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 역사를 바꾸고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한 발견들을 유적여행과 시간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음미한다. 고고학 유적과 유물에 담겨진 흥분과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함께 즐겨보자.
<52> 탄자니아 라에톨리 발자국 유적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라에톨리 발자국 유적 모습. 두 발자국이 나란히 직선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라에톨리 박물관 제공
인류는 언제부터 두 발로 걷게 됐을까? 인류학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볼 만한 의문이다. 또 인류 진화 논쟁의 핵심 화두 중 하나가 바로 ‘직립보행’이기도 하다.
그런데 수백만 년 전 사람이 걸어갔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면? 사실 인류 진화 초기 행위의 흔적이 이렇게 오랫동안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는 이 유적이 발견되기 전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인류 최고 화석 루시의 두개골과 루시의 발견자인 도널드 조핸슨 박사. 루시의 두개골이 매우 작다.
1974년 에티오피아 하다르 유적에서 발견된 루시(Lucy) 화석이 골격 구조를 통해 직립보행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1978년 발견된 탄자니아 라에톨리(Laetoli) 유적의 발자국은 ‘인류의 두 발 걸음’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아울러 인류 진화 과정에 대한 다윈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도 확인됐다.
수백만 년 전 사람이 걸어갔던 흔적이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 있을까? 고인류의 액션이 남아 있는 이런 유적은 아마 우리 생애에 다시 발견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더 희귀하고 소중한 유적이다.

라에톨리 발자국 유적 위치도
라에톨리 가는 길
동아프리카에서 꼭 놓치지 않고 봐야 할 자연을 꼽으라면 △초대형 화산 분화구인 응고롱고로 분화구와 △야생동물의 낙원 세렝게티 국립공원(이상 탄자니아)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웃에 인류의 초기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올두바이 고르지 유적이 있고 이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40여㎞ 떨어진 곳에 라에톨리 유적이 있다.

래일톨리 유적을 만든 응고롱고로 화산 분화구 내부 모습. 사진 뒤 산맥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바라본 분화구 외곽이다.
동아프리카 사바나 초원 지대를 지나는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폭우가 끝없이 펼쳐진 벌판에 쏟아진다. 온 사방이 졸지에 물바다가 됐고, 큰 지프조차도 바퀴가 미끄러져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응고롱고로 분화구 꼭대기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아침에 길을 나서니, 어제의 홍수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 시간여를 달리는 동안 숲과 초원, 그리고 마을이 번갈아 나타나더니, 길 끝에 큼직한 나무가 버티고 있고 바로 옆에 양철 지붕을 얹은 라에톨리 유적 간이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탄자니아 라에톨리 박물관 내부 모습
그때도 비가 내렸어!
라에톨리 발자국은 약 400만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됐다. 발견자 메리 리키(M Leakey)는 엎드려 하나하나 흙을 제거하면서 발자국 윤곽이 드러날 때마다 얼마나 희열을 느꼈을까? 고고학자로서 가장 부러운 순간이다.
그렇다면 이 발자국은 어떻게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을까? 먼 옛날 아프리카판이 아라비아판과 분리되면서 거대한 ‘동아프리카 열곡대’가 만들어졌고 이 열곡대를 따라 많은 화산이 분포해 있다. 그리고 화산이 폭발하면 ‘화산재’라고 불리는 고운 유리질 입자(직경 4㎜ 이하)가 하늘로 분출된 뒤 사방에 쌓인다.

폭우가 내리자, 라에톨리로 향하는 길이 금세 수로가 돼 있다.
먼저, 필자가 라에톨리 유적으로 오던 날처럼 폭우가 내리면 진창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사람이나 동물이 지나가면 발자국이 남게 된다. 그런데 이 발자국들은 미처 사라지기 전에 다시 분출한 화산재로 덮였고, 시간이 흘러 단단한 돌처럼 굳어져 남게 된 것이다. 라에톨리 유적으로 화산재를 뿌린 것이 바로 응고롱고로 화산분화구다. 실제로 라에톨리 발자국 유적에는 오늘날 사바나에 살고 있는 여러 동물 발자국이 함께 보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빗방울 자국까지 명료하게 남아 있다.
나란히 빗속을 걸어가는 남자와 여자의 로망의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고난을 피하기 위한 한 가족의 이동이었을까? 혹자는 작은 발자국을 남긴 여성 엉덩이에는 아기가 매달려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한쪽 발자국이 깊이 파여 있기 때문이다.

