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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이 가봤다] 직장 동료 참석 쉬쉬하고 열화상 카메라 동원하고… “결혼식 해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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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이 가봤다] 직장 동료 참석 쉬쉬하고 열화상 카메라 동원하고… “결혼식 해서 미안합니다”

입력
2020.03.03 08:00
수정
2020.03.0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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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혼부부, 열화상 카메라 등 감염 대비부터 하객 수 예측까지 산 넘어 산 

 하객들, 회사는 “결혼식 가지 말라”지만 “그래도 축하해 줘야죠” 

 “결혼식 준비·신혼여행 취소 때 위약금 문제 좀 해결됐으면” 


1 지난달 29일 낮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예식장에서 하객이 열화상 카메라를 통과하고 있다. 이혜인 인턴기자
1 지난달 29일 낮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예식장에서 하객이 열화상 카메라를 통과하고 있다. 이혜인 인턴기자

“카메라 앞으로 천천히 이동해주세요.”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A예식장은 마치 인천공항의 국제선 입국장 모습이었다. 직원들이 열화상 카메라로 식장에 들어서는 모든 하객의 발열 여부를 체크했다. 식장 입구와 축의금 내는 곳, 신부 대기실 등 예식장 곳곳에는 손 세정제가 배치됐고 직원들은 모두 마스크를 썼다. 마스크를 쓰고 온 하객들은 대부분 예식을 시작한 뒤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예식을 취소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예정대로 진행된 결혼식 풍경은‘조심 또 조심’이었다. 하객과 혼주는 악수 대신 한 두 발 떨어져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전했고, 축의금 받는 이들은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해 최대한 하객과 신체 접촉을 피했다. 반갑게 스킨십하고 얼굴 마주보고 수많은 대화를 나누는 보통의 결혼식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결혼식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적잖이 당황해 하거나 어색해 했다.

 활기 찬 결혼식은 저 멀리… 차분하다 못해 조용하기까지 

2 지난달 29일 낮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예식장을 찾은 하객이 안내 데스크에서 손 세정제를 이용하고 있다. 이혜인 인턴기자
2 지난달 29일 낮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예식장을 찾은 하객이 안내 데스크에서 손 세정제를 이용하고 있다. 이혜인 인턴기자


가족들의 사랑과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활기찬 예식장과는 다른 차분하다 못해 조용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예상했던 것보다 참석자 수가 적었다. 이날 하객 수는 당초 예상했던 300명에서 절반 정도로 줄었다. 이날 광주 광산구에서 결혼식을 치른 신랑 측 아버지 윤모(59)씨는 “원래 300석을 예약했다가 코로나19 여파로 180석으로 줄였는데도 손님이 3분의 1밖에 안 왔다”며 씁쓸해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예식장 관계자는 “이번 주말에 6건 예식이 있었는데 절반이 취소됐고 그나마 열린 예식도 하객이 확 줄었다”라고 말했다. 식순 자체가 많이 줄어든 까닭도 있다. 친지, 지인들의 단체 사진 촬영 횟수도 평소보다 줄였고, 연회장에서도 음식을 나르는 움직임만 있을 뿐 불필요한 대화를 삼갔다.

같은 날 서울 양천구 목동의 B결혼식장에서는 하객 중엔 식사를 하지 않고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신랑 지인인 이모(48)씨는 “하객들과 대화하며 음식을 먹다가 (코로나19가) 전염이라도 될까 싶어 식사는 하지 않았다”며 “예전이라면 당연히 왔어야 할 지인들도 온라인 계좌로 축의금을 보내거나 내게 축의금 전달을 부탁하더라”고 전했다.

