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윤석열 X파일'
누가, 왜 만들었나…
정치권 떠도는 '설설설'

갈 길 바쁜 대선 정국에서 여야 모두에 '윤석열 X파일'이란 복병이 튀어나왔다. 실체 여부를 떠나 '누가, 왜' 만들었는지를 두고 여야의 공방이 가열되는 모습이다. '윤석열 X파일'을 봤다고 주장하며 논란에 불을 지핀 장성철 공감과논쟁정책센터 소장은 22일 라디오에 잇달아 출연해 문건 작성의 주체로 '여권'을 지목했다. 여권은 당장 "뒤집어씌우기 전략"(강훈식 더불어민주당 대선경선기획단 공동단장)이라고 발끈했다. 'X파일' 내용의 진실 여부를 호도하려고 물타기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출처를 따지기보다 내용 검증이 우선돼야 한다는 요구도 깔려 있다. 다들 있다고는 하는데, 정작 실체는 드러나지 않은 '윤석열 X파일'. 그 출처를 둘러싸고 정치권에 나도는 여러 '썰'들을 정리해봤다. 장성철 공감과논쟁정책센터소장이 19일 '윤석열 X파일'에 대해 페이스북에 언급하기 전, '윤석열 X파일'에 대한 언론 보도의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던 사람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송 대표가 처음 윤석열 파일에 대해 거론한 건, 5월 25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서 열린 '개혁국민운동본부' 집회 현장에서다. 당시 송 대표는 검찰개혁 필요성을 언급하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수많은 사건, 윤우진 등에 대한 파일들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윤우진'은 윤 전 총장 측근인 윤대진 전 검사장의 친형이자 전 용산세무서장으로, 그와 관련된 뇌물수수 무마 의혹 사건을 말한다. 송 대표의 이 발언은 다음 날인 5월 26일 오전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송영길 "윤석열 파일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 제목의 기사로 실린다. 이후 송 대표에겐 '윤석열 X파일'의 실체를 묻는 질문이 따라 붙었고, 송 대표는 'X파일'이란 표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검증자료를 모으고 있다" "불완전판매가 되지 않도록 충분히 자신의 상품을 설명해줘야 한다"(1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는 식의 발언으로 윤 전 총장에 대한 검증 의지를 피력해왔다. 그럼 송 대표를 '윤석열 X파일'의 최초 언급자로 볼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송 대표보다 앞서 '윤석열 X파일'을 콕 집어 언급한 인물은 따로 있다. 바로 국민의힘 전신(前身)인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낸 신지호 전 의원이다. 신 전 의원은 송 대표의 발언이 있기 하루 전인 5월 24일자 '주간조선'에 '검사 윤석열 파일은 왜 야권서 등장했을까'란 제목의 칼럼을 쓰며 세상에 처음 '윤석열 파일'의 실체를 공식화한다. 칼럼 내용을 잠깐 옮겨 보면 이렇다. "최근 여의도 정가에 '윤석열 파일'이 등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내용이 자못 흥미롭다. (중략) 파일에는 윤석열 검사가 수사하면서 특정 피의자를 친소(親疏)관계 때문에 봐주는 등 사건처리를 엄정하게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심지어 재벌 비위 수사를 뭉갰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신 전 의원은 칼럼에서 "내용 못지않게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이 파일이 목격된 장소가 야당 의원실이라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신 전 의원이 문건의 생산자를 야권이라고 보는 건 아니다. 그는 문건에 대해 "법무·검찰의 내부정보를 획득해야만 각색을 통해 생산 가능한 '작품'"이란 점에서 야권에서 생산했을 가능성은 "제로"라고 했다. 신 전 의원의 말대로라면, 여권에서 만든 문건이 왜 야당 의원실에서 목격된 걸까. 