉁이의 작은 집이 ‘삼일 카센터’가 되었을 때, ‘초원 사진관’이 되었을 때,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독거노인 할머니의 집이 되었을 때, 청년 창업가들의 ‘M모자공장’이 되었을 때, 그리고 한동안 텅 비어 잿빛 폐가가 되어버렸을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은 흥미로움 이상이다. 얼핏 다정하고 따스하게 여겨지는 이 그림책의 예민하고 날카로운 깊이를 보여주면서 곧 ‘좋은 집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누가 만드는가?’에 대한 답을 건넨다.

그렇다. 사람이다. ‘나의 작은 집 이야기’는 어느 날 ‘낡고 작은 오래된’ 것을 사랑하는 아가씨에 의해 새 날을 맞으면서 행복한 결말에 이른다. 겹겹 쌓인 먼지를 떨어내고 페인트칠을 하고 창에 커튼을 늘어뜨리고 선반을 달고 화분을 놓는 이 아가씨는 화가로서, 작업대에 물감과 붓을 놓는다. 탁자와 의자를 늘어놓고, 책꽂이에 책을 꽂고, 선반에 여행 기념품을 늘어놓고, 커피를 끓이고, 벽에 그림을 걸고 ‘작은 전시’ 포스터를 붙여 이웃과 친구들을 초대한다.

작가는 아래위로 펼치는 독특한 공간을 구성하여 거듭 바뀌는 집 주인의 일과 도구로써 작은 집 내부를 담기도 하고, 주인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연립주택가 모퉁이 작은 집의 외부 전경을 담기도 한다. 집 주인들이 늘 문을 열고 나와 저마다의 열망을 가족과 이웃과 고양이를 포함한 공동체와 나누고 즐기는 국면은 특히 귀하다. 좋은 집은 맑고 밝고 따스한 기운을 잉태하여 바깥으로 나른다는 것을, 사람이 집이고 집이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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