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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들, 방부터 빼세요”... 의원회관 떠밀려 떠나는 현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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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들, 방부터 빼세요”... 의원회관 떠밀려 떠나는 현역들

입력
2020.05.20 01:00
수정
2020.05.20 09:1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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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박구원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박구원 기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모를까. 방을 일찍 빼지 않아서 청소, 도배가 늦어지는 게 문제라니. 뭐가 더 중요한 걸까요?”

20대 국회를 끝으로 여의도를 떠나는 채이배 민생당 의원이 최근 페이스북에 적은 글이다. 채 의원 임기는 이달 29일까지다. 임기가 열흘 남았는데도 국회 의원회관 방을 빼라는 ‘압박’이 직ㆍ간접적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회관에 새로 입주할 당선자를 위해 인테리어를 새로 해야 하니, 미리 방을 빼 달라’는 취지다. 채 의원은 이에 대해 이렇게 항변한다. “저와 보좌진은 이번 주에도 정책간담회를 하고, 의정보고서를 제작하고, 상장회사법 개정안 등을 발의하기 위한 작업을 했다. 방 빼기 싫어서 버티는 게 아니다.”

국회 의원회관은 요즘 이사철이다. 21대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이어가지 않는 의원들은 사무실을 비워 주고, 당선자들은 앞으로 4년 동안 일하게 될 사무실 단장을 속속 시작하고 있다. 당선자 사이에서는 대통령을 배출하거나 전망이 좋은 방을 차지하려는 눈치싸움이 한창이다. 한편에선 현역 의원들이 아직 일 할 시간이 남았음에도 떠밀려 떠나는 씁쓸한 장면도 연출되고 있다.

◇전망 좋은 로열층, ‘대통령방’ 인기

10층 건물인 의원회관에는 전통적으로 의원들이 선호하는 ‘로열층’이 있다. 국회 잔디밭과 분수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면서도 너무 높지 않아 이동이 쉬운 6~8층이다. 보통 로열층은 다선 의원들의 차지다. 의원실은 배분 방식은 이렇다. 국회 사무처가 정당별 구역을 정해주면 각 당이 의원들과 협의해 배분하는데, 선수가 높은 의원들부터 차지하는 게 관행이다.

대통령을 배출한 방은 의원들 사이에서 1순위다. 문재인 대통령이 썼던 325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썼던 638호는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용한 312호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쓴 545호는 누가 새 입주자가 될지 관심이다. 방 번호에 정치적 상징성이 담긴 곳도 인기다. 5ㆍ18 민주화운동을 의미하는 518호, 6ㆍ15 남북공동회담을 상징하는 615호 등이다. 박지원 민생당 의원의 낙선으로 빈방이 된 615호의 경우 민주당이 DJ계열을 잇는 차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당선자가 쓸 것을 이미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최고층이어서 시야가 좋은 10층도 선호하는 의원들이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1001호를 사용했다. 10층은 경호가 용이해 24시간 경호를 받는 탈북민 출신 태영호 통합당 당선자와 지성호 미래한국당 당선자가 10층에 터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제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개원종합지원실에서 국회 사무처 관계자가 당선인 등록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개원종합지원실에서 국회 사무처 관계자가 당선인 등록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기 남았는데…” 밀려 떠나는 현역들

다음 국회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사무실을 비워주는 것은 오랜 관행이다. 국회 사무처는 인테리어 등을 이유로 ‘5월 15일까지 퇴실해달라’고 일찌감치 각 의원실에 협조요청을 했다고 한다. 국회 관계자는 “아직 회기가 종료된 것은 아니라 공문을 보내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구두로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 20대 국회 임기가 남아있는데도 방부터 빼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낙선한 한 현역 의원은 “떠날 땐 떠나더라도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하는데, 20일 국회 본회의도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이삿짐을 모두 빼야 하니 당황스럽다”고 했다. 29일 임기를 마치는 또 다른 비례대표 의원도 “임기가 정해져 있는데도 임기까지 사무실을 쓰려면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씁쓸하다”며 “국회 측에서 주말을 이용해 이사 기간을 정해주는 등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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