그 배경을 두고 신 전 의원은 여권과 야권 일부의 노림수가 맞아떨어졌다는 주장을 폈다. 네거티브 전략에 신중해진 여권이 '이간계'(離間計)를 펼쳤다는 것. '여권발' 정치공작이 아닌 '야권발' 내부검증으로 포장시키기 위한 포석이란 주장이다. 그는 "마침 야권에서도 윤석열 때리기의 수요가 발생했다"며 "대선 후보 경선에서 윤석열을 제쳐야 하는 사람들 또한 윤석열을 무너뜨릴 비책(秘策)을 찾아 헤매고 있다. 이들이 '여권발 야권행 X파일'을 마다하는 것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는 것보다 몇 곱절 힘들다"고 적었다. 여권 못지않게 야권 내부에서도 윤석열 전 총장을 제거하려는 세력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정치권에선 '윤석열 X파일'의 생산 주체로, 공안 검사 출신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거론하는 호사가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그 근거는 두 사람의 '구원(舊怨)'이다. '황교안 반격설'은 두 사람이 검찰 조직의 양대산맥인 특수부(윤석열), 공안부(황교안)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윤석열 전 총장 취임 이후 주요 보직에 특수부 측근들을 포진시키며 황 전 총리로 대표되는 공안부 라인을 몰락시켰다는 점 ▲황 전 총리가 법무부 장관 시절 윤 전 총장을 징계한 당사자라는 점 등을 미뤄 봤을 때, 이번 '윤석열 X파일'은 윤 전 총장 관련한 불만, 정보를 축적한 구(舊) 공안 라인의 반격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진성(眞性) 친박들 사이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시킨 윤석열의 '원죄'도 거론된다. 이 밖에도 장성철 소장이 김무성 전 대표의 보좌관 출신이란 점에서 '김무성 배후설'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나와 "왜 하필 이 시점에 이게 나와서 윤석열 총장을 공격하는가, 그리고 장 소장이 너무 많은 인터뷰를 하며 이것을 계속 확대하고 키우고 있다는 점을 봤을 때 뭔가 냄새가 난다"며 "결국 야권에서 윤석열 전 총장이 아닌 새로운 후보를 옹립하기 위한 작업, 작전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야권 내부 투쟁설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장성철 소장은 "김무성 전 의원,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와의 관련설은 터무니없는 가짜뉴스"라고 일축했다. 그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 대표 보좌관을 10년 하고, 2018년 3월에 그만둔 뒤 김 대표와 통화하거나 찾아뵙기는커녕 마포포럼에도 단 한 번도 안 갔다"며 "이를 연관시킨 것은 정치분석가들의 참 허황된 얘기"라고 반박했다. 황교안 전 대표와의 관련설에 대해서도 "그뿐 아니라 한 10가지 소설이 돌아다니는데 다 아니다"라면서도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만 했다. 그러면서 문건의 출처로 '여권'을 콕 집었다. 그는 입수 경위에 대해 ▲정치권 정보에 능통한 10년 이상 된 분이 ▲'여권 쪽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하며 전달해 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발 더 나아가 '기관 개입설'도 띄웠다. 그는 "제 의심과 추측이지만 (문건 작성에) 어떤 기관의 힘이 좀 개입되지 않았을까"라며 "(전달해 준 사람이) 저한테 얘기를 해 줬기에 저는 안다"고 했다. 다만 "이를 말하면 정보를 준 쪽, 만든 쪽이 상당히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될 것이기에 좀 조심해 달라고 그러더라"라며 출처에 대해선 함구하며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이에 윤석열 전 총장은 이상록 대변인을 통해 "(문건 출처에 대해서) 공기관과 집권당에서 개입해 작성한 것처럼 말하던데, 그렇다면 명백한 불법사찰"이라며 "출처 불명 괴문서로 정치공작하지 말고 진실이라면 내용·근거·출처를 공개하기 바란다"고 정면 돌파 의지를 밝혔다.

