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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 누명벗기 소송 6년 “이 나라 양심ㆍ정의 다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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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정 누명벗기 소송 6년 “이 나라 양심ㆍ정의 다 어디 갔나”

입력
2020.05.02 04:30
수정
2020.05.02 15:1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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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서울시향 직원 10명 “대표가 성추행ㆍ폭언” 고소

폭로내용 모두 무혐의ㆍ무죄 ‘박현정 몰아내기’ 모의 드러나

주동자 승승장구 서울시는 보호 “엘리트 부도덕 생생히 느껴”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는 2014년 12월 성희롱과 막말 당사자로 낙인 찍혀 서울시향에서 불명예 퇴진한 뒤 진실을 밝히는데 전념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평창동에서 만난 그는 6년간의 소송을 통해 “대한민국엔 권선징악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정준희 인턴기자.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는 2014년 12월 성희롱과 막말 당사자로 낙인 찍혀 서울시향에서 불명예 퇴진한 뒤 진실을 밝히는데 전념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평창동에서 만난 그는 6년간의 소송을 통해 “대한민국엔 권선징악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정준희 인턴기자.

2014년 말 연일 신문지면을 도배했던 ‘서울시향 사태’는 잊혀진 사건이다. 6년이나 지난 사건을 애써 기억하고 추적하는 사람도 드물거니와, 사건 초기의 낙인 찍기 효과 때문에 잘못된 결론이 사람들 머리 속에 주입된 영향도 크다.

‘성추행과 막말 여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이어온 박현정(58)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의 지난 6년은 그래서 더 힘들었다. 자신을 악마처럼 묘사한 TV와 신문, 인터넷을 멀리한 채 오로지 수사와 재판에 매달려 자신의 50대를 보냈다.

서울시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난 박 전 대표는 한동안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사람’으로 살았다. 서울시는 그를 ‘이상한 여성’으로 간주했고, 언론은 그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 사건 이전에는 주변에서 나를 너무 믿어서 문제였을 정도로 신뢰의 상징처럼 살아왔는데, 그 사건 이후로 모든 게 바뀌었다. 아무도 나를 안 믿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입증을 해야 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평창동 카페에서 만난 박 전 대표가 양손에 서류더미가 가득 담긴 가방을 들고 나온 이유다. 그는 “사방에서 나를 공격하고 수사기관도 의심했기 때문에 혼자 막아내야 했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 보안관들이 있어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총 들고 다니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생명 전무를 거쳐, 2013년 여성리더십연구원 대표를 지내던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권유로 같은 해 2월 서울시향 대표로 취임했다. 그러나 이듬해 10월 박 전 대표로부터 폭언과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탄원서가 접수된 뒤 출처불명의 호소문까지 유포되면서 떠밀리듯 서울시향을 떠났다.

호소문을 작성한 서울시향 직원 10명은 그것도 모자라 그를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해 허위내용으로 범벅이 된 고소장을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경찰은 강제추행과 성희롱, 업무방해 등 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검찰은 ‘손가락 찌르기’ 사건(서울시향 직원이 박 전 대표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손가락으로 몸을 찔렸다고 주장한 사건)에 집착해 폭행 혐의로 그를 법정에 세웠지만 올해 2월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반면 박 전 대표를 무고했던 직원 10명은 거꾸로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돼 줄줄이 재판을 받고 있다. 진실은 드러났지만 거짓과 너무 오래 마주한 탓인지 그는 여전히 지쳐 있었다. 다음은 박 전 대표와의 일문일답.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는 2014년 서울시향을 떠난 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깨졌다고 말했다. TV와 신문, 인터넷을 보는 게 여전히 두렵다. 정준희 인턴기자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는 2014년 서울시향을 떠난 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깨졌다고 말했다. TV와 신문, 인터넷을 보는 게 여전히 두렵다. 정준희 인턴기자

-오랜 소송으로 마음고생이 심했겠다.

“서울시향에서 물러났을 때가 52세였는데 지금 58세가 돼버렸다. 소송하느라 내 50대가 다 날아갔다.”

-당신을 무고한 직원들에 대해 실망이 컸을 텐데.

“실망이나 배신감이란 표현은 너무 약하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 검은 머리는 거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아무도 안 믿게 되니까 오히려 편해졌다.”