 하객 위해 1대 당 55만원 하는 열화상 카메라 빌리려다 실패 


3 지난달 29일 낮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예식장에서 혼주가 손님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예식장 안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다. 이혜인 인턴기자
3 지난달 29일 낮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예식장에서 혼주가 손님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예식장 안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다. 이혜인 인턴기자

바깥 외출을 꺼려하고 사람들과 접촉 자체를 피하려는 시기에 결혼식을 열어야 하는 신혼부부는 괜스레 미안해진다. 하객들의 걱정을 모르는 게 아닌데, 식을 미루자니 거액의 위약금이 발목을 잡는다.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부담해야 하는 위약금 때문에 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웨딩마치를 울렸다고 한다.

이날 서울에서 식을 올린 신랑 오모(29)씨는 “예식장에서는 결혼식을 미루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취소할 경우에는 하는 수 없이 위약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며 “그렇다고 결혼식을 미루면 사진 예약, 드레스 예약 등 다른 부분이 얽히게 될 상황이라 하는 수 없이 치르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식 준비 과정부터 험난했다. 특히 하객 중 혹시라도 확진자가 발생하게 되면 걱정을 무릅쓰고 오신 분들께 얼마나 미안해질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이날 서울에서 결혼한 또 다른 신랑 장모(30)씨는 처음엔 열화상 카메라를 구하려 했다. 일부 예식장은 자체적으로 열화상 카메라를 갖추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하는 수 없이 신혼부부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인으로부터 대여 업체를 통해 열화상 카메라와 이를 관리할 직원을 대여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알아봤다. 그러나 이 서비스조차도 수요가 몰리면서 물품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답을 들었다. 장씨는 “한 대당 2시간에 빌리는데 55만원인데 그마저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며 “힘들게 2대를 구했는데, 이번엔 업체에서 인력이 모자란다더라”고 안타까워했다.

신랑 오씨는 하객에게 마스크와 체온계 등을 제공하기 위해 대량 구매를 알아보다가 마스크 품귀 현상으로 구입을 포기했다. 결국 예식장과 상의해서 직접 손 세정제를 구입해 식장에 비치했다. 오씨는 “예식장은 따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데, 마스크는 품절돼 구입이 안되니 막막하더라”며 “손 세정제밖에 준비를 못 해 속상하다”고 했다.

 족집게 도사님이 계신다면 하객 수 좀 알려주세요 

1 지난달 29일 광주 광산구의 한 예식장을 찾은 하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식사 대신 답례품을 받고 있다.
1 지난달 29일 광주 광산구의 한 예식장을 찾은 하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식사 대신 답례품을 받고 있다.


신혼 부부들은 예식장과 조율해 예식 몇 주 전부터 예상 인원을 줄였는데 그 수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음식이 너무 적으면 하객들이 굶게 되고, 너무 많이 남으면 고스란히 금전적 손실로 가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럴 때면 족집게 도사라도 있으면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예식을 올리기 며칠 전 직장에서 결혼식 참석을 금지하는 공지가 내려와 난감해지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생기면 사무실 폐쇄ㆍ업무 중단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회사에서 강도 높은 ‘결혼식 금지령’을 내린 경우다. 장씨는 “회사 사람들 40~50명은 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 공지 때문에) 다들 못 오게 됐다”며 “ ‘괜찮냐’는 전화가 하루에 10통씩 오는데, 일일이 답변하는 것도 지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신랑 장씨는 “하객을 부르는 게 부담스러워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진 후에는 청첩장도 안 돌렸다”며 “행복해야 할 결혼식이 걱정만 늘어나고 ‘슬픈 결혼식’이 돼 버려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장씨는 “축의금을 절친이 걷어주기로 했는데 신생아 아빠라 부탁하기 미안해 다른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고도 전했다.

