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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계화 현장을 가다ㆍ5] 반세계화 현상 4개국 전문가 지상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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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계화 현장을 가다ㆍ5] 반세계화 현상 4개국 전문가 지상 좌담회

입력
2017.01.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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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등 지난해에는 거침없던 세계화 확산에 제동이 걸리는 흐름이 뚜렷했다. 이에 한국일보는 신년기획 ‘반세계화 현장을 가다’를 통해 반세계화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 오대호 연안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 노동자들, 일본에 번영을 가져다 준 자유무역주의의 앞날에 회의적인 일본 중소기업인, 세계화와 반세계화 사이에서 고민하는 중국인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기획을 마치며 반세계화의 원인은 무엇이고 세계 앞날에 어떤 파장을 미칠 것인지 그리고 반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각국 정부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어디인지를 한국, 중국, 일본, 미국 전문가들로부터 들어봤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니시노 준야(西野純也) 일본 게이오대 정치학과 교수, 진징이(金景一) 중국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 교수, 아이만 엘 타라비시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 교수로부터 받은 이메일 답변을 좌담 형식으로 엮었다.

세계화로 인한 부의 집중이 반세계화 흐름으로

세계화는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가져다줬으나 과실이 일부 계층에 집중되면서 여기서 소외된 이들로부터 반세계화 흐름이 형성됐다고 다수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타라비시 교수는 “소득 불균형이 커지고 부가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엘리트층에 집중되면서 사회가 불공평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며 “정보 기술 격차가 발생하며 일부 계층만 실업률이 높아졌고, 전통문화와 지역사회 네트워크간 고리가 약해지면서 정체성이 상실된 것이 이런 흐름을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양극화에 따라 사회적 갈등이 분출됐다(진징이 교수)”, “경제적 불평등 심화로 계층이동이 제한되고 중산층이 위축됐다(구정우 교수)” 등 사회적 불공정성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반세계화 흐름을 가져왔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와 관련 니시노 교수는 “세계화의 부작용을 선제적으로 관리ㆍ통제하는 각국 정부의 기능이 약화됐다”며 “정부의 재분배 기능이 취약해지면서 그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심해진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이근 교수는 현재의 흐름을 “반세계화라고 부르기보다는 세계화의 속도조절로 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규정했다. 난무하는 정치적 구호와 달리 실제로 고립주의ㆍ보호주의식으로 자급자족하려는 움직임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그 근거다. 이 교수는 특히 유럽과 미국의 경우 이민자, 난민, 테러, 실업문제와 세계화 흐름이 겹쳐지면서 “(불안을 겪는 대중이) 자신들의 문제원인을 모두 ‘세계화’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 상황과 관련, 구정우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 설문조사 결과, 외국인 노동자 인권이 존중되고 있다는 응답자가 3.9%에 불과했다”며 “전세계 최고수준의 반외국인 정서를 볼 때 국민정서 수준에서는 반세계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더이상 한국도 반세계화 흐름의 무풍지대가 아니라는 점에 대한 경고다.

복지 및 재분배 활성화는 제한적

반세계화에 편승해 고립주의 정책이 확산되면 복지 및 재분배가 활성화돼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나아질 수 있을까. 다수의 전문가는 부정적으로 전망하거나 특정 계층만 혜택을 받는 등 한계가 뚜렷할 것으로 내다봤다. 구정우 교수는 트럼프의 사례를 들며 “보호무역 기조로 바뀌면 멕시코 등으로 이탈했던 미국 기업을 다시 불러모아 제조업 일자리 창출은 가능하겠지만 오마바케어와 공교육 축소 등으로 오히려 노동자들은 피해를 볼 것”이라며 “감세 정책도 미국인 전체의 세금은 줄이겠지만 대기업들이 주로 혜택을 봐 세계화 피해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과거보다 커지리라 본다”고 예상했다. 진징이 교수는 “개별 국가 차원에선 복지나 재분배정책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겠지만 전 세계적 범위에서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미국이나 영국도 반세계화, 고립주의로 일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타라비시 교수는 “재정 누수를 줄이고 다국적 기업을 활성화해 재정 흑자분으로 세금을 낮추거나 기업활동 재투자에 쓰이도록 하는 것이 세계화 부작용을 치유하는 유일한 해법”이라면서 “고립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인들은 이런 정책에 반대하기 때문에 결국 고립주의는 퇴보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근 교수는 “지금까지는 세계화가 낙수효과 (trickle-down) 시장주의와 동일시됐다”며 “현재 세계화 조절 운동이 낙수효과 시장주의에 제동을 건다면 복지와 재분배 정책이 강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국가에서 발생하는 ‘반세계화 운동’은 복지와 재분배정책을 강조하는 사회주의적 운동으로 가거나,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극우 운동으로 가거나 둘 중의 하나의 길을 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징이 교수는 “세계화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서도 “반세계화의 흐름은 세계화가 가져온 양극화 심화라는 부정적 측면을 정책적ㆍ제도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힘을 보탰다.