-2014년 처음 사건이 불거졌을 때 주변 반응은 어떠했나.

“가족이나 나를 겪어본 사람들은 (세상이 뭐라고 나를 비난해도) 나를 믿었다. 17년 동안 (삼성에서) 회사 생활하는 동안 나와 어울렸던 사람들은 성추행 의혹을 접하고 ‘이건 전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나랑 일했던 직원들은 내 말투랑 스타일을 안다. 엄격하게 따지는 걸 아니까.”

-이제 당신은 누명을 벗고, 당신을 모함한 사람들은 재판을 받고 있다. 심리적으로 괜찮아졌나.

“안정을 되찾은 건 맞지만, 예전엔 나에 대한 이상한 기사가 눈에 들어올 까봐 인터넷에도 ‘몰래’ 접속해 궁금한 것만 찾아 보고, 얼른 창을 닫았다. 회사 다닐 때는 하루에 신문을 4개씩 봤는데, 지금은 TV를 켜기 두렵고 신문이 손에서 펴지지를 않는다.”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계속 공격을 받았는데, 어떻게 견뎠나.

“힘들었지만 내가 진실을 아니까 당당했다.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이 뭐라고 해도 나는 진실을 알지 않나. 상대는 내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기를 바라니까 더 멈출 수 없었다. 나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멈출 수 있겠나.”

-몇 년이 걸려도 진실을 꼭 밝히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경찰도 처음엔 선입견 때문에 내 말을 안 믿었다. 내가 자료를 제출하고 경찰이 압수수색을 해보니까 나를 고소한 직원들이 범행을 모의한 증거가 나왔다. 경찰도 조사할수록 놀라더라. 직원 10명 모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미국 국적으로 해외에 체류 중이던 정명훈 당시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부인 구모씨는 기소중지 의견으로 송치됐다. 그래서 검찰 넘어가면 굉장히 빨리 사건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박 전 대표 기대와 달리 2018년 5월 서울중앙지검은 경찰과 다소 다른 수사결과를 내놨다.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가짜 성추행’을 모의해 박 전 대표의 명예를 훼손한 서울시향 직원 1명만 기소하고 9명은 무혐의 처분한 것이다. 박 전 대표가 항고하자 재수사에 착수한 서울고검은 수사결과를 뒤집었다. 직원 10명의 범죄 혐의를 모두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박현정 죽이기’의 지휘자로 의심 받았던 정명훈 감독의 부인 구씨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직원들의 범행모의 정황은 박 전 대표가 ‘허위 호소문을 작성한 익명의 17인을 찾아달라’고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한 뒤 실시된 압수수색에서 드러났다. 서울시향 직원들이 박 전 대표를 몰아내기 위한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 대화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카카오톡과 문자메시지에는 입에 담기도 민망한 저급하고 황당한 표현들이 많았다. 처음 접했을 때 상당히 놀랐을 것 같다.

“자신을 죽이기 위한 살인모의 현장을 목격했을 때 기분이 어떻겠나. 한국 엘리트집단의 부도덕함을 낱낱이 봤다. (직원들은 대부분 국내 명문대나 외국대학을 졸업했고, 그들의 부모는 전직 국회의원ㆍ언론사 사장ㆍ유명 교수ㆍ대기업 임원 등이었다.) 그들은 자기 이익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데 한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당시에 정명훈 감독과 박원순 시장에게 붙어있으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탓인지 거짓말을 해서라도 나를 고소하는데 참여하려고 했다. 그래야지 주류에 속하게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정명훈 감독 부부가 이 사건에 관여한 부분이 있는 건가.

“나는 그렇게 본다. 증거가 많다.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며) 정 감독의 부인 구모씨가 ‘감독님은 그녀(박현정 전 대표)가 더 나간다면 우리는 언론유포로 대응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녀의 미래는 영원히 끝날 것’이라고 했다.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라거나 유죄가 될 때까지 최대한 밀어붙이라’고도 했다. 이외에도 개입한 정황은 많다.”

-도대체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당신을 몰아내려고 한 것 같나.

“정명훈 감독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지난 10년간 이명박ㆍ오세훈ㆍ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신에게 아무런 제약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사사건건 ‘규정 위반’이라고 문제를 삼으니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정 감독이 서울시향 소속인데도 개인 영리활동을 하는 걸 부당하다고 지적했고, 서울시 산하조직이 정명훈의 사조직처럼 운영되는 것을 비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당신을 쫓아내려고 했나.

