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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직원들 치밀했던 마녀사냥 “박현정 이길 아이템은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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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 직원들 치밀했던 마녀사냥 “박현정 이길 아이템은 성희롱”

입력
2020.05.02 17:00
수정
2020.05.02 18:0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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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단체방에 범죄모의 정황 선명

미친Οㆍ정신병자… 욕설과 저주로 도배

朴 마녀사냥 당하다 6년 만에 누명 벗어


6년 전 박현정(58)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한 서울시향 직원들의 작전과 실행과정은 치밀했다. 당시엔 박 전 대표가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사람들은 쉽게 믿어주지 않았다. 직원들의 주도 면밀하고 대담한 계획에 그는 성희롱과 강제추행을 일삼고 직원들을 불합리하게 대하는 못된 상사로 매도될 뿐이었다. 마녀사냥이 따로 없었다.

직원들의 일방적 주장에 묻힐 뻔한 사건의 실체는 그들이 교환한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가 발견되면서 감춰진 이면이 드러났다. 박 전 대표가 이를 입수하지 못했다면 그의 명예는 영원히 회복할 길이 없을 뻔했다. 서울시향 직원들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보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한 사람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천박한 표현과 욕설이 예사로 나왔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범죄를 모의하고 사건을 왜곡, 발전시키는 정황도 적나라하게 묘사돼있다. 정명훈 당시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부인과 측근들까지 박 전 대표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회생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대응을 주문하는 내용도 발견된다.

박 전 대표는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6년 동안 수사와 재판에 매달렸고, 지난 2월 대법원 판결로 누명을 벗었다. 반면 박 전 대표를 궁지에 몰아넣으며 한때 기세 등등했던 직원들은 모두 범죄혐의가 인정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상당수는 서울시향에서 승승장구하며 더 잘 나가고 있다. 박 전 대표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엔 권선징악이 사라졌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진실을 드러낸 ‘스모킹건’으로 평가 받는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 대화내용을 입수해 6년 전 발생한 서울시향 사태의 단면을 정리했다.


◇가짜 성추행 피해자 어떻게 탄생했나

박현정 전 대표를 물러나게 만든 결정적 사건인 ‘넥타이 성추행 사건’은 서울시향 직원들의 대화방에서 얼개가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회식 도중 박 전 대표가 간장 종지를 엎자 이를 닦던 남자 직원의 넥타이를 당겨 추행했다’는 게 사건의 핵심이다. 목격자를 자처한 직원은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성추행 피해를 주장한 직원에게 회식 일시와 장소, 참석자, 성추행 전후 상황, 박 전 대표의 주사(酒邪) 등을 조목조목 정리한 내용을 전송하며 “술자리 진술이니까 참고하라”고 전했다. 당사자보다 목격자가 사건을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애초에 그런 사건은 없었기에 박 전 대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성추행 피해 당사자로 등장했던 직원은 구속영장까지 청구된 끝에 재판에 넘겨졌다.

가짜 성추행 사건이 형사고소로까지 이어진 배경에는 정명훈 당시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부인 구모씨의 입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짜 성추행’ 직원이 박 전 대표에 대한 고소를 망설이자, 구씨는 “망설이는 남자 직원을 설득하라”고 정 감독의 비서에게 지시했다. 이후 비서가 “사모님! 고소 직원 섭외했습니다. 사모님이 어드바이스 해주신대로 두시간 잡고 쎄게 했다가 부드럽게 했다 했더니 잘 됐습니다”라고 보고하자, 구씨는 “We shall prevail!(우리가 이겼다!)”라고 화답했다.



◇대중에게 통하는 스토리메이킹 만들어라

직원들은 박현정 전 대표를 서울시향에서 몰아내기 위해 부정적 여론 조성에도 힘썼다. 이러한 정황은 박 전 대표를 고소하기 위한 고소장 작성 과정에서 드러나 있다. 변호사와 면담한 직원 윤모씨가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고소내용이) 웬간한 걸로는 안 통하니, 일반인들한테도 잘 통할만한 걸로 스토리메이킹 필요”라고 언급하자, 직원 백모씨는 “완전 변호사랑 나랑 오버와 왜곡 쩔어” “김수현 작가 저리 가라”라며 통쾌해했다.

고소장에 과장이나 거짓을 담으려고 한 정황도 엿보인다. 대화방에서 한 직원이 “성희롱+성희롱=정신병으로 연결 짓고, 남친 있었으면 이거 때문에 헤어진 걸로 했어야 한데요 ㅋㅋㅋㅋ 중요!! 어디 가서 절대로 떠들지 마요. 이거 세어나가면 끝장남”이라며 변호사 조언을 전달하자, 대화방에 참여한 다른 직원들은 “아 너무 재밌다” “웃겨 죽겠음”이라고 호응했다.

그러나 이들의 모의는 실패했다. 직원들의 일방적 주장으로 박 전 대표는 9개 혐의로 고소 당했지만, 검찰에서 8개 혐의가 무혐의로 결론 났고, 기소된 ‘손가락 찌르기’ 사건(서울시향 직원이 박 전 대표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손가락으로 몸을 찔렸다고 주장한 사건)도 무죄가 선고됐다. ‘넥타이 성추행 사건’을 주장한 직원은 박 전 대표에게 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핸드폰 인천 앞바다에 버려야

직원들은 박 전 대표를 몰아내기 위한 준비를 마친 뒤에도 더욱 강도 높은 대응책을 논의했다. 한 직원이 “정말 안타깝다. 내일이면 (박 전 대표의) 인생이 망가질텐데… 측은해…”라고 하자, 다른 직원은 “ㅎㅎ 글게(그러게). 이제 우리 대에서 끝내 주는 걸로. 그녀에겐 노 모어(no more) 사회생활”이라고 답했다.

이어서 “한번에 밟아 버려야죠. (중략) 미친 여자는 지옥에 보내야죠”라며 말하자, 다른 직원은 “진짜 정신병자! 그러니까 다시는 회생을 못하게 폭격을 해야 해”라고 맞장구를 쳤다.

서울시향 직원들과 구씨는 이 같은 모의과정이 드러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했던 것 같다. 구씨는 “And all our messages need to be promptly deleted!(그리고 우리가 주고 받은 모든 메시지는 신속하게 지워야 한다!)”며 메시지 삭제를 지시했다. 성추행 피해 당사자로 나섰던 직원도 “카카오톡 서버 불태워야 해… 젠장. 핸드폰 인천 앞 바다에 버려야 하나. 돌 매달아서”라며 대화 내용이 공개될 경우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강철원 기자 strong@hankookilbo.com

그래픽 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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