결혼식을 찾는 이들은 겉으로는 덤덤한 표정이지만 분위기 자체가 그래서인지 때론 비장함까지 엿보였다. 예식은 가족, 친인척, 오랜 친구 등 신혼부부와 가까운 하객들 위주로 온 듯했다. 신부 측 어머니가 축사에서 “코로나19로 나라가 비상인 상황에 결혼을 축하하러 와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 드린다”며 머리를 숙인 것이 단순히 인사치레가 아니라는 것은 결혼식장 안에 있는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신랑의 대학동기인 공무원 박모(27)씨는 “오늘 아침까지 부모님이 가지 말라고 붙잡으셨는데 워낙 친한 동기 결혼식이라 축하해주고 싶었다”며 “위험하다는 것은 알지만, 이렇게 힘들 때 함께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홍모(24)씨는 “아버지를 모시고 오려 했는데 아무래도 불안해 혼자 왔다”며 “입구에 열화상 카메라도 있고 해서 그나마 걱정을 덜었다”고 했다.

 신혼여행 가서 감염되면? 한국서 왔다고 격리되면? 결국 취소 

아프리카 모리셔스에서 입국을 거부 당한 한국인 신혼부부들이 현지의 한 장소에 억류되고 있다. 신혼부부 제공
아프리카 모리셔스에서 입국을 거부 당한 한국인 신혼부부들이 현지의 한 장소에 억류되고 있다. 신혼부부 제공

예식까지는 치렀지만 신혼여행은 위약금을 물고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신혼여행을 취소한 신랑 오씨는 “사람이 밀집되는 공항과 비행기를 이용하기 아무래도 불안하더라”며 “못 가게 돼 아쉽긴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곳곳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안전한 곳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커진다.

세계적으로 퍼지는 ‘코리아 포비아’(한국 공포)의 불똥을 맞을까 걱정하는 시선도 있다. ‘코리아 포비아’는 국내 확진자가 치솟은 후 국제사회에서 한국인을 경계하는 움직임이다. 특히 일주일 전 모리셔스에서 입국금지 통보를 받고 격리된 신혼부부들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신혼여행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하와이 신혼여행을 계획했던 장씨는 “코로나19 위험 국가에서 왔다는 이유로 차별당하거나 (모리셔스 사례처럼) 격리될 위험이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출발 3일 전인데 아직까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회사의 업무가 원활하지 않은 비상상태라 자리를 비우기도 부담스럽다”고 덧붙였다.

 예식장·신혼여행 취소 위약금만 해결되면 홀가분하게 미룰 텐데 

23일 대구 시내 한 대형 결혼식장 주차장이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로 예약된 결혼식들이 취소돼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23일 대구 시내 한 대형 결혼식장 주차장이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로 예약된 결혼식들이 취소돼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이렇게 한 고비를 넘겼다지만, 다른 예비부부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결혼식을 연기했다가 예식장과 위약금 문제로 분쟁이 벌어지는 일도 늘고 있다. 2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달 22일부터 3월 2일까지 코로나19 관련 전체 소비자상담 건 중 ‘예식서비스’ 문제가 524건으로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국외여행’(1,866건), 3위는 ‘항공여객운송서비스’(519건)이었다.

예식장 위약금 문제가 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코로나19 기간에는 위약금 없이 예식장 대관을 취소하게 해달라’는 청원글도 나왔다. 한 유명 웨딩 카페에는 취소 위약금 없이 날짜 변경이 가능한 웨딩홀을 정리한 목록이 확산하기도 했다.

단순 변심도 아니고,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취소를 해야 하는데 왜 위약금을 물어야 할까. 공정거래위원회의 예식장 표준약관 제12조에 따르면 예식장 이용자는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예식을 할 수 없는 경우 사업자에게 계약금을 돌려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보면 천재지변은 태풍, 홍수, 한파 등 자연재해에만 해당한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사회재난’에 속한다는 얘기다. 결국 위약금 반환 여부는 예식장의 자체 약관과 재량에 따라 이뤄질 수밖에 없다.

한국소비자원의 한 관계자는 2일 “그동안 이런 경우(감염병 확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가이드라인은 특별히 없다”며 “지금으로선 예식장 표준약관에 따라 당사자간 양보를 유도해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수 밖엔 없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이태웅·이혜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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