“그렇다. 정명훈 감독 쪽에서 박 시장 측에 나를 해고하라고 요청한 정황이 여럿 있다. 박 시장은 2014년 12월 1일 나를 만나서 나가달라고 말했다. 내가 시의회 보고는 마치고 나가겠다고 하니까 화를 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정 감독의 비서는 2014년 11월 29일 서울시 정무비서관에게 ‘시장님께 도움을 요청 드린 지 두 달을 향하고 있지만 (박현정 대표의) 11월 사임이 요원해 보여 모든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다’며 호소문 유포 계획을 알린다. 박 시장 부인 강난희씨가 정 감독의 부인 구씨에게 전달했다는 11월 말 문자메시지에선 ‘잘 모셔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박현정 대표 해고 요청 건) 시장님께 말씀 드리고 전달해 드렸습니다. 아마 잘 해결될 겁니다’라고 말하는 부분도 있다.”

-2014년 12월19일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당신에 대해 ‘서울시향 직원에 대한 성희롱 및 언어폭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인정된다’는 내용의 결정을 발표했다. 조사내용이 틀린 건가.

“당시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조사 받은 직원들은 날 죽이려고 범죄를 모의한 게 드러나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 그들이 그때 나에 대해 말했던 내용들이 대부분 거짓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반면 가해자로 지목됐던 나는 모두 무혐의 처분 받았다. 그럼 누구 말이 맞는 건가. 당시 사실관계 확인도 안 하고 직원들 말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결론 정해놓고 끼워 맞추기 조사를 했던 3명은 소위 인권전문가라고 불리던 사람들이다. 이제 추락한 내 인권은 어떻게 회복시켜 줄 셈인가.”

-당신은 여성인데다가 여성문제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해서 놀랐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더 황당해하는 거다. 나는 서울시향에 오기 전에 여성리더십연구원을 설립해 여성문제를 연구했고, 삼성그룹 재직 당시엔 성희롱 예방교육을 도입한 사람이다. 여성단체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수시로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신 사건이 불거지니까 여성단체에서 당신에게 적대적으로 나왔다는 건가.

“나는 다시는 여성단체 사람들하고 안 만날 거다. 내가 당하고 보니까 여성단체의 문제점을 더 잘 알게 됐다. 직원들이 나를 고소한 9개 사건에 대해 경찰이 모두 무혐의 처분하고, 검찰은 그 중 ‘손가락 찌르기’ 사건 하나만 폭행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데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1심 법원에 나를 처벌해달라고 탄원서를 낸다. 성추행이 아닌 단순폭행 사건에 성폭력상담소가 나서는 이유가 뭔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직원한테는 여성가족부에서 국선변호인까지 선임해줬다. 난 결국 무죄를 받았다. ‘가짜 미투’까지 감싸고 돌면 ‘진짜 미투’마저 보호를 못 받을 수 있다.”

-당신의 결백함은 드러났고 서울시향 직원들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뒤늦게라도 당신에게 사과한 직원들은 없나.

“너무 순진한 말씀 하지 마시라. 그런 사람 한 명도 없다. 그럴 수도 없다. 범행 모의한 주동자들은 서울시향에서 승진해서 지금 더 잘 나가고 있다. 나한테 성추행 당했다고 허위 고소한 어떤 직원은 구속영장 청구된 지 한 달 뒤에 승진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 이게 정상적인 상황인가. 우리나라에서 양심과 정의는 없어진 지 오래 됐다.”

-그들이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런 거 전혀 없다. 양심 같은 얘기를 하면 내가 정말 슬프다. 앞으로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 직원들 입장에선 주동자일수록 더 잘 나가고, 세월이 흘러도 서울시가 계속 보호하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겠나. ‘역시 정명훈 감독이 세고 박원순 시장이 막강하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나.”

-그럼 6년 소송 끝에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무엇인가.

“누구든 자기들이 한 일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하는데, 대한민국에는 이제 권선징악이 사라졌다. 나쁜 짓 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승승장구하는데, 이걸 바라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 ‘양심을 팔아서라도 나도 저 사람들과 적당히 동조하며 지내자’라고 하지 않겠나.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

강철원 기자 strong@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그래픽 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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