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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웬 외국인 관광객… 돌아온 구걸족 ‘베그패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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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웬 외국인 관광객… 돌아온 구걸족 ‘베그패커스’

입력
2020.05.23 18:03
수정
2020.05.2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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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종로 일대서 다시 모습 드러내 

한 외국인 관광객이 21일 서울 종로구 서울YMCA 앞에서 고국인 러시아로 돌아갈 돈이 없다며 구걸을 하고 있다. 라파엘 라시드 제공
한 외국인 관광객이 21일 서울 종로구 서울YMCA 앞에서 고국인 러시아로 돌아갈 돈이 없다며 구걸을 하고 있다. 라파엘 라시드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사라졌던 외국인 구걸 관광족, 이른바 ‘베그패커(begpacker)’가 다시 출몰했다. 한겨울 추위로 거리에서 자취를 감췄던 지난해 11월 이후 반년 만이다.

2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역 일대에 여비를 구걸하는 외국인 관광객, 베그패커들이 하나 둘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근 상인들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로 최근 2, 3개월간 외국인 관광객 수가 급감, 이맘때쯤이면 도심 곳곳에서 발견됐던 베그페커도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5월 중순 들어 낮 기온이 25도까지 오르는 등 봄 날씨가 완연해지고 신종 코로나 확산 속도까지 잦아들면서 돈을 구걸하는 외국인들이 종로 한 가운데서 속속 목격되고 있다.

베그페커(begpacker)는 ‘구걸하다’는 뜻의 영어 ‘beg’와 ‘배낭여행자’를 뜻하는 ‘backpacker’의 합성어로, 구걸로 여비를 마련하며 전 세계 돌아다니는 여행객들을 일컫는다. 서구 여행객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졌다. 주로 물가가 저렴한 태국, 말레이사아 등에서 목격되기 시작돼 최근엔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주요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자신의 여행을 지원해달라거나, 지갑 등을 분실해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고 적힌 안내문을 들고 유동 인구가 많은 관광지나 도심 한 가운데에서 구걸한다. 일부는 자신이 촬영한 관광지의 사진을 판매하거나 악기를 연주해 기부를 요청하기도 한다.

서울 종로 일대에서 여행비를 구걸하는 외국인 여행자들. 라파엘 라시드 제공
서울 종로 일대에서 여행비를 구걸하는 외국인 여행자들. 라파엘 라시드 제공

지난 21일 종로구 서울YMCA 앞에서는 자신을 러시아 국적의 ‘니콜라이’라고 밝힌 한 외국인 여행자가 인도에 주저 앉아 여비를 구걸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 여행자는 안내문에 “여권과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으로 모든 항공기가 결항돼 비싼 비행기 티켓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행인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베그패커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행인들, 특히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노인들을 상대로 금품을 받아내기 때문이다. 종로에서 20년 넘게 금은방을 운영해왔다는 김모(52)씨는 “젊은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는데, 마음 약한 어르신들이 3,000원, 5,000원씩 주고 가는 게 대부분”이라며 “한동안 안 보였는데 요즘 들어 다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최진혁(38)씨도 “지난해 여름에는 한 외국인이 자리를 바꿔가며 보름 넘게 구걸을 하는 경우까지 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관광객이 아닌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으로, 조직적으로 불법 모금 활동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한국에 9년째 거주 중인 영국 출신 프리랜서 기자 라파엘 라시드씨는 “동일한 구걸 안내문을 여러 베그패커가 돌려가며 사용하는 경우도 자주 발견된다”라며 “안내문의 ‘결항’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등 외국인에게 생소한 한글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의심스러운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베그패커의 구걸행위는 현행법상 명백한 위법 행위다. 경범죄처벌법상 국적에 상관 없이 구걸 행위를 하는 것은 해당 법 위반으로 범칙금 10만원이 부과될 수 있다. 국내에 외국인 관광비자로 입국한 뒤 돈을 버는 행위 또한 출입국관리법 위반이다.

지난해에는 미국 국적의 베그패커 A(28)씨가 송파구 잠실역 편의점에서 음식을 훔치고 우산으로 편의점 근무자를 폭행해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은 바 있다. 관광비자로 입국한 A씨는 체크카드를 분실해 공원에서 노숙을 하며 여행 경비를 벌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21일 서울 종로 일대에서 여행비를 구걸하던 한 외국인 여행객의 안내문. 라파엘 라시드 제공
21일 서울 종로 일대에서 여행비를 구걸하던 한 외국인 여행객의 안내문. 라파엘 라시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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