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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레터] 코로나 봉쇄, 불가피한 희생일까 가혹한 차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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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레터] 코로나 봉쇄, 불가피한 희생일까 가혹한 차별일까

입력
2020.03.11 08:00
수정
2020.03.1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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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사상 첫 전국 봉쇄 선언…세계 각국 ‘사람의 이동 차단’ 나서

의학적 효과 여부는 물론 개인의 자유, 경제 활동 침해 논란도

이탈리아 남부 도시 포자 교도소에서 9일 면회금지에 반발하며 폭동을 벌인 재소자들이 교도소 울타리에 올라와 있다. 포자=EPA 연합뉴스
이탈리아 남부 도시 포자 교도소에서 9일 면회금지에 반발하며 폭동을 벌인 재소자들이 교도소 울타리에 올라와 있다. 포자=EPA 연합뉴스

세계 곳곳에 제2, 제3의 ‘우한’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가장 먼저 발생한 중국은 지난 1월 23일 후베이(湖北)성의 성도(省都)인 우한(武漢)을 전면 봉쇄했는데요. 신중국 건국 이후 70년간 성도급 대도시가 폐쇄된 건 처음이었지요. 예고 없는 ‘무차별 봉쇄’에 대한 찬반 논란이 끝나기도 전, 이번엔 사망자와 확진자가 늘고 있는 이탈리아가 8일(현지시간) 롬바르디아주를 비롯해 15개 지역에 지역 봉쇄에 준하는 ‘레드존’을 지정한 데 이어 9일에는 아예 이를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10일부터 이탈리아 전국 모든 지역에 대해 이동제한령이 발효된 겁니다.

중국과 한국은 이제 신규 확진자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 이란 등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봉쇄되는 지역이 더 나올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관련 기사보기: 이탈리아 레드존 지정 이어 미국서도 봉쇄론... 글로벌 경제 ‘풍전등화’)

◇중국도 못한 전국 봉쇄를 이탈리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증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컨벤션 센터를 급거 개조한 중국 우한의 임시 병원이 7일 오후 모든 환자가 퇴원하거나 타병원으로 이송된 덕분에 적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한=신화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증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컨벤션 센터를 급거 개조한 중국 우한의 임시 병원이 7일 오후 모든 환자가 퇴원하거나 타병원으로 이송된 덕분에 적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한=신화 연합뉴스

중국은 지난 1월 23일 우한을 떠나는 항공편과 기차, 장거리 버스 운영을 중단했죠. 또 시내버스와 지하철 등 도시 내 대중교통 운영을 전면 중단하는 긴급조치도 함께 내리면서 사실상 전면적 봉쇄 조치로 받아들여졌는데요. 인구 1,100만명에 대한 중국의 우한 봉쇄조치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탈리아가 한 발 더 나갔죠. 코로나19 확진자가 9일 기준 하루에만 1,500명을 넘어서고 누적 확진자가 9,000여명을 넘어서자 8일(현지시간) 15개 지역을 레드존으로 지정하고 인구의 4분의 1인 1,600만명에 대해 이동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고요. 9일에는 아예 전국을 봉쇄하는 초강수를 뒀습니다. 주세페 콘테 총리는 “모든 국민은 집에 머물러 달라”고 당부했는데요. 이에 따라 6,000만명의 이탈리아 국민은 업무나 건강 등의 이유를 제외하곤 거주도시 밖 어느 곳으로도 이동할 수 없게 됐습니다. 되도록 집밖으로 나오면 안 되지만 지역 내 이동까지는 강제로 막지 않는다고 해요. 기간은 4월 3일까지입니다만 더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게 외신들의 전망입니다.

◇우한은 봉쇄 효과를 거둔 거 아냐?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2015년 12월(위 사진)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던 홍콩의 한 전망대. 지난 8일에는 마스크를 쓴 남성 한 명만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2015년 12월(위 사진)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던 홍콩의 한 전망대. 지난 8일에는 마스크를 쓴 남성 한 명만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숫자만 보면 중국의 봉쇄조치가 효과가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10일 발표에서 전날 하루 동안 코로나19 사망자는 17명, 신규 확진 환자는 19명 늘어났다고 밝혔습니다. 신규 확진자는 전날 40명에 비해서도 크게 줄어든 수치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감소 추세가 정확한 통계에 기초한 것인지, 또 실제 봉쇄조치의 효과인지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먼저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24일 “우한 봉쇄가 코로나19를 막는데 큰 도움이 됐고, 우한 시민들의 공헌을 인정해야 한다. 세계가 당신들에게 빚졌다”며 중국을 편들었습니다. 이어 이탈리아 북부 지역 봉쇄에 대해서는 “코로나19 확산을 늦추기 위한 대담하고 용기 있는 조치”라고 높이 평가했는데요. 안토니 파우치 미국 국립 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장은 ‘폭스뉴스선데이’에 “아무도 나가고 들어가지 못하는 (봉쇄)정책이 가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우한 봉쇄조치가 닷새 빨랐다면 환자 3분의 2가 줄었을 것이라는 중국 연구진의 분석 결과도 나왔습니다.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에 따르면 중국 호흡기 질병 최고 권위자인 중난산(鐘南山) 중국공정원 원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최근 흉부질환 저널에 게재한 논문에서 후베이성을 다른 지역으로부터 격리한 조치가 5일 빨랐다면 감염자 수가 현재의 3분의 1로 그러니까 2만5,000명을 넘지 않았을 것으로 추산했다는 겁니다.