적자 공항 옆에 또 新공항 건설…
지역민원 앞에 경제성은 뒷전

“사실 무안엔 공항이 있을 필요가 없어.” 20년 동안 목포와 제주를 오간 화물차 운전기사 김태삼씨가 말했다. 그는 저비용 항공사인 티웨이 항공편이 개통된 2014년 이후 7년간 무안국제공항을 이용해왔다. 비행기는 대부분의 좌석이 비어 있었다. 하루 한 편 있는 비행기엔 마흔 명 정도가 탔다. 대다수는 화물을 배편으로 부친 뒤 슬리퍼를 신고 비행기에 오른 화물차 기사였다. 일주일에 편도 2편. 무안국제공항은 2021년 기준 국내 공항 중 운항 편수가 가장 적다. 올해 2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필요한 경우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한다는 조항이 특례에 명시돼 문제가 됐다. 공항 준공까지 차질 없이 속도를 내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인천, 김포, 김해, 제주 4개 공항을 제외하면 국내 공항은 모두 적자다. 취재팀이 방문한 무안국제공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취재팀이 무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제주를 찾은 4월 2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중단됐던 무안국제공항 비행편이 넉 달 만에 재개됐다. 무안발 제주행 비행기가 월요일과 금요일 한 편씩, 제주발 무안행 비행기가 목요일과 일요일에 한 편씩 있다. 비행기는 한적했다. 취재팀 3인을 제외하면 고작 24명. 총 186명을 수용할 수 있는 비행기의 6분의 1이 안 되는 인원이었다. 비행기는 40분이 조금 안 돼 착륙했다. 승객들이 내리고 얼마 안 있어 공항의 조명이 꺼졌다. 저녁 9시가 채 되기 전이었다. 무안국제공항은 코로나19 이전부터 매년 100억 원 안팎의 적자를 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안국제공항 인근에 새만금 국제공항이 신설될 예정이다. 무안국제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1시간 반 정도 이동하면 새만금 공항 부지가 나온다. 적자 공항 1시간 거리에 공항이 또 지어질 수 있었던 건 예타 면제 덕분이다. 새만금 국제공항이 본격적으로 화두에 오른 건 2016년 국토부의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에 포함되면서부터다. 전북 정치권에서 국제공항 건설을 추진한 지 20년 만의 일이다. 하지만 타당성 평가에서 경제성(B/C)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 2019년 1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예타 면제를 받으며 신설이 확정됐다. 20년 숙원사업이 풀리는 것에 대해 지역주민들은 반가워해야 마땅했다. 익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남기범씨는 무안국제공항은 물론이고 집에서 가까운 군산공항도 불편해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 그는 “새 공항을 짓기보단 기존 공항의 경쟁력을 키우는 편이 지역 경제와 주민 생활에 더 기여할 것 같다”고 했다. 무안에 20년간 살고 있는 택시기사 박종현씨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는 착공 예정인 새만금 국제공항에 대한 의견을 묻자 잠시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이내 “전부 정치싸움”이라며 혀를 찼다. 무안국제공항 근처에 새 공항이 들어온다면 이용객이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논란의 예타 면제 사업. 과연 SOC 사업에만 국한된 문제일까. 5월 18일. 경부선 청도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폐건물이 즐비한 산길을 지나길 30분, 취재팀은 신화랑풍류마을에 도착했다. 청도군의 외곽인 을문면에 위치한 신화랑풍류마을은 신라의 화랑정신을 테마로 하는 문화 관광 시설이다. 빈자리가 대부분인 제1, 2주차장을 지나 멈춰선 제3주차장. 넓은 부지에 주차된 차는 단 세 대뿐이었다. 취재팀과 함께 현장에 도착한 택시 기사 이승수씨도 차에서 내려 신화랑풍류마을 건물을 신기한 듯 둘러봤다. 청도 70년 차 토박이인 그에게도 이곳은 생소한 장소다. 신화랑풍류마을은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예타를 면제받았다. 경상북도의 역사 자원을 관광화해 각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취지로 시행된 ‘3대 문화권 기반 조성 사업’의 일환이다. 2018년에 개관한신화랑풍류마을은 용지만 약 9만 평에 달한다. 화랑정신기념관, 숙박시설과 캠핑장 등의 시설을 짓는 데 국비와 도비 포함 약 610억 원이 투입됐다. 취재팀이 신화랑풍류마을을 찾은 날, 176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숙박시설 ‘화랑촌’은 공실이었다. 활쏘기 체험을 할 수 있는 화랑궁도장 장비 대여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운문사 가는 길에 들른 몇 사람이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대구에서 온 이준홍씨는 "특색을 살린 문화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VR처럼 아이들 놀거리 정도만 약소하게 갖춰져 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경북에 지어진 화랑 관련 시설은 청도뿐 아니라 경주, 경산과 영천에도 있다. 