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교육 현실을 비판하는 글에서 많이 인용되는 책이 한동일 신부의 ‘라틴어 수업’이다. 관심을 받은 부분은 라틴어에서 성적을 표시하는 말에 대한 것. 라틴어 ‘숨마 쿰 라우데/마그나 쿰 라우데/쿰 라우데 /베네’는 성적의 등급을 나타내는 말인데, 이는 우리말로 ‘최우등/우수/우등/좋음·잘했음’이라 한다. 이를 인용한 이들은 한결같이 평가가 긍정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졌다는 데 감탄한다. 저자 말대로 이러한 평가 어휘는 “잘한다/보통이다/못한다 식의 단정적이고 닫힌 구분이 아니라, ‘잘한다’라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속에 학생을 놓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니, 서열화에 익숙한 우리 교육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클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성적 평가 어휘인 ‘수(秀)/우(優)/미(美)/양(良)/가(可)’도 남부럽지 않게 긍정적인 말이다. 가장 낮은 성적이 ‘옳거나 좋음’을 뜻하는 ‘가’이니, 말 그대로만 보면, ‘잘한다’라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속에 학생을 놓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을 허무하게 느끼는 건, 다섯 등급으로 나뉜 성적 어휘장의 위계 속에서 ‘수 우 미 양 가’의 뜻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휘장을 이루고 있는 낱말의 의미는 그 어휘장 속 다른 낱말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그렇다면 어떤 말로 성적의 등급을 표현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열린 표현인 ‘수 우 미 양 가’를 단정적이고 닫힌 말로 만든 건 우리 사회였으니. 결국 바꿔야 하는 건 성적의 등급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성적의 등급으로 누군가를 단정하려 드는 서열화된 사회인 것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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