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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년, 망각

"학습격차요? 속 편한 사람들 얘기죠. 밥도 못 챙겨 먹이는데..."

입력
2021-01-19 04:30
수정
2021.01.19 07:42

편집자주

지난해 1월2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 상륙했다. 그 뒤 1년간 3차례 대유행을 겪으면서 전 국민이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 와중에 놓쳐버린 것들도 있다. 다섯 차례에 걸쳐 되짚어 본다.


수도권 지역의 모든 유치원과 초중고교 등교중지가 실시된 지난달 15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긴급돌봄에 참여하는 한 학생이 등교하고 있다. 뉴스1

수도권 지역의 모든 유치원과 초중고교 등교중지가 실시된 지난달 15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긴급돌봄에 참여하는 한 학생이 등교하고 있다. 뉴스1

할머니, 중1 여동생과 함께하는 박선우(17·가명)양의 일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지난해 5월 원격수업이 본격화되면서 학교 가는 날이 평년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공공근로,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할머니는 낮시간에 늘 집을 비웠다.

선우는 오전 온라인 수업을 지나쳤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 날을 잡고 한번에 다 해치웠다. 과제도 일주일치를 몰아내면 그에 맞춰 출결이 처리됐다. 학원은 온라인 수업 시간에 맞춰 오후 5시부터 밤 9시까지 수업을 했다. 유일하게 시간을 맞춰야 하는 일정이니, 학원 시간에 맞춰 일어나고 새벽까지 딴 일을 하는 올빼미 생활이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3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할머니는 일자리까지 잃었다. 오후 학원 가야 할 시간에 맞춰 일어나 삼각김밥 하나로 한 끼를 때우는 선우를 보면 속이 타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급식 대신 가정마다 준다던 ‘식재료 꾸러미’는 1학기 초 딱 한번 받았다. 원격수업 때문에 남들은 성적이 떨어진다고 걱정이지만, 제대로 돌보는 것조차 힘겨운 할머니에게 그런 걱정은 사치다. 할머니는 “반찬이라야 김치랑 계란후라이가 전부”라며 “학교 급식처럼 매일 생선, 고기를 챙겨줄 수 없으니 원격수업 이후에는 애들 먹는 게 제일 걱정”이라 말했다.

중학교 2학년 아들과 함께 초등 4학년 딸 지영(가명)이를 홀로 키우는 40대 학부모 김진주씨는 자포자기 수준이다. 없는 살림이라 그저 “학교선생님을 과외선생님 삼으며” 공부시켜 왔는데, 원격수업과 함께 지영이는 아예 공부를 그만둔 분위기다. 담임교사가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다며 전화까지 걸어왔지만, 출퇴근 시간을 포함해 하루 12시간을 밖에서 보내야 하는 김씨가 할 수 있는 건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갈 학교도, 놀 친구도 없는 지영이는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김진주씨는 “가난의 악순환이 더 깊고 단단해졌다는 공포심이 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디지털을 이용한 언택트 학습이 뉴노멀'이라며 학력 격차를 줄이자는 얘기가 요란했지만, 선우와 지영이는 학력 이전에 돌봄에서 격차가 벌어져버린 아이들의 상황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 아이들 이야기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서울교육정보원)이 지난달 내놓은 ‘코로나19로 인한 학교 수업 방식의 변화가 교사 수업, 학생 학습, 학부모의 자녀 돌봄에 미친 영향’에 따르면 학부모 3명 중 2명이 원격수업 후 자녀가 아침에 더 늦게 일어나고(63%), 밤에 더 늦게 자며(66%), 운동량이 감소(83%)했다고 응답했다. 초등학생과 그 부모들을 상대로 한 조사 결과였다.

국제구호개발 비영리단체(NGO)인 굿네이버스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진단은 더 심각하다. 코로나19 이후 끼니를 거르는 아동이 3명 중 2명(64.1%)이다. 2년 전보다 15%포인트가량 늘어난 수치다. 가난한 아이들이 더 가난해지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월 소득 200만원 미만 가정 82.5%가 코로나19로 소득이 줄었지만, 800만원 이상 가정은 15.7%만 소득이 줄었다. 지난해 6월 만 4~18세 아동?보호자 6,7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다.

시각물_코로나19로 인해 달라진 아동 생활. 신동준 기자

시각물_코로나19로 인해 달라진 아동 생활. 신동준 기자


소득이 높은 부모는 학력 격차를 걱정하지만, 소득이 낮은 부모는 돌봄 격차가 더 큰 문제다. 지난해 8월 희망친구기아대책이 돌봄취약아동 98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41.6%가 '주 5일 어른이 없이 집에 있다'고 답했다. 반면 응답자 66.1%가 월 소득 400만원 이상 가정인 굿네이버스 설문에서는 주 5일 혼자 있는 아동이 4.5%(초등 저학년)에 불과했다.

학력 격차도 결국 돌봄 격차에서 나온다. 서울교육정보원 조사에서 가정 학습을 도와줄 보호자 있는 학생은 하루 2시간 이상 TV 시청?1시간 이상 게임하는 비율이 34%?40%에 그쳤다. 하지만 보호자 없는 학생은 45%?52%로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자녀학습을 도와줄 수 있는 학부모는 55%가 ‘온라인 수업이 학업공백 줄이는 데 도움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되는 학부모는 65%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교육 관계자들의 걱정은 커지고 있다. 충청권의 교육복지사 A씨는 "코로나19 이후 실직 가정이 늘어 교육복지 대상이 25%나 이미 늘었다"며 "이들이 단기 일자리라도 찾아 멀리 이동하면서 아예 집을 비울 경우 오갈 데 없는 아이들만 집에 남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원격수업이 장기화될수록 이런 아이들을 찾아내 관리하는 건 더 까다로운 문제가 된다.

이 때문에 공공돌봄기관들 간의 연계 작업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육복지사 B씨는 “지난해 코로나19가 급속히 번져나갈 당시 확진자 발생이나 방역 책임 문제 때문에 교육복지 관련 기관들 대부분이 연계 활동을 중단했다"며 "책임 소재를 두고 서로 미루다 보면 아이들을 돌보지 못할 사각지대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아 이를 빨리 회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장희선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연구소 연구원은 “가정양육 역량 강화도 중요하지만 대안 양육, 돌봄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취약계층 돌봄 수요를 파악하고 보조 인력을 활용한 찾아가는 돌봄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