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직권남용... 1심 징역 3년 뒤집어
"비위 보고서, 업무상 공직비리 동향 파악"
수사 청탁, 靑 하명수사... 모두 인정 안 해
조국 등 재수사 동력 잃을 듯... 檢, "상고"

송철호(왼쪽) 전 울산시장과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청와대 하명수사 및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야권 인사들이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 판단을 받았다. 1심 판단과 정반대 결론이다. 혐의를 뒷받침할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고 증언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게 무죄 이유였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 설범식)는 4일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송철호 전 울산시장과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대해 1심 판단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과 문해주 전 민정비서관실 행정관도 무죄 판단을 받았다.
1심 "선거 개입" 인정 뒤집은 2심

송철호(왼쪽) 전 울산시장과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청와대 하명수사 및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재판부는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유죄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수사 청탁과 하명수사를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봤다. 1심에서 송철호 전 시장과 황운하 의원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며 "정치적 이익을 위해 조직적으로 청탁 수사에 나서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방법으로 선거에 개입했다"고 인정한 것과는 배치된다. 피고인들은 선고 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 인사를 나눴다. 송 전 시장은 기자들과 만나 "어둠 속에서 진실의 승리를 보여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면서 "이 사건은 정치적 목적에 의한 정치적 조작 사건"이라고 말했다. 황 의원도 "불명예를 회복할 수 있어 기쁘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울산시장이던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송 전 시장은 2017년 9월 울산경찰청장이던 황 의원에게 경쟁 상대였던 김 의원 관련 수사를 청탁한 혐의를 받았다.
'윤장우 진술' 배척하며 "직접 증거 없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재판부는 "송 전 시장이 황 의원에게 김 의원 비위에 대한 수사를 청탁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1심에서 유죄 근거가 된 윤장우 민주당 전 울산시당 정책위원장의 진술을 배척한 게 결정적이었다. 윤 전 위원장은 송 전 시장 선거캠프의 전신인 '공업탑 기획위원회' 멤버로 검찰에 '송 전 시장이 황 의원과 만나 얘기가 잘 됐다고 말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윤 위원장이 △일부 증언을 부정하며 번복한 점 △검찰 수사보고서에 날인을 하지 않은 점 △송 전 시장에게 배신감을 느낀 뒤 김 의원을 지지한 점을 들어 진술 신빙성에 의문을 표했다. 윤 위원장은 항소심에서 증언을 거부했다. 재판부는 "정황 증거에 비추어 황 의원이 김 의원 비위 정보를 송 전 시장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비위 보고서'도 "민정비서관실 업무 해당"
재판부는 송 전 시장이 대통령실 소속 비서관이나 행정관 등과 공모해 하명수사가 이뤄졌다는 검찰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은 송병기 전 부시장이 전달한 김 의원 비위 정보를 문 전 행정관이 범죄첩보서로 만들어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과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을 거쳐 수사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송 전 부사장이 문 전 행정관에게 김 의원 비위를 알린 게 아니라 "대화하다가 문 전 행정관 요청에 따라 진정서를 전달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범죄첩보서 작성도 "민정비서관실과 반부패비서관실 업무에 해당한다"고 봤다. 공직비리 동향 파악 차원이며 반부패비서관실이 2018년 검찰에 이첩해 수사가 진행됐던 다른 사건들과 비교해 내린 판단이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이 대통령비서실을 통해 경찰에 김 의원 수사를 하도록 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공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임종석·조국 '윗선' 재수사 영향도 관심

송철호 전 울산시장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이날 항소심 선고로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 조국 당시 민정수석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는 동력을 잃게 됐다. 서울고검은 지난해 1월 청와대의 하명수사를 인정한 1심 판결을 토대로 윗선을 겨냥한 재기수사를 명령했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가 기획수사 의도를 뒷받침할 증거를 찾기 어렵다며 판결을 뒤집었기 때문에 수사할 명분도 옅어졌다.
임동호 민주당 전 최고위원의 울산시장 당내 경선 불출마를 회유한 의혹을 받았던 한병도 민주당 의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받았다. 1심에서 징역 3년을 받았던 송병기 전 부시장은 울산시청 내부 자료를 유출해 송 전 시장 공약 수립에 활용한 혐의 등으로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검찰은 선고 직후 "(하명수사 의혹 관련해) 주요 증인의 증언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로 신빙성을 배척했다"면서 "대법원 상고를 통해 항소심 판결의 시정을 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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