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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보이’의 귀환… 설레는 사직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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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보이’의 귀환… 설레는 사직구장

입력
2017.01.2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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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시절 이대호. 한국일보 자료사진
롯데 시절 이대호.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4월4일 롯데의 프로야구 정규시즌 홈 개막전(넥센 상대)이 열리는 부산 사직구장. 등 번호 10번을 단 4번 타자 이대호(35)가 첫 타석에 들어선다.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6년 만에 고향 품으로 돌아온 그를 향해 기립박수를 보낸다. 이대호는 헬멧을 벗어 자신을 반겨준 팬들에게 인사를 한다. 이대호가 타격을 준비하기 위해 땅을 고르는 동안 ‘대~호’가 사직구장에 울려 퍼진다.

‘구도’ 부산의 야구 팬들이 꿈 꿨던 장면이 곧 현실로 이뤄진다. 롯데는 24일 “이대호와 4년 총액 150억원에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150억원은 KIA와 계약한 외야수 최형우(34)의 4년 100억원을 뛰어 넘는 역대 FA 최고액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고를 졸업하고 2001년 롯데 유니폼을 입은 이대호는 롯데 구단의 상징적인 존재다. 일본프로야구 진출 전인 2011년까지 11시즌 동안 KBO리그 통산 1,150경기에 나가 타율 0.309 225홈런 809타점을 기록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번 타자로서 4년 연속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고 한국 프로야구 최초 타격 7관왕, 9경기 연속 홈런 등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다.

2011시즌을 마친 뒤 FA 자격을 얻은 이대호는 일본으로 무대를 옮겼다. 본인의 해외 진출 의지도 있었지만 사실 롯데 구단에 ‘서운한 감정’도 있었기 때문에 미련 없이 떠났다. 이대호는 2010년 타격 7관왕에 오른 뒤 연봉 협상에서 7억원을 요구했지만 구단 측은 6억3,000만원을 고집했다. 결국 연봉조정신청까지 갔고, KBO는 구단의 손을 들어줬다.

이대호는 결국 2011년 구단 측이 제시한 연봉을 받아 들였지만, 그 해 시즌을 마친 뒤 일본프로야구 오릭스에 둥지를 틀었다. 오릭스에서 2년간 활약한 다음 2014년 소프트뱅크와 계약했다. 2015년에는 소프트뱅크의 우승을 이끌며 일본시리즈 최우수선수(MVP) 영예도 안았다.

일본 야구를 평정한 그는 34세의 나이에도 미국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던졌다. 메이저리그를 보장 받지 못한 스플릿 계약(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에 따라 조건이 달라지는 계약)으로 시애틀과 1년 계약했지만 스프링캠프부터 치열한 생존 경쟁을 펼쳐 극적으로 개막 로스터 진입(25명)에 성공했다. 이대호는 구단의 철저한 플래툰 시스템(상대 투수 유형에 따라 출전 선수를 결정하는 방법) 속에서도 타율 0.253(292타수 74안타) 14홈런 49타점을 올렸다.

메이저리그 꿈을 이룬 이대호는 다시 FA 자격을 얻어 주전을 보장 받는 새 팀을 찾았다. 일본 한신, 지바 롯데, 라쿠텐 등이 영입에 관심을 보였지만 이대호는 결국 선수 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롯데에서 태우고 싶어 6년 만의 귀환을 결정했다. 그간 롯데는 이대호와 관계 회복을 위해 많은 공을 들였고, 이대호가 지난해 1~2월 롯데의 미국 애리조나 캠프에서 훈련을 함께하며 신뢰를 다시 쌓았다.

또 이번 계약을 위해 이윤원 롯데 단장이 지난 18~20일까지 사이판 현지에서 훈련 중인 이대호를 만나 계약 조건에 대한 대화를 나눈 뒤 23일 밤 서울 모처에서 계약서를 받았다. 이 단장은 “진정성을 보여주려고 했다”면서 “이대호도 금액보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롯데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밝혔다. 구단 관계자는 “이대호를 잡기 위해 지난해부터 지속적인 영입 제의를 했던 결과”라면서 “황재균의 미국 진출과는 별개로 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과거 '사직 노래방'으로 불린 사직구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과거 '사직 노래방'으로 불린 사직구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대호의 화려한 귀환은 떠나간 ‘부산 갈매기’들을 다시 사직구장으로 불러 모을 것으로 보인다. 예전 사직구장은 팬들이 쉴 새 없이 노래해 ‘사직 노래방’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이후 성적 하락으로 흥행에 참패했다. 2008~2012년까지 5년 연속 100만 관중이 들어찼던 사직구장은 2013년 77만731명, 2014년 83만820명, 2015년 80만962명, 2016년 85만2,639명이 오는데 그쳤다.

이대호는 “미국에서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또 꿈을 이뤘다”며 “남은 것은 롯데로 돌아와 팀 동료, 후배들과 함께 우승을 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었고 꼭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해외 리그에서 뛸 동안에도 끊임없이 응원해주시는 팬들이 너무 그리웠고, 우리 팬들을 다시 만난다는 것이 너무나도 설렌다”면서 “마음으로 대하고 가치를 인정해주신 구단에도 감사 드린다. 부산에서 만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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