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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87만 원에 상주 경비원 뽑으려 한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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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87만 원에 상주 경비원 뽑으려 한 고등학교

입력
2019.11.29 08:00
수정
2019.11.2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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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근무 9시간ㆍ휴식 15시간에 상주 24시간…노무사 “휴게시간 과도 책정” 

 부산시교육청 “학교 측 오해…상주 의무 없어 휴게시간 자유 보장” 

부산여고에서 지난 25일 게재한 경비원 채용 공고. 부산여고 공식홈페이지
부산여고에서 지난 25일 게재한 경비원 채용 공고. 부산여고 공식홈페이지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경비원을 채용하며 내건 근로조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수면·휴게시간을 실제 근무시간의 2배 가량으로 책정하면서 하루 종일 학교에 상주하는 조건인데도 기본급은 제시된 근무시간으로만 지급하기로 하면서다. 최저시급 적용 시 월 87만원 수준에 불과해 ‘갑질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부산 사하구 부산여고는 지난 25일 홈페이지에 만 50세 이상 65세 미만을 대상으로 2교대 격일제 경비원 채용 공고를 게시했다. 하지만 해당 채용 공고 근로조건 중 근무 형태와 이에 따른 기본급 부분이 논란이 되면서 다수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되고 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학교에 항의전화를 걸자”는 댓글도 올라왔다.

채용 공고에 따르면 평일은 근무시간 6시간에 수면·휴식시간 10시간, 주말·공휴일은 근무시간 9시간에 수면·휴식시간 15시간으로 설명됐다.

문제는 ‘상주시간’이다. 평일 상주시간은 오후 4시 2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 20분까지 16시간, 주말·공휴일은 오전 8시 2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 20분까지 24시간이었다. 여기엔 근무시간과 수면·휴식시간이 포함된다.

그러나 월 기본급은 평일 6시간, 주말·공휴일 9시간 기준이고, 격일 근무의 경우 월 평균 104시간에 시간당 최저임금 8,350원을 적용하면 86만 8,400원에 불과했다. 이외 급식비 월 6만 5,000원이 지급되고, 근속연수에 따라 처우개선비 명목으로 명절휴가비 및 맞춤형복지비 등을 일시 제공하는 조건이다. 경비원 직종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턱없이 부족한 임금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 채용 공고를 접한 누리꾼들은 “평일 16시간, 주말 24시간 자리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휴식시간은 무슨”(도****), “공공기관인 학교에서도 이러는데 중소기업에서 제대로 대우해주겠느냐”(황****), “88만원세대 시니어 버전이냐”(뼈****) 등의 의견을 보였다.

이 같은 경비원 처우 논란이 부산여고만의 문제는 아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대기시간은 근로시간으로 판단하며,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감시·단속적(감단직) 근로자 특성 때문에 상당수 학교 경비원들은 유사한 조건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법원은 2017년 경비원과 관련해 ‘독립된 휴게공간 제공’, ‘지휘·감독·방해 없는 자유로운 휴식’ 등이 보장돼야 한다는 판례를 내기도 했지만 아직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다. 박현희 노무사는 “온전한 휴게가 보장된다는 전제 아래 당사자가 합의했다면 그 자체가 위법하지는 않다”면서도 “사례에 따라 법원에서도 인정되는 부분이 달라져 정리가 필요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부산여고의 경우 휴게시간이 과도하게 책정돼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감단직 근로자의 경우 업무 강도가 낮다 보니 사실상 대기근무를 하면서도 휴게시간으로 형식적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근무 형태에 따라 법적 판단이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산여고 측은 “공고된 내용은 임의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교육청 지침을 근거로 낸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상주시간에 대해 지침을 내린 적이 없고 공고문이 잘못됐다고 학교에 안내한 상태”라며 “평일 기준 계약시간은 16시간, 근무시간은 6시간으로 돼있고 휴게시간은 보통 야간근무를 하다 보니 집에 가기 어려워 80~90%의 경비원이 별도로 마련된 학교 당직실에서 취침하는데, 휴게시간에 학교에 상주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법에 나와있는 대로 자유롭게 보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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