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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가 바라는 나라

입력
2025.02.17 16:00
수정
2025.02.17 16:07
26면
0 0
정영오
정영오논설위원

자유 수호자 자처하는 극우 속속 집권
진정한 민주주의 놓고 이념 경쟁 가열
‘선거로 통치자가 쫓겨나느냐’가 핵심

알리스 바이델(왼쪽부터) 독일을위한대안(AfD) 공동대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JD 밴스 부통령의 가면을 쓴 시위대가 지난 12일 독일 뮌헨안보회의 행사장 앞에서 이들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뮌헨=로이터 연합뉴스

알리스 바이델(왼쪽부터) 독일을위한대안(AfD) 공동대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JD 밴스 부통령의 가면을 쓴 시위대가 지난 12일 독일 뮌헨안보회의 행사장 앞에서 이들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뮌헨=로이터 연합뉴스

“내가 유럽에 대해서 가장 걱정하는 문제는 러시아나 중국 같은 외부 존재가 아니라, 유럽 내부 문제다. 유럽이 미국과 공유하는 가치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유럽이 이주민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으며, 유럽 정부들이 ‘극단적 검열’을 행사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밴스는 루마니아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2월 대선 1차 투표에서 러시아가 틱톡 등을 이용해 극우 성향 후보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선거 결과를 무효로 결정하고 재선거를 명령한 것을 문제 삼았다. 밴스는 “민주주의가 외국 정부가 고작 수십만 달러를 들여 내보낸 디지털 광고 때문에 파괴된다면, 그건 원래 허약했기 때문”이라고 러시아를 두둔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독일 총선이 일주일 남짓 남은 시기에 극우 ‘독일위한대안(AfD)’ 대표를 14일 만나 지지를 밝히며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 또 유럽에서 정부 참여가 금지된 극우 반이민자 정당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밝히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같은 날 밴스 부통령의 발언을 두둔하며 “유럽은 표현의 자유를 잃고 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트럼프가 유럽에 ‘이데올로기 전쟁’을 선포했다”고 분석했다. 이제 이데올로기 전쟁의 전선은 ‘민주 대 권위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트럼프를 비롯한 오늘날 극우 정치인은 공통으로 ‘자유’와 ‘국민’의 수호자로 자처하면서, 기존 민주 정당의 ‘소수자·이민자 권리 보호’를 억압적이라고 비판한다. 또 시장 경제를 옹호하면서 감세와 규제 완화를 주장하지만, 관세장벽을 높이는 이중적 행태에 어색해하지 않는다. 비판적 언론에 협박과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가장 심각한 건 선거제도를 공격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런 모순적 태도에도 주장이 호응을 얻는 이유는 ‘국민은 단일한 공동체이며, 국가는 국민에게 질서와 번영을 제공해야 한다’는 단순 명쾌한 구호다.

극우의 이런 구호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민주 체제를 갖춘 사회만이 장기적으로 질서와 번영을 누린다는 점은 역사가 증명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게 아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 갈등하는 존재이며, ‘만장일치’는 민주주의 성공이 아니라 실패의 증거라는 전제에서 설계됐다. 민주적 선거제도는 다양한 갈등이 충돌하는 사회에서 정권을 잡기 위해 폭력을 동원해야 할 위험성을 효과적으로 낮춘다는 점에서 확산한 것이다. 선거에 패배한 정당이 다음 선거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폭력 해결책이 있을까.

폴란드 출신 정치학자 애덤 셰보르스키는 “선거로 통치자를 쫓아낼 기회가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 정부를 검증할 유일한 기준”이라고 말한다. 한 국가가 그런 선거제도를 갖추고 있다면, 그 체제의 권력자들은 국민에게 자신을 ‘강요’하지 못하고 ‘제안’할 수 있을 뿐이다.

선거제도에 대해 불신을 조장하고 공격한다는 점만으로도 극우는 비민주 세력이다. ‘선거가 공정한지 살피려고 계엄’을 할 필요는 없다. 가장 확실한 판별 방법은 ‘현직 통치자가 패배하는가’이다. 1788년 이후 전 세계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현직의 승리는 무려 80%다. 현직자는 당선을 위해 동원할 합법적 불법적 무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여당 후보에게 승리해 대통령이 됐고, 집권 후 선거에서는 야당에 졌다. 더 이상 검증이 필요할까.

한국의 극우가 꿈꾸는 나라는 ‘경쟁적 선거제도가 없는 시장경제 체제’다. 여기에 가장 가까운 국가가 바로 그들이 혐오하는 중국이다. 중국도 스스로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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