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민복지용어사전. 홍윤희 이사장 제공
"제가 이런 큰 자리에 나와서 이야기하는건 떨려서요. 말을 더듬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한 청년이 떨리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무대에서 말을 이었다. 지난 10일 서울시가 마련한 '약자동행 자치구 지원사업 성과보고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노원구의 '느슨한 컴퍼니'라는 프로그램 참여자였다. 이 프로그램은 여러 이유로 일하겠다는 용기를 내기 어려웠던 청년들에게 느슨한 일 경험을 통해 일상 회복을 돕는 기획이다. 비슷한 처지의 청년에게 전달할 '은은키트'를 기획하면서 지원을 받는 입장에서 지원을 제공하며 스스로를 바꿔 가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행정적 용어로 짧게 바꾸자면 이렇다. '고립, 은둔 청년이 고립에서 극복하도록 돕고 수혜자에서 기여자로 바뀌는 과정을 지원한다.'
프로그램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여러 홍보물들을 봤다. '느슨한 컴퍼니'라는 작명부터 고심한 걸 알 수 있었다. 소위 '고립, 은둔청년'을 대상으로 하지만 본 프로그램에서는 (당연히도) 그런 단어를 전혀 쓰지 않았다.
사회복지현장에서 이렇게 어떤 프로그램 참여자 개개인을 존중해서 단어 하나도 조심스럽게 쓴다는 건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진행 편의상, 홍보할 때 참여자들을 구분짓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선정 과정이 ‘중증장애인 대상’ ‘독거어르신 대상’ 등이라면, 이미 그 것이 구분짓는 행위다. 적어도 실제 참여자들이 볼 수 있는 홍보물이나 참여 프로그램에서는 그런 '대상화'단어 자체를 되도록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상화 과정 속에서 자칫 참여자 개개인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느낌을 소거시킬 위험이 있어서다.
회사에서 CSR(소셜임팩트)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경우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프로그램 홈페이지나 보도자료에 '수혜자, 기부, 후원' 대신 되도록 '참여자, 지원, 전달' 등의 단어로 바꾸어 사용했던 기억이 살아났다. 특히 어떤 기관을 후원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들에게 물품이나 금전을 전달하는 경우에 더더욱 조심하려고 애썼었다.
이런 문제의식을 제기한 게 2020년 성민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든 '성민용어사전'(바로가기)이다. 사회복지현장에서 행정적으로 흔히 쓰이는 단어들을 바꿔 보자는 취지다. 뭔가 베품의 대상처럼 느껴지는 '수혜자'라는 말이나 '대상자' 대신 '참여주민'으로 쓰자던지, '관리'나 '발굴'이란 단어를 사람에 대해서는 가급적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특히 '관리'라는 말 자체가 주는 뉘앙스가 '관리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은근히 신경쓰인다는 부분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물론 적용이 쉽지만은 않다. 복지 현장에서 '지원사례관리팀' 등 이름에 아예 '관리'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복지 현장 뿐 아니다. 섣부른 대상화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특정 세대를 싸잡아 'MZ세대' '이대남'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표현하고 어떤 몇몇가지 특징으로 모두가 그런 것처럼 일반화되는 글을 읽었다면? 당사자들은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휠체어 탄 사람에게 "어 장애인이다!"라고 소리쳤다면?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이름 대신 '장애인'이라고 공개적으로 불리우는 것, 그렇게 공개적으로 어떤 '카테고리'로 불리우는 게 허용된다면 기분 좋을 리 없다.
'성민용어사전'같은 용어 제안이 만들어진 취지는 팀 이름에 '관리'란 단어가 들어가 있으니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그 관리의 대상이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말 하나 하나 신경쓰는게 피곤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나도 누군가를 무의식적으로 대상화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을 그 사람의 특징으로 인식하는 대신 한 명의 고유한 인격으로 대하는 건 처음부터 완벽할 수만은 없다. 누구에게나 연습이 필요하고 방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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