시설 내 캠핑장은 이용객이 없던 역사 문화 시설과 상황이 달랐다. 청도 주민 김민정씨는 신화랑풍류마을 캠핑장을 개관 초기부터 이용해왔다. 주말이면 캠핑터 43석 대부분이 찼고, 코로나19 거리 두기 차원에서 자리를 절반으로 줄인 요즘도 캠핑장은 붐빈다. 그러나 정작 신화랑 풍류문화 체험장은 관람객이 적었다. 시설 내 캠핑장을 자주 찾는 김씨도 이용해본 적은 없고, 캠핑장 울타리 너머로 인적 없는 건물을 몇 번 본 게 전부다. 역사 자원을 통한 지역 활성화를 내세웠지만, 화랑과 실질적으로 관련 없는 캠핑장만 호황인 셈이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받기 이전부터 신화랑풍류마을은 운영난을 겪어왔다. 개관 첫해인 2018년엔 약 3억 원의 적자를 봤고, 이듬해에도 8억4,100만 원의 운영비가 들어갔지만 5억7,000만 원의 수익에 그쳤다.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큰 규모로 시설을 지었으나 매년 운영비는 청도군 자체 예산으로 부담한다. 인구 4만명 남짓에 재정자립도가 8.5%(2021년 기준)에 불과한 청도에는 적지 않은 타격이다. 현재 신화랑풍류마을은 청도군이 출연한 우리정신문화재단에서 2017년부터 위탁 운영하고 있다. 우리정신문화재단 관계자는 “청도군 문화관광과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시설을 운영 중”이라며 “수익이 나지 않을 경우 예산 집행을 타이트하게 해 자체적으로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경제성 분석과 수요 조사 등 철저한 예타 없이 사업이 추진됨에 따라 발생하는 적자는 해당 지자체가 떠안게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예타 면제 사업이 잡음을 일으키는 이유가 검증 단계가 생략되는 점에 있다고 봤다. 박현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장은 예타의 정보 공급 기능을 강조했다. 그는 “예타 면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예타 면제가 예외가 아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지역 차원에서 중요한 사업이라고 해서 막상 현장에 가보면 주민들은 관심도 없고 오히려 환경단체에서 반대하는 사업인 경우도 있었다. 박 원장은 “이를 사전에 걸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예타”라고 설명했다. 예타가 생략됐을 때 예상 수요나 지자체 감당 여력 등의 정보가 국책사업 책임자에게 충분히 공급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배우 정재영이 물었다, 추리닝 입고 인터뷰해도 되나요?

2006년 4월 그를 처음 만났다. 영화 ‘마이 캡틴 김대출’(2006)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대면하기 전까지 영화로 쌓은 그에 대한 인상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해석할 수 없는 그림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무서우면서도 부드럽고, 세련된 듯 촌스러웠으며 우악스러운 듯 섬세해 보였다. 능숙한 연기를 선보이는 명배우들이 그렇듯 정재영의 이미지는 뭐라 규정짓기 어려웠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정재영은 여느 배우와 다르지 않았다. 근사하게 차려입고 사진 촬영에 임했다. 촬영이 끝난 후 그는 스타에서 동네 친구 같은 모습으로 변모했다. 그는 갑자기 “추리닝을 입고 인터뷰를 해도 되냐”고 양해를 구했다. “괜찮다”고 답하자 그는 화장실에서 추리닝 바지로 갈아입고 자리로 돌아왔다. “촬영 없는 날은 주로 집에 있는데 추리닝을 입고 있으면 마음이 제일 편하거든요.” 그는 “사진 촬영을 위해 입는 옷들은 멋은 입지만 답답하다”고도 했다. 아리송했던 정재영의 인상이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소탈하면서도 서민적 풍모가 강한, 연기 고수였다. 정재영은 이후 인터뷰로 다시 만났을 때도 사진 촬영이 끝난 후 여지없이 추리닝 바지로 갈아입었다. 정재영이 내 눈에 들어온 첫 영화는 ‘킬러들의 수다’(2001)였다. 그는 킬러 재영을 연기했는데, 제목과 달리 영화 속 킬러들 중 가장 과묵한 인물이었다. 얼굴 선이 굵은 데다 훤칠한 키의 그는 사나워 보였다. 이어서 본 ‘피도 눈물도 없이’(2002)는 그런 그의 인상을 굳게 만들었다. 여자에게 유리잔을 내던지는 모습이 흉포했다. 맡은 배역의 이름마저 독불이었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실제로도 독하고 사납고 광포한 인물일 듯했다. ‘아는 여자’(2004)를 보고 정재영에 대한 인상이 달라졌다. 거친 남성성은 여전히 남아있는데 뭔가 허술한 듯한 인간미가 느껴졌다. 그는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야구선수 동치성을 연기했다. 죽으려고 마라톤 대회에 나가 사력을 다했다가 뜻밖에 5등을 차지하기도 하는, 짠하게 웃기는 인물이었다. ‘아는 여자’로 정재영의 부드러운 면모를 발견했다면, ‘나의 결혼 원정기’(2005)는 신세계 같았다. 그는 순박한 농촌 노총각 만택을 연기했는데 이전과는 다른 면모였다. 