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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방위비… ‘청구서’ 남기고 떠난 볼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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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방위비… ‘청구서’ 남기고 떠난 볼턴

입력
2019.07.25 04:40
수정
2019.07.25 07:2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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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외교안보라인 만나 현안 논의… 중ㆍ러 군사행동에 “긴밀 협의” 

 볼턴 면담 뒤에… 정부, 호르무즈 호위 미국 연합체에 동참 의사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회의(NSC) 보좌관과 면담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회의(NSC) 보좌관과 면담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지난해 취임 뒤 처음 단독 방한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가볍지 않은 청구서를 남기고 떠났다. 24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정부 고위 당국자들을 잇달아 만난 볼턴 보좌관은 이란 인근 호르무즈 해협 호위와 한국이 부담하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방위비)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우리 군 파병과 방위비 인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비핵화 국면에 한일 갈등, 중ㆍ러 군용기 도발 등이 겹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과 협력이 시급한 만큼, 볼턴의 청구서를 깐깐하게 따지거나 물리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볼턴 보좌관은 자신이 한국에 도착한 23일 발생한 중ㆍ러 도발과 관련해 “향후 유사한 상황에 대해 양국이 긴밀히 협의하자”고 했다.

볼턴 보좌관은 24일 청와대에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정 실장과 회담 및 업무오찬을 갖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현안과 동북아 지역 및 세계 차원에서 한미 양국이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했다. 예상대로 미국 주도의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체에 한국이 참여하느냐가 의제로 다뤄졌다. 청와대는 “정 실장과 볼턴 보좌관은 민간 상선의 안전한 항해를 위한 국제적 노력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고, 특히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해상 안보와 항행의 자유를 위한 협력 방안을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 정부는 앞서 19일(현지시간) 한국을 포함한 주미 외교단을 초청,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 보호를 위한 미국과 동맹국 간 연합체를 구성한다는 방침을 공표한 바 있는데, 우리 정부가 협력 의사를 밝힌 셈이다. 강 장관도 볼턴 보좌관과의 회동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안정시키려는 볼턴 보좌관의 리더십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 그래픽=신동준 기자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 그래픽=신동준 기자

호르무즈 해협 한국군 파병 문제는 우리 정부에 큰 부담이다. 한국 원유 수송선 중 사우디아라비아발(發) 등 70~80%가 호르무즈 해협 항로를 지나는 만큼, 파병 명분은 있다. 하지만 미국 주도의 연합체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미국의 대(對)이란 압박전에 가세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같은 이유로 유럽은 미국의 작전과 별도로 유럽 국가 주도의 호위 활동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방위비 분담도 양국 간 당면 현안인 만큼 청와대 회담에서 논의됐다. 청와대는 협상을 앞두고 있는 11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관해 양측이 “동맹 정신을 기반으로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향으로 협의해 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행 협정의 시한이 올해인 만큼 내년부터 새로 적용할 협정을 올 하반기까지 확정해야 하지만, 양국은 아직 협상단조차 꾸리지 않은 상태다. 이번 회동을 계기로 차기 협상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11차 협상에서 미측은 한국 분담금 총액을 대폭 늘리는 안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측은 지난해 10차 협상 과정에서 돌연 1년짜리 단기 협정과 분담금 2배 증액이라는 파격 요구를 한국에 제시했고, 그 결과 양측이 올해 2월 총액 1조389억원, 유효 기간 1년의 분담 협정을 체결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실장은 “볼턴 보좌관은 한일 갈등 중재와 북미 협상 등 미국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한국의 처지상 증액을 쉽게 거절할 수 없으리라는 예측 하에 분담금 문제까지 들고 방한했을 공산이 크다”며 “미국의 압박이 중첩되면서 우리로서는 쉽지 않은 협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볼턴 보좌관이 청구서만 던지고 간 건 아니다. 청와대 회동에서 정 실장은 볼턴 보좌관에게 전날 중러 군용기들이 KADIZ에 무단 진입했고 한국이 단호히 대응한 사실을 설명했고, 볼턴 보좌관은 앞으로 한미 간에 대응 방안을 긴밀히 논의하자는 취지로 답했다. 중러의 이번 군사 행동이 한미일 협력에 대한 도발로 해석되는 만큼 의도 분석과 향후 대응 전략 마련을 양국이 함께 하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일 갈등 악화를 막으려는 미국의 의지도 거듭 확인됐다. 외교부에 따르면 볼턴 보좌관은 강 장관과의 만남에서 한국과 일본이 수출 규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것과 관련해 외교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양측은 한미, 한미일 간 공조와 협력 유지를 위해 한일 양국이 대화로 상황 악화를 방지하는 게 모두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에 공감한 뒤 미국의 역할을 논의하기로 했다.

볼턴 보좌관은 정 실장 등 정부 인사들과의 만남에 앞서 이날 오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먼저 만나는 이례적 행보를 보였다. 회동은 나 원내대표가 볼턴 보좌관에게 직접 이메일로 요청해 오전 8시부터 약 30분간 주한 미대사관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나 원내대표는 “중국과 러시아가 KADIZ를 침범하는 등 엄중한 안보 현실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안보와 관련된 한국당의 입장을 전달했다”며 “일본의 수출 보복 조치는 한미일 삼각 공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부분도 강조했다. 매우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고 전했다. 나 원내대표는 구체적인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 “안보 문제에 대해 볼턴 보좌관과 생각이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는 소감을 남겼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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