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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절박한 中 동포에 300만원 받고 ‘입닦은’ 행정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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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절박한 中 동포에 300만원 받고 ‘입닦은’ 행정사들

입력
2019.10.01 04:40
수정
2019.10.14 15:2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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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류기간 연장·국적 신청 등 미끼… 한국어 서툰 점 악용 불리한 계약

평균 비용의 수십 배 받고 미루다 불법체류되면 “신고할 테면 해라”

중국 동포가 많이 이용하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서울관광재단 제공
중국 동포가 많이 이용하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서울관광재단 제공

중국 동포 조모(37)씨는 요즘 경찰서 주변을 서성댄다. ‘그래도 신고라도 해볼까’ 싶다가도 ‘불법체류자 신분인데 어떻게…’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조씨 사연은 이렇다. 한국에 건너와 일하던 조씨는 지난해 10월 사장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일을 그만뒀다. 외국인취업비자(E7) 자격을 박탈당한 셈이다.

어떻게 하나 막막할 때, 행정사 A(66)씨가 접근해 왔다. A씨는 비자 문제를 해결해줄 테니 그 비용으로 300만원을 요구했다. 조씨는 그간 모든 돈을 어렵사리 건넸지만 정작 A씨는 그 뒤로 연락이 뜸해졌다. 해결 못 해주면 돈이라도 돌려달라 따지자 되레 “신고할 수 있으면 신고라도 해보라”는 말만 들었다. 피해를 당한 건 조씨만이 아니다. A씨에 대한 고소장이 6건 이상 접수됨에 따라 최근 서울 양천경찰서는 A씨에 대한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30일 서울 대림동 등에 거주하는 외국인 체류자들에 따르면 최근 절박한 상황에 놓인 외국인 체류자들을 상대로 한 ‘비자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곤경에 처한 외국인 체류자들에게 ‘비자를 받게 해준다’거나 ‘체류기간을 연장해주겠다’며 접근, 돈을 뜯어 가는 것이다. 비자 연장 업무 등은 비교적 간단한 일에 속하지만, 외국인 체류자들에겐 쉽지 않다. 한국어가 서툴고 정보가 부족해서다. 일부 비양심 행정사들이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으론 과다 비용 청구다. 비자 연장에 보통 10만~5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행정사들은 외국인체류자들이 한국 사정에 어둡다는 점을 악용, 적게는 200만~3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이 넘는 수수료까지 챙기는 방식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외국인 체류자들은 곧이 곧대로 믿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속은 걸 알았다 해도 추방 등 불이익을 당할까 봐 웬만해선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혹시 신고한다 해도 돈을 되돌려 받기란 쉽지 않다. 행정사 쪽에서 “노력했으며,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하면 그만이다.

피해 사례는 의외로 많다. 중국 동포 남모(78)씨는 “국적 신청을 빨리 처리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2013년부터 5년 동안 매달 50만원씩을 행정사에게 꼬박꼬박 갖다 바쳤다. 정말 그래야 되는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행정사를 고소했지만, 재판에서 졌다. 황준협 변호사는 “행정사와 의뢰인 간 맺은 계약서에 ‘기한 및 성과’ 명시가 없다면, 행정사가 지금도 계속해서 노력 중이라고 한다면,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더구나 대부분 계약서는 행정사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손해액을 되돌려 받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행정사 ‘사칭’ 사기도 일어난다. 외국인 체류자가 많은 영등포구나 구로구 일대에 가짜 사무실을 차려놓고 돈만 받고 잠적한다. 취업비자를 받고 한국에 들어온 중국동포 왕모(36)씨는 최근 사칭 업소에 잘못 걸려들었다가 돈만 날렸다. 비자 만료로 불법체류자가 된 왕씨는 “혹시 경찰에 추방당할까 신고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러니 행정사들에게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얄팍한 일부 행정사들의 돈 놀이 때문에 정상적으로 일하는 자기네들까지 이상한 시선을 받는다는 얘기다. 이들은 불법 행정사무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요청하고 있다. 현직 행정사인 최용준(27)씨는 “행정사 업무를 대행하는 무자격자 실태조사를 국가 차원에서 철저히 시행해 더 이상 숨어있는 피해자 양산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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