◇봉쇄가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는 분석도 있던데?

발병 진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이 봉쇄된 지 26일째를 맞은 17일(현지시간) 거대한 병실로 탈바꿈한 우한 스포츠센터에 입원중인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한=신화 뉴시스
발병 진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이 봉쇄된 지 26일째를 맞은 17일(현지시간) 거대한 병실로 탈바꿈한 우한 스포츠센터에 입원중인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한=신화 뉴시스

맞습니다. 마테오 차이나치 미국 노스이스턴대 생물사회기술시스템모델링연구소 연구팀 등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여행 제한이 코로나19의 확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을 게재했는데요. 핵심은 1월 23일 시행된 우한 봉쇄 조치는 전염병 확산을 3~5일 정도 지연시켰을 뿐 확산 자체를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겁니다. 우한 봉쇄 전 이미 대부분의 중국 도시에 감염자가 존재했기 때문에 봉쇄 자체가 전체 환자 수를 줄이는 데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거지요.

니콜 에렛 미국 워싱턴대 교수도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여행 제한이 장기적으로 감염병 확산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증거는 많지 않다”고 밝혔는데요. 에렛 교수와 연구진들은 에볼라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 당시에도 여행 제한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었을 뿐이라고도 강조했습니다.

앞서 중국 질병통제역학센터 고문인 크리스토퍼 다이 옥스퍼드대 교수와 티안후아이유 중국 베이징사범대 연구원 등의 국제공동연구팀도 도시 봉쇄는 코로나19 전파를 불과 2.91일 늦추는데 그쳤다고 발표했지요.

◇효과만 있다면 무조건 봉쇄를 해도 되는 거야?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이 9일 텅텅 비어 있다. 밀라노=EPA 연합뉴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이 9일 텅텅 비어 있다. 밀라노=EPA 연합뉴스

봉쇄 전략이 확산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도 대도시, 나아가 국가 전체를 차단하고 봉쇄하는 게 과연 옳은 판단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실제 중국의 우한 봉쇄조치로 우한과 후베이성 시민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우한은 거리에서 오가는 이를 찾기 어려운 ‘유령 도시’로 변했지요. 현지에선 지역 내 감염이 번졌지만 환자를 수용할 의료시설과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고, 치료 시기를 놓쳐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우한에서만 숨진 사람만 1,800여 명이 넘습니다.

우리 정부와 여당 의원들이 ‘대구 봉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뭇매를 맞은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유럽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한대?

이탈리아 여행경보 조정 전후. 외교부 제공
이탈리아 여행경보 조정 전후. 외교부 제공

중국의 무차별적 우한 봉쇄조치는 사회주의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측면이 있었을 겁니다. 이탈리아가 전국적 봉쇄조치에 나섰지만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과 체제가 다르고 국민성도 다른 만큼 강력한 봉쇄 전략이 실효성을 거두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요. 유럽연합(EU)도 일단 유럽 내 자유이동을 보장하는 ‘솅겐 조약’을 준수한다는 입장입니다. 유럽 7개국은 지난달 말 “지금 시점에서 국경 폐쇄는 부적절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죠. 세계보건기구(WHO)가 9일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pandemic)이 현실화 했다”고 밝혔는데요. 워싱턴 캘리포니아 등 9개 주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미국에서도 보건 당국이 지역 봉쇄 가능성을 거론하고 나섰죠. 지역, 나아가 국가를 봉쇄하는 게 가능한지, 또 그 결과는 어떨지 전 세계가 또 하나의 시험대에 올라와 있습니다.

☞ 여기서 잠깐: 흑사병부터 코로나19까지 격리의 역사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현대적 개념의 격리는 15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흑사병이 아시아와 유럽을 초토화시킨 14세기에도 아시아에서 배를 타고 들어온 선원들을 격리시킨다는 생각은 있었는데요, 1448년 베네치아 당국은 증상을 통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처음으로 40일 격리 기간을 정해 시행했다고 합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도시화와 공중보건 규제는 체계적 검역을 등장시켰습니다. 179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황열병이 창궐했을 당시 주 정부는 다른 마을들과 통하는 도로를 봉쇄하고 주민과 물품의 이동을 막았는데요. 하지만 19세기에 황열병, 콜레라, 천연두가 거듭 발생하자 연방정부가 검역을 책임지게 됐습니다.

1918~1920년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리는 유행성 독감은 너무 빠르게 퍼져 건강한 사람조차 격리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이런 격리 방식을 ‘보호격리’라고 부르는데요. 1918년 콜로라도주 군니슨에선 모든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친 뒤, 기차로 도착하는 모든 사람을 격리시켰습니다. 이 정책은 효과를 발휘해 그 지역에서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격리조치는 인권 문제를 야기한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적했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공중 보건과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건 여전히 과제”라는 겁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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