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고위급 4시간 30분간 회담
"가능한 한 빨리 전쟁 종식" 합의
관계 회복·경협 '러 요구안' 수용
젤렌스키 "우크라 없는 종전 거부"

미국과 러시아 고위급 대표단이 18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리야드=타스 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종식을 위해 별도로 고위급 협상팀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미러 관계 회복과 경제 협력도 약속했다. 하지만 전쟁 피해 당사국인 우크라이나 의견은 철저히 배제됐다. 미국과 러시아가 자국 이해관계에 따라 일방적으로 종전을 밀어붙일 것이란 예상은 사실로 굳어졌다. 튀르키예를 방문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강하게 반발하며 다음 날로 예정된 사우디 방문을 전격 연기했다.
미러 협상단 구성, 종전 논의 본격화

세르게이 라브로프(왼쪽) 러시아 외무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18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양자 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리야드=AFP 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BBC방송 등에 따르면 미국과 러시아 고위급 대표단은 이날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4시간 30분 동안 회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며 ‘종전 협상 즉각 개시’에 합의한 지 불과 엿새 만이다. 미국에서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티브 위트코프 대통령 중동특사,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러시아에서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담당보좌관,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회장이 참석했다. 하지만 협상 테이블에 우크라이나 자리는 없었다.
태미 브루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회담을 마친 뒤, 두 나라가 향후 종전 논의를 담당할 고위급 협상팀을 꾸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브루스 대변인은 “모든 당사자가 수용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가능한 한 빨리 갈등을 종식시키는 길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협상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브루스 대변인은 “전화 통화 한 번과 회동 한 번으로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며 “우리는 중요한 한 걸음을 뗐다”고만 말했다.
왈츠 보좌관은 종전 협상에서 다뤄질 의제로 “우크라이나 영토 문제, 안전 보장 방안” 등을 거론했다. 하지만 ‘영토’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빼앗긴 땅을 의미하는지는 불확실하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영토 회복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라브로프 장관도 이날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의 나토 합류뿐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이 제안한 유럽 평화유지군의 우크라이나 배치도 “용납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놨다.
러시아 요구사항 다 들어준 트럼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18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미국과 양자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리야드=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는 협상 결과에 상당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미국이 우리 입장을 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라브로프 장관의 말이 방증한다. 우샤코프 보좌관은 “모든 사안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밝힌 대로 “별도 협상팀이 적절한 시기에 우크라이나 문제를 놓고 접촉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특히 러시아가 중점을 뒀던 미러 관계 정상화, 경제 제재 해제 등 핵심 요구사항들도 대부분 수용됐다. 루비오 장관은 전쟁 발발 후 상호 보복 조치로 기능이 축소된 대사관 운영을 정상화하고, 러시아와 지정학적·경제적 협력 관계를 모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러시아에 부과했던 경제 제재 해제 가능성도 시사했다.
사우디 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이르면 다음 주에 정상회담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러시아는 일단 부인했다. 우샤코프 보좌관은 “정상 간 회동 날짜를 말하기는 어렵다”며 “다음 주에 열릴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우크라 패싱 현실화… 젤렌스키, 사우디 방문 연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오른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8일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어두운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앙카라=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패싱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번 회담뿐 아니라 향후 정상회담 개최 논의에서도 젤렌스키 대통령이 낄 자리는 없어 보인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와 협력해 전쟁을 끝내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 방식은 푸틴 대통령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회담은 유럽에서 가장 파괴적인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처벌을 내리려는 서방의 노력을 포기한, 충격적인 방향 전환”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튀르키예를 방문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회담한 뒤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없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끝내는 방법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아랍에미리트(UAE)와 이날 튀르키예에 이어 이튿날 사우디를 찾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예정이었지만, 사우디 방문을 다음 달 10일로 전격 연기했다. 미러 회담에서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미국에 불만과 항의를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관련 이슈태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