영화는 외국인 신부를 얻을 요량으로 만택이 친구들과 우즈베키스탄에 맞선을 보러 가는 여정을 통해 웃음과 비애 등 여러 감정을 전한다. 영화가 빚어낸 감정 대부분은 정재영의 연기에 의존한다. 그의 재능은 고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연기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돼 전국 청소년연극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장진 감독은 대학 시절부터 정재영을 눈여겨보고 오랫동안 협업했다. 2000년대 충무로 실력자였던 강우석 감독 역시 정재영의 재능을 높이 샀다. 박중훈과 설경구에 이어 충무로 정상급 배우로 견인할 수 있는 재목으로 정재영을 점찍었다. ‘투캅스’ 시리즈와 ‘공공의 적’ 시리즈 등을 함께 작업하며 박중훈, 설경구와 한국 영화계를 호령했듯이, 정재영과 함께 새 전성기를 열길 기대했다. 정재영은 연기 폭이 넓은 만큼, 영화를 보는 시야도 넓다. 인기에 취하기보다 완성도 높은 영화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그는 “영화를 정확히 잘 짚는다”는 이유로 교유하게 된 한 영화평론가와 만남을 지속하며 연기 진로를 탐색한다. 평론에 귀 기울이고 평론가와 곧잘 대화 나누는 유명 배우는 정재영을 제외하고는 못 봤다. 영화를 깊이 파고들려는 그의 마음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 등 홍상수 감독과의 작업으로 이어졌고, 로카르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이란 성과를 낳았다. 정재영은 연기력에 비해 상업적으로 저평가된 배우라고 생각한다. 욕조에 머리카락 하나만 있어도 질겁하는 결벽증 인물(‘플랜맨’ㆍ2013)을 연기하고선, 발 냄새 풀풀 풍기는 ‘청결의식 제로’ 언론사 간부 역할(‘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ㆍ2015)을 맡기도 했다. 정반대 이미지의 인물을 연기해도 어색하다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 건 오롯이 연기의 힘이다. 스타라며 고자세를 유지하기보다 소탈하게 사람들과 만나며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하는 정재영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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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공간 사람

"행복을 미루지 마세요" 30대 건축가 부부의 '집밥 같은 집'

매일매일을 위한 집밥 같은 집. 건축가 부부, 표주엽(39) 이새롬(31)씨는 경기 양평 문호리에 위치한 '412하우스(대지면적 335㎡, 연면적 138.67㎡)'를 이렇게 소개한다. 이 집은 부부가 건축가로서 설계한 첫 집이자 지금까지 아파트에서만 살던 부부가 경험하는 첫 단독주택이다. 젊은 건축가 부부가 살 집을 직접 지었다는 말에 실험 정신으로 가득한 집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부부는 불필요한 공간을 줄이고 줄여, 집의 기능에 충실한 집, 철저하게 실용적인 집을 완성했다. 부부도 이 집에서 살기 전에는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서울 20평대 전셋집에 신혼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낳아 길렀다. 둘 다 건축을 전공했으니 언젠가는 집을 짓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다 우연히 들은 말 한마디가 마음을 움직였다. "TV를 보고 있는데 안톤 슐츠(독일 언론인)가 나와서 '한국인들은 행복을 유보하면서 사는 것 같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안 되겠다, 우리 부동산 가자' 한 거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이새롬)" 건축가 부부에게도 내 집 짓기는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예산의 제약이 있었고, 서울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의 땅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했다. 부동산 중개업소를 수십 차례 드나든 끝에 지금의 땅을 찾아내고서야 집 짓기에 착수할 수 있었다. 서울 20평대 아파트 전셋집 비용 안에서 집 짓기가 가능했고, 사무실이 있는 강남으로 1시간 내에 출퇴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에 맞았다. 표씨는 "서울 아파트에 거주하던 비용으로도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지를 정한 다음부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부부가 워낙 건축 철학과 취향이 비슷해서다. 부부는 집을 지을 때 꼭 만들고 싶은 공간이 아닌, 만들지 말아야 할 공간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표씨는 "흔히 좋은 집을 가리킬 때 '외국 같다' '호텔 같다' 이런 수식어를 쓰는데, 그런 '동경'에서 발단이 된 공간들은 배제했다"고 말했다. 홈짐, 오디오룸, 다이닝룸과 같은 전용룸이나 단독주택에 흔한 바비큐장 하나 없는 이유다. 