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제보자 진술 신빙성 인정 어려워"

서울 서초구 국가정보원. 고영권 기자
박근혜 정부 시절 민간인을 불법 도청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가 나온 전직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이 항소심에서 무죄 판단을 받았다. 법원은 사건 제보자이면서 핵심 증인인 국정원 정보원의 증언 신빙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봤다.
서울고법 형사6-1부(부장 정재오)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 국정원 대공수사국 소속 수사관 A씨 등 4명에게 12일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다른 3명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이 선고된 바 있다.
A씨 등은 2015년 10월 충남 서산의 한 캠핑장에서 열린 대학교 지하조직 모임 현장 음성을 법원 허가 없이 도청한 혐의로 기소됐다. 2007년부터 해당 조직의 대공 혐의점을 들여다보고 있던 국정원은 해당 학교 출신 B씨를 정보원으로 포섭해 장치를 몰래 설치하고 5시간 분량 대화를 녹음했다.
사건은 B씨의 폭로로 드러났다.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국정원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B씨가 참여하지 않은 대화까지 녹음될 경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통신비밀보호법상 대화 녹음은 당사자가 참여한 내용만 허용된다.
재판 과정에서 이들은 "대화 녹음은 제보자의 자발적 의사에 의해 이뤄졌고, 법 위반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1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타인의 대화가 무작위로 녹음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알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미필적으로나마 범행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2심은 그러나 B씨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사건 이후 유급 정보원 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B씨가 활동 대가로 10억 원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국민권익위원회에 이들을 신고한 점을 감안하면, 보복심에서 말을 꾸며냈을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국정원 보고서와 관련해서도 이들에게 불법 도청 파일을 내사에 사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할 근거로는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제보자 참여 없는 녹음을 이용하려고 했다면 그냥 녹음하고 사용하면 그만이지, 신중하게 검토해 보고서를 남겨둘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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