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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 대표 초유의 삭발식… 황교안 “文정권 헌정유린 묵과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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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 대표 초유의 삭발식… 황교안 “文정권 헌정유린 묵과 못해”

입력
2019.09.16 20:00
수정
2019.09.17 10:2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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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만류에도 삭발 강행… 총선 앞 최고조 강경투쟁 모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 촉구' 삭발식 후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 촉구' 삭발식 후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청와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에 항의하는 ‘삭발 투쟁’을 단행했다. 제1야당 대표의 삭발은 초유의 일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만류하는 메시지를 전달했음에도 삭발을 강행해 조 장관을 둘러싼 정국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한국당은 검찰수사의 피의자인 조 장관이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참석해선 안 된다는 이유로 정기국회 일정 합의도 거부했다. 조 장관 반대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임명을 강행한 문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은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

황 대표의 삭발식은 이날 오전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추석 연휴 기간에도 조 장관 파면 1인 시위를 벌였던 황 대표는 이날 연휴 뒤 첫 최고위원회의에 정장이 아닌 짙은 남색 점퍼 차림으로 등장했다. 투쟁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의미였다. 모두발언에서 “문 대통령에게 분명히 경고한다.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방해하는 일체의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작심 발언을 쏟아낸 황 대표는 이후 약 20분 간의 비공개 회의에서 직접 삭발을 제안했다고 한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저항의 표현”이라며 “그런 뜻에서 당대표가 결단한 것”이라고 했다.

황 대표 삭발식이 예고된 오후 5시 전부터 이미 청와대 분수대 앞은 한국당 의원들과 지지자, 취재진 수백 명으로 가득 찼다. 무대는 없었다. 황 대표가 앉을 빨간 야외용 의자 뒤로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삭발투쟁’이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점퍼 차림을 한 황 대표는 5시쯤 나 원내대표와 함께 등장해 말 없이 의자에 앉았다. 다소 긴장한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사회를 맡은 전희경 대변인이 “황 대표의 결단이 하나의 움직임이 돼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큰 물결이 될 것”이라고 외쳤다. 이어 애국가가 흐르고 여성 이발사가 등장했다. 담담한 표정의 황 대표는 늘 끼고 있던 안경과 점퍼를 벗었다.

삭발은 약 7분동안 진행됐다. 눈을 감고 임한 황 대표는 내내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정면을 응시하다 눈 감기를 반복했다. 의원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지켜봤고, 일부 여성 지지자는 눈물을 보였다. “황교안”을 연호하는 소리가 곳곳에 퍼졌다.

이후 어색한 민머리로 마이크 앞에 선 황 대표는 “문 정권의 헌정 유린과 조국의 사법 유린 폭거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제1야당 대표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문 대통령과 이 정권에 항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 여러분들께 약속 드린다. 저는 저의 투쟁은 결단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에게 경고한다. 더 이상 국민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 조 장관은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와 검찰의 수사를 받아라”라고 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 촉구'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 촉구' 삭발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황 대표가 스스로 삭발에 나선 데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모처럼 찾아온 대여 공세 기회를 이대로 놓쳐선 안 된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정권 비판 동력을 계속 살려가기 위해선 국회일정 보이콧, 장외집회를 뛰어 넘는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본 셈이다. 제1야당 대표의 삭발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오랜 여당 생활로 ‘웰빙 야당’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한국당으로선 대표가 직접 강경 투쟁의 전면에 나섬으로써 절박함을 부각시키고, ‘강한 야당’으로의 이미지 전환을 꾀할 수 있게 됐다.

조 장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방’을 보여주지 못한 탓에 최근 당 안팎에서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황 대표의 결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삭발식 전까지만 해도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임명된 상황인데 효과가 있겠느냐’는 회의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황 대표가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며 리더십이 다시 힘을 받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홍준표 전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황 대표의 삭발투쟁을 적극 지지한다”며 “야당을 깔보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꼭 보여주기 바란다”고 치켜세웠다.

이미 조 장관 임명 강행으로 상당한 내상을 입은 청와대의 정치적 부담은 더 커지게 됐다. 청와대는 이날 황 대표 삭발식 전 문 대통령의 만류 메시지를 전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강기정 정무수석이 황 대표를 만나 문 대통령의 염려와 걱정에 대한 말씀을 전달했다”며 “삭발에 대해 재고를 요청드린다는 의견도 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황 대표는 “조 장관을 사퇴시켜라. 조 장관을 파면해야 한다”고만 답했다고 한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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