일시적인 기능을 갖는 공간은 다 뺐다. "저희는 집이 기본에 충실할 때 가장 빛이 난다고 생각해요. 외국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매일 외식을 하며 살 수는 없잖아요. 생활을 위한 집은 잘 지은 백반 한 공기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표주엽)" 기본에 충실한 집을 만들겠다는 철학은 창문에서 두드러진다. 이 집은 다른 단독주택에 비해 창 크기가 작다. 창문도 꼭 필요한 곳에만 만들었다. 창 밖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게 자연 속 단독주택의 매력이지만, 여름과 겨울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창이 크고 많을수록 냉방 효과와 단열 효과가 떨어지는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해서다. 아무리 비싼 창호도 단열재가 충전된 벽보다는 효과가 떨어진다. 집이 정남향이라 창이 작아도 조도가 좋다는 점도 고려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벽면이 아닌 천창을 낸 것도 미적인 효과보다는 창의 기능을 감안한 것이다. 통상 같은 크기의 창이라 해도 벽면에 내는 창보다 천장에 만든 창의 조도 효과가 4배 높다. 또 이층집은 더운 공기가 위쪽으로 올라가 1층보다 2층이 덥기 마련인데, 2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인 계단에 창을 내서 층별 온도차를 줄이도록 했다. 표씨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즘은 무조건 작고 무조건 없는 집이 아니다"라며 "과녁의 정중앙처럼 9점, 8점 같은 여분을 허용하지 않는, 정답만 뭉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집의 중심은 주방과 거실이 나란히 배치돼 있는 1층이다. 천장의 높이만 단차를 뒀을 뿐 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아직 어린 아이(4)를 위한 설계로, 아파트에 살 때 주방과 거실이 분리돼 있어 불편함을 느꼈던 데서 비롯됐다. 이씨는 "주방과 거실이 오픈 플랜으로 경계가 없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에서는 제가 (요리할 때) 주방에 있으면 아이도 엄마가 '주방에 들어갔다'고 생각해 계속 찾았지만, 이제는 제가 주방에 있어도 거실에 있는 자신이랑 같은 공간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생활이 훨씬 편리해졌다"고 말했다. 애초부터 가족들의 생활 방식을 고려해 설계했기 때문에 동선은 군더더기가 없다. 낮에는 주로 부엌, 거실, 화장실이 있는 1층에서 생활한다. 방 3개, 화장실이 있는 2층에서는 잠만 잔다. 부부는 값비싼 건축 재료가 아닌 작은 차이만으로 개성을 담은 집을 완성했다. 대표적인 게 코너에 기역자로 배치된 거실 창과 그 옆의 벽이다. 부부는 보통 거실 벽 중앙에 크게 내는 창을 코너로 밀고 이렇게 해서 남은 벽을 미술 작품에 내줬다. 부부가 평소 좋아하는 구자현 작가의 석판화를 걸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계산된 공간이다. 마당처럼 단독주택에서 부부가 처음 경험하는 공간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했다. 부부가 관리 가능할 수 있도록,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구성하는 게 원칙이었다. 우선 마당을 지날 때 신발에 흙이 묻지 않고 집을 오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콘크리트로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은 마당에 전부 잔디를 까는 대신 3등분으로 나눠 각각 잔디, 돌, 나무 덱(deck)을 배치했다. 서로 다른 물성을 나란히 배치해 공간의 경쾌함을 살린 것은 덤이다. 이씨는 "조그만 공간이라도 관리가 잘되면 충분히 아름답다"며 "저희가 즐겁게 힘들이지 않고 관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작은 마당이지만 주택살이의 기쁨을 누리기에는 충분하다. 마당에 아이를 위한 수영장을 만들지 않아도,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굽지 않아도, 자연스레 경험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이다. 아침의 시작부터 다르다. 표씨는 "아파트에 살 때는 출근할 때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엘리베이터 버튼부터 눌렀지만, 이제는 문을 열면 폐 속으로 신선한 공기가 밀려들고 새소리가 들린다"며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씨도 "아이와 내가 마당에서 맨발로 걸어다닐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고 했다. 집을 짓고 살아본 지 1년, 부부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씨는 "전에는 낮과 밤의 주기로 하루하루를 살았다면, 이제는 계절의 주기를 느끼며 살다 보니 마음이 여유로워졌다"고 했다. "겨울이 지나 봄으로 넘어갈 때, 앙상한 가지에서 엄청난 자연의 기운, 땅의 기운이 느껴지더라고요." 부부가 집을 짓지 않았더라면 누리지 못했을 행복이다.

