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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속 ‘멕시코 모자’, 솜브레로 은하의 변신

입력
2025.02.26 18: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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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균
이명균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편집자주

오늘날 우주는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즐길 수 있는 감상의 대상이다. 우주는 인간이 창조한 예술작품과 자연이 보여주는 놀라운 모습보다 더욱 아름답고 신기한 천체들로 가득하다. 여러분을 다양한 우주로 안내할 예정이다.



봄 하늘 밝히는 솜브레로 은하
성단, 헤일로, 블랙홀까지 다양
아는 만큼 더 보이는 신비한 우주


<사진 1> 허블망원경으로 본 솜브레로 은하의 모습. 뿌옇게 보이는 가운데 둥근 부분은 타원은하처럼 보인다. 둥근 부분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검은 띠는 보통 나선은하에서 보인다. 좁쌀처럼 작게 보이는 천체는 구상성단이다. NASA/ESA and The Hubble Heritage Team

<사진 1> 허블망원경으로 본 솜브레로 은하의 모습. 뿌옇게 보이는 가운데 둥근 부분은 타원은하처럼 보인다. 둥근 부분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검은 띠는 보통 나선은하에서 보인다. 좁쌀처럼 작게 보이는 천체는 구상성단이다. NASA/ESA and The Hubble Heritage Team

1,000억 개의 별을 품고 있는 은하는 거대한 생명체와 같다. 은하는 태어난 후 한동안 많은 별을 만들면서 별 폭죽처럼 휘황찬란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별을 만드는 재료가 떨어지면 홀로 조용히 늙어간다. 은하는 또 다른 은하에 가까이 가거나 충돌하면 전혀 다른 모양으로 변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은하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모자처럼 생긴 신기한 은하(사진 1)도 있다. 뿌옇게 보이는 둥근 모양은 타원 은하처럼 보인다. 이 둥근 부분은 나이가 100억 년이 넘는 늙은 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둥근 부분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약간 휘어진 검은 띠가 눈에 띈다. 이 띠는 먼지로 이루어진 암흑 성운이다. 이 때문에 은하 전체의 모습이 ‘솜브레로 모자’와 비슷하게 보인다. 솜브레로는 머리를 덮는 중앙 부분이 높고 챙이 넓은 화려한 멕시코 모자다. 햇빛을 가리기에 좋아 사막을 배경으로 한 서부 영화에 종종 등장한다. 그래서 이 은하의 이름은 솜브레로 은하다.

솜브레로 은하는 봄철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처녀자리 근처에 위치해 있고, 지구와의 거리는 2,800만 광년이다. 가까운 우주에서 가장 밝고 무거운 은하인데, 이렇게 무거운 은하는 일반적으로 둥그런 타원 은하의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솜브레로 은하는 타원 은하처럼 보이면서도 검은 띠도 있다. 검은 띠는 일반적으로 나선 은하에서 보인다. 그래서 이 은하의 정체는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필자의 연구진은 최근 이 은하 주변을 관측한 결과, 사진에서 보이는 은하가 실제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혔다. 사진 속 은하보다 훨씬 거대한 헤일로(Halo)가 은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거대한 헤일로를 찾아낼 때는 축구공처럼 생긴 구상성단이 매우 유용하다. 구상성단은 행성이 태양계에서 공전하듯이 은하 주위를 돌고 있다. <사진 1>에 좁쌀처럼 작게 보이는 것이 구상성단이다. 솜브레로 은하에는 약 2,000개의 구상성단이 있다. 이런 구상성단을 찾아내 공간 분포를 조사하면 헤일로를 찾아낼 수 있다.

<사진 2> 제임스웹 망원경으로 찍은 적외선 사진. 허블망원경 사진에서 검은 띠로 보이는 자리에 밝은 원반 띠가 잘 보인다. 원반의 중심에 있는 천체 속에는 매우 무거운 블랙홀이 있다. NASA, ESA, CSA(STScI)

<사진 2> 제임스웹 망원경으로 찍은 적외선 사진. 허블망원경 사진에서 검은 띠로 보이는 자리에 밝은 원반 띠가 잘 보인다. 원반의 중심에 있는 천체 속에는 매우 무거운 블랙홀이 있다. NASA, ESA, CSA(STScI)

그런데 최근 제임스웹 망원경 적외선카메라로 찍은 솜브레로 은하(사진 2)는 허블망원경 사진(사진 1)과 매우 다르게 보인다. 가운데 뿌옇고 둥근 모습은 보이지 않고, 검은 띠는 밝게 빛나는 원반 띠로 보인다. 모자 챙이 적외선카메라에서 밝게 빛나는 이유는 모자챙에 있는 먼지 성운이 적외선을 많이 방출하기 때문이다. 이 모자챙은 많은 별들이 태어나는 생명의 요람 같은 곳이다.

원반 띠 중심부에는 밝게 보이는 천체가 있는데 바로 은하핵이다. 은하핵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블랙홀이 있고, 이 블랙홀의 질량은 무려 태양의 10억 배나 된다.

<사진 3> X선 사진(파란색), 광학 사진(초록색), 적외선 사진(노란색)을 합성한 솜브레로 은하의 모습. 파란색으로 뿌옇게 보이는 부분은 온도가 매우 높은 기체이다. 파란색 별처럼 보이는 천체는 항성 블랙홀이 포함된 이중성이며, 대부분 구상성단 안에 있다. NASA/CXC

<사진 3> X선 사진(파란색), 광학 사진(초록색), 적외선 사진(노란색)을 합성한 솜브레로 은하의 모습. 파란색으로 뿌옇게 보이는 부분은 온도가 매우 높은 기체이다. 파란색 별처럼 보이는 천체는 항성 블랙홀이 포함된 이중성이며, 대부분 구상성단 안에 있다. NASA/CXC

찬드라 망원경으로 찍은 사진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3>은 X선 사진(파란색), 광학 사진(초록색), 적외선 사진(노란색)을 합성한 것이다. X선 사진에서 파란색으로 뿌옇게 보이는 부분은 100만 도가 넘는 뜨거운 기체다. 파란 별처럼 보이는 천체가 특히 많은데 이들은 태양 정도의 질량을 가진 항성 블랙홀이다. 이 블랙홀들은 대부분 솜브레로 은하의 구상성단 안에 있다. 블랙홀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블랙홀 주변 물질이 X선을 많이 방출하기 때문에 X선 사진을 통해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아름답고 신기한 은하 사진 속에는 알고 보면 매우 다양한 천체들이 있다. 아기별, 청년별, 노인별, 젊은 성단, 늙은 성단뿐만 아니라 항성 블랙홀, 매우 무거운 블랙홀, 거대한 헤일로 등 보이지 않는 천체도 있다. 우주는 보는 만큼 알 수 있고, 아는 만큼 볼 수 있다.


이명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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