민족주의적 선동ㆍ정치적 급진화 우려 높아져

전문가들은 반세계화 흐름이 거세지면 국제기구가 무력화되면서 각국간 긴장감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냉전의 도래를 우려하는 의견도 나왔다. 타라비시 교수는 “‘세계화에서 비롯된 불확실성을 해결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생겨난 것이 잘못된 민족주의와 선동”이라며 “이 두 가지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각국의 분열과 고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적 급진화와 테러리즘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예측이다. 구정우 교수는 “국경을 넘어선 자본과 노동 이동이 활발해지고 정보 공유 확산이 급속도로 빨라지는 21세기에는 국제기구 중재를 통한 다자간 문제해결이 자연스럽고 효과적”이라며 “자유주의적 이상주의 가치로 무장한 다자주의가 쇠퇴하게 되면, 현실주의적 가치를 앞세운 국가주의가 국제무대를 상호 투쟁의 장으로 변질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되면 일본과 인도의 재무장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미국과 중국에 ‘신냉전’을 주도할 명분을 주게 될 수도 있다는 게 구 교수의 예상이다.

니시노 교수는 “올해 프랑스, 독일 등 주요 국가에서 치러지는 선거에서 트럼프가 말했듯 ‘잊혀진 사람들’의 거센 항의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런 경향은 몇 년간 계속될 것”이라면서도 “아무리 세계화가 진행돼도 국가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 국가의 약화된 기능을 살리는 과정도 몇 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세계화 흐름의 실체에 대해 회의적인 이근 교수는 “국가주권(주의) 유행은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국가주권은 반세계화 흐름 이전에도 강조됐고 양보되기도 했으며, 국제기구가 무력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라면서 “우파 정치인들의 강력한 정치적 수사로 긴장이나 갈등의 수위가 높아질 수는 있지만 이전과 비교해 특별히 더 심각할 이유는 없다”고 전망했다. 큰 틀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공정성 담보하는 체제개혁이 반세계화 막을 것

전문가들은 반세계화 흐름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자원배분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체제로 개혁이 긴요하다고 역설했다. 구정우 교수는 유엔이 2030년까지 추진할 지속가능한 발전의 핵심을 ‘포용적 성장’으로 파악한 점에 착안, 이런 가치에 걸맞은 시스템 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고 민중 계층이 성장의 결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며 “지배 엘리트들이 이 원칙과 가치에 동조하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월스트리트 금융권력자들의 과도한 인센티브 지급을 무모하고 탐욕스럽다고 비판한 것처럼 경제ㆍ정치적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엘리트들에 대한 채찍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타라비시 교수는 튼튼한 중산층 양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지역현실에 맞게 정책을 수정하고 운영해야 하지만 엘리트 정치인들은 ‘현상유지’를 원한다”며 “역사는 항상 중산층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만큼 이들이 현재 흐름에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정치권이 주목하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근 교수도 “엘리트들이 독식의 구조와 문화를 만들어 놓은 것이 문제인 만큼 저소득층 계층 이동이 가능하고 엘리트들의 경제활동이 정당성과 공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구조와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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