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동포 애니 챈(오른쪽)이 2023년 8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나란히 서 있다. 한미동행USA재단 홈페이지 캡처
공직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재미동포 애니 챈(한국명 김명혜)이 국내에서 조직적으로 확산시킨 정황이 본보 보도를 통해 확인됐다. 미국 이민 후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그는 직접 설립한 단체들을 동원하고 부정선거론을 추종하는 유튜버를 후원하는 등의 방식으로 치밀하게 활동했다. 자금력·조직력을 활용해 한국·미국의 정계 인사들과 네트워크를 쌓기까지 했다.
챈이 설립한 한국보수주의연합(KCPAK) 등 단체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극우 지지자들이 제기한 부정선거론을 한국에 전파했고, 한국의 지난 총선과 대선에 중국이 개입했다는 음모론을 미국에 역전파해 양국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그 과정에 “부정선거 규명을 위해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을 트럼프가 구해줄 것” 등의 황당한 루머가 퍼졌다.
본보 인터뷰에서 챈은 “부정선거를 부인하면 공산주의 세력” “김건희 여사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 등 황당무계한 주장을 했다. 이런 사람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가 부정선거론 확산의 유일한 배후는 아닐 것이다. 다만 그의 존재는 부정선거론 확산이 일부 세력의 망상이 산발적으로 표출된 현상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계획·실행된 결과의 단초를 보여준다. 부정선거론의 파장과 후유증이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가 여론 조작에 얼마나 취약한지도 보여준다.
정치권의 가벼운 처신이 챈에게 날개를 달아준 측면도 있다. 그는 "한국 정치인들이 저에게 흥미를 갖고 접근했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그가 설립한 단체 창립 행사에 참석했고, 대통령실은 그가 세운 단체 관계자들을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챈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초대 글로벌전략위원장도 지냈다. 국민의힘 의원들과 교류도 있었다.
부정선거론을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근거 없는 음모론이 더 확산되기 전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수사기관, 정치권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부정선거론에서 이득을 취하는 세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초고강도 대책이 시급하다. 챈 이외의 배후 세력 규명도 서둘러야 한다. 선거 불신이 계속되면 민주주의가 존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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