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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살인’의 비극… 통계도 대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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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살인’의 비극… 통계도 대책도 없다

입력
2019.09.06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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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서울 강서구 한 아파트에서 치매를 앓던 어머니와 중증 지체장애인인 큰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둘째 아들은 범행 직후 경찰에 전화로 신고한 후 사라졌다가 3일 한강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경찰과 지역주민, 주민센터 관계자의 증언을 종합하면 모자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올해 들어 간병을 맡아온 둘째 아들이 정신적으로 힘겨운 상황에 내몰렸던 것으로 보인다.

한 달여 전인 지난 7월30일에는 부산 양정동에 거주하는 남편(79)이 20년 간 암 환자인 아내(79)의 간병을 해 오다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됐다. 앞서 4월22일에는 전북 군산에서 80세 남편이 치매에 걸린 아내를 10년간 돌보다 살해했다가 경찰에 붙잡혔고, 2월20일에는 충북 청주에서 40대 아들이 10년간 돌보던 아버지를 살해하고 세상을 등졌다.

모자가 숨진채 발견된 서울 가양동의 한 아파트 입구에 3일 폴리스라인이 설치돼있다. 연합뉴스
모자가 숨진채 발견된 서울 가양동의 한 아파트 입구에 3일 폴리스라인이 설치돼있다. 연합뉴스

‘간병 살인’이라 부를 수 있는 사건이 올 들어 보도된 것만으로도 네 번이나 발생한 셈이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유형의 사건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2006년부터 후생노동성과 경찰청이 각각 ‘개호 살인’(간병 살인) 건수를 집계하기 시작한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관련한 통계조차 없다. 지금부터 이에 대한 조사와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간병으로 인한 끔찍한 사건사고를 예방하려면 가족의 간병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도입됐고, ‘치매국가책임제’도 선언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가족의 간병 부담을 완전히 대신해 주고 있지 못하다. 1ㆍ2급으로 인정 받지 못하면 요양원에 입소할 수 없으며, 방문요양보호서비스는 가장 많이 받는 경우에도 하루 4시간으로 제한된다. 하루 4시간씩 받을 경우 27일이면 요양보호서비스 이용을 위한 급여가 동난다. 나머지 시간은 가족이나 친척이 노인을 돌볼 수밖에 없다. 이마저 인정조사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장기요양보험 인정률이 최근 상승 중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8~9%에 그친다.

장기요양보험인정률. 그래픽=신동준 기자
장기요양보험인정률. 그래픽=신동준 기자

5일 강서구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역 주민이나 주민센터 등에 따르면 해당 가구 역시 방문요양 등 정부의 복지 서비스 지원을 대부분 받고 있었다. 어머니는 장기요양보험의 방문요양보호서비스 대상자였고, 지체장애인이었던 심씨도 복지부가 제공하는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최대한 받았다. 그러나 이런 지원으로도 둘째 아들이 간병 부담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두 사람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요양보호사나 활동지원사가 돌보지 않는 시간대는 둘째 아들이 간병을 도맡아야 했고, 결국 일도 그만두게 됐다.

위기가구별로 상황을 파악하고 종합적으로 보건복지혜택을 지원하는 체계를 정착시키는 것이 궁극적 해법으로 거론된다. 만약 구씨 모자를 가구단위로 파악했더라면 살해당한 모자뿐만 아니라 둘째 아들의 심리적, 육체적, 경제적 문제까지 돌볼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경우 간병 스트레스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간병인에게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간병인이 가족을 돌보다 폭행할 경우 케어매니저(돌봄 전문가)가 둘을 분리시키는 조치도 취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 케어)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지속적으로 위기가구를 살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윤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연구실장은 “모자가 간병 문제 때문에 살해당했는지는 확실치 않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이번 사건을 막으려면 방문요양이나 장애인활동보조의 총량을 늘리기보다는 둘째 아들까지 포함해 ‘위기에 처한 가구’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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