민주당 대선 레이스 '시동'

대선주자 이광재 "이번 대선을 마지막 기회로 본다"

더불어민주당 내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생)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이광재(56) 의원은 22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을 마지막 기회로 본다"고 했다. 86세대로서 이번 대선을 계기로 청년 세대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도록 돕는 역할을 담당하고 물러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 당시 38세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았던 그는 "86세대도 혁신하지 못하면 낡은 세력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대선 출마를 통해 "기회가 넘치는 나라, 창업국가 대한민국"을 미래비전으로 제시했다. 여당에서도 '기업·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다'고 평가받는 그는 디지털 전환과 기술혁명, 일자리 아이디어를 힘주어 설명했다. 다만 삼성으로부터 대선 자금을 받은 전력에는 "변명할 생각이 없다.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_국민의힘 수장으로 36세 이준석 대표가 선출됐다. "이준석 현상은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 탓이다. 20년 전에도 기성정치에 물들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이 50세, 이해찬 국무총리가 52세였다. 강금실·유시민·이창동 등 40대 장관들이 탄생했고, 이들이 한국 정치를 이끌어왔다. 디지털·그린 시대를 앞둔 지금은 제가 세대교체의 주역이 되고자 한다." _86세대의 용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는데. "86세대인 봉준호 영화감독은 학생운동 출신이지만 변신해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86세대가 혁신하지 않으면 낡은 세력이 되고, 혁신하면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저는 이번 대선을 (86세대의) 마지막 기회라고 보고, 노후 세대와 청년 세대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 데 쓰고 싶다." _여권 유력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평가는. “이 지사는 순발력이 좋고 강단도 있다. 57세로 '50대 정치인'이란 점은 비슷하다. 다만 대통령은 국가운영자다. 저는 청와대와 국회를 모두 경험했고, 지난 10년간 정치권 밖에 있어 신세 진 사람도 없다. 제가 정치 개혁의 적임자인 이유다." _대선후보 경선 연기를 둘러싼 민주당 내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졌고, 국민의 50%가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경선을 연기할 '중대한 사유'가 발생했다고 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문제를 일단락 짓고 대선 후보를 뽑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다. 연기를 반대하는 이재명 지사가 통 큰 결단을 해야 한다." _야권주자로 꼽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평가는. "둘 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분들이다. 그런데 대통령 꿈을 꾸면서 사정의 칼날을 휘둘렀다. 상식적이지 않고 국민에 대한 신의 문제도 있다. 특히 최 원장은 대선에 나오려면 최소한 1년 전에 직을 그만뒀어야 했다." _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을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가 삼성을 찾아가거나 만난 횟수만 9번에 달한다. 그 때마다 삼성은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재벌로부터 투자, 일자리 창출을 끌어내고 기업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대타협을 해야 한다." _'친기업' 이미지가 우려되지 않나. "좋은 일자리가 생기려면 기업이 투자해야 한다. 일자리가 없어 청년들이 힘들어 하는 상황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당에서도 저와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_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했는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몇 차례 사과한 만큼 송 대표가 사과하지 않았어도 됐다. 청년들이 분노하는 건 기회가 박탈당했다고 느끼고 있어서다. 청년들을 위해 일자리를 대대적으로 만드는 창업국가, 주거와 돌봄, 교육이 하나 된 대학도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싶다." _삼성에서 대선자금을 받았고, 박연차 게이트로 10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잘못한 부분이고 용서를 구한다. 더 겸손하게,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해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갚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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