메리 리키가 1979년 발굴에서 라에톨리 발자국을 조사하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피 제공
곰이 뒤로 걸었던 흔적이라고?
리키 가족은 올두바이 고르지(관련 자료=배기동 역사기행)에 캠프를 두고 더 오래된 지층인 라에톨리 일대를 조사했다. 그러던 중 메리 리키의 아들인 필립이 발자국으로 보이는 것들을 발견했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 발자국을 ‘곰이 뒷걸음치면서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메리는 그러나 사람의 발자국으로 확신하고 2년 뒤인 1978년에 일대를 발굴, 일렬로 걸어가는 사람 발자국들을 확인한 뒤 ‘발자국 유적 G’로 명명했다. 또 ‘곰 발자국’으로 여겨졌던 필립의 유적(발자국 유적 A)은 발견 후 43년이 지난 2019년에 다시 조사됐는데, 이 역시 사람 발자국으로 확인됐다. 사람의 발자국은 엄지발가락 쪽이 크고 평행하다. 또 들림 발바닥(arched foot) 흔적, 두 발이 교대로 직선으로 걸어가는 등 곰이나 침팬지의 것과는 다르다.
발자국 유적 G는 모두 54개의 사람 발자국이 27m 길이로 열(列)을 이루고 있다. 세 사람의 발자국으로 보이는데, 발자국 길이는 18~22㎝ 정도다. 오늘날 여성의 발보다도 작다. 하지만 유명한 ‘루시’가 32세의 여성이지만 키는 120㎝ 정도였으니, 발자국 유적 정도의 크기면 성인 발자국에 해당할 수도 있다. 큰 발자국 열과 작은 발자국 열이 나란히 이어져 있어서 아마도 한 가족이 같이 걸어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인의 발자국(사진 왼쪽)과 라에톨리 발자국(G-23, 가운데), 그리고 침팬지 발자국 비교. 라에톨리 박물관 제공
한 종류의 인류일까?
인류가 처음 나타난 이후 최근 2만 년 동안을 제외하고는 여러 종의 인류가 살았다. 그렇다면, 이곳 레이톨리 유적에는 몇 종의 고인류가 발자국을 남겼을까? 이는 유적 발견 이후 지속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먼저, 유적 S에서 발견된 발자국은 유적 G의 것보다 좀 더 큰 편인데, 가장 작은 것이 22㎝가 넘고 큰 것은 25㎝가 넘는다. 체격 차이, 또는 성별 차이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종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라에톨리에서 발견된 아파렌시스 송곳니.
유적 발견 초기인 지난 1970년대 말 발자국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놓고 논쟁이 뜨거웠다. 체질인류학자 러셀 터틀(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발자국이 오늘날 사람의 발과 흡사하다는 점을 토대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것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루시 화석 연구를 주도했던 팀 화이트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것임이 분명하다고 반박했다. △발자국 구조상 당시 새롭게 알려진 아파렌시스의 발 구조와 일치하고 △화석 연대와 라에톨리 유적에서 발굴된 화석의 연대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래이톨리 유적에서 발굴된 동물 뼈 화석 덩어리
최근 다양한 비교 시뮬레이션 실험연구를 통해 엄지발가락이 옆으로 튀어나온 정도나 발목의 유연성 정도를 토대로 ‘또 다른 인류 종이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제기됐다. 이 연구는 인류가 애초에 침팬지와 비슷한 발 구조에서 오늘날 현생 인류의 길어진 다리와 단단한 발목을 가진 구조로 진화하는 과정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불완전한 고고학적 증거들이 생산하는 고인류학 논쟁은 언제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인류 진화의 숨겨진 원리를 밝혀내기도 한다.

라에톨리 발자국 복원 상상도. 라에톨리 박물관 제공
두 발 걷기 유적이 던지는 의미
지구에 사는 큰 체구의 짐승은 이미 절멸됐거나 절멸 위기에 처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사람이 예외적으로 번성하는 것은 바로 직립보행, 꼿꼿이 서서 두 발로 걷기 때문이다. 라에톨리 발자국의 주인공들은 침팬지 크기의 뇌 용적(450㏄)이고, 또 석기를 사용한 흔적도 없다. 결국 두 발 걷기로 해방된 손을 활용해 석기로 다른 동물을 사냥했기 때문이 아니라, 먹거리 운반과 나누기 그리고 자손 양육에 사회적인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바로 러브조이 교수의 ‘사랑학설’이다. 그래서 영토 전쟁, 기술 전쟁, 무역 전쟁 등 수많은 갈등 속에서 인류 사회의 지고지순한 보편적 가치를 한 번쯤 음미하게 만드는 유적이기도 하다. 다만, 동아프리카 사바나 숲 오지에 주인 잃은 돌무덤처럼 남아 있기에 찾아가기도, 또 눈으로 살펴보기도 어려우니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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