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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통령 배출 여당 되겠단 염치

입력
2025.02.05 17:1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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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대선은 여당 귀책의 보궐선거
정당 해체 수준의 결기와 파괴 필요
표 달라 할 염치 챙길 시간 아직 있다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0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진상규명 특검법 재의의 건 등에 대한 기표를 마친 뒤 투표함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0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진상규명 특검법 재의의 건 등에 대한 기표를 마친 뒤 투표함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재작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기억할 것이다. 유죄(공무상비밀누설) 판결로 구청장직을 상실해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김태우 전 구청장)가 다시 후보로 공천됐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지 석 달 만에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특사로 그를 사면·복권해 출마의 길을 터줬고,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 후보로 선출했다. 당연히 결과는 참패였다.

무공천도 모자랄 판에 귀책 당사자를 재공천한 건 국민을 우습게 봐도 너무 우습게 본 결과다. ‘강서구청장 선거로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자’는 더불어민주당 프레임에 든든한 지지대만 만들어줬다. 윤석열 정부 몰락의 시발점이었다고 본다.

국민의힘 당규에는 ‘선출직 공직자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인하여 재보궐 선거가 발생한 경우 당해 선거구의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아니한다’가 아니라 ‘아니할 수 있다’이니 적용은 고무줄이다. 민주당도 당 귀책 사유로 재보궐선거가 발생했을 때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무공천 규정을 만들었다 없앴다 반복한다. 여든 야든 유혹에 매번 흔들리지만, 그래도 도의적 책임이 있음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니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 구청장도 아니고, 국회의원도 아니고, ‘무려’ 대통령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인용된다면 5월이든 6월이든 조기 대선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대선은 따지고 보면 (임기 5년이 다 보장되기는 해도) 보궐선거다. 여당에 엄청난 귀책사유가 있는.

대선에 후보를 내지 말라는 비현실적 요구를 하자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윤석열 한 사람만의 문제라면 국민들이 대통령 잘못 뽑은 죄라고 여기겠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힘이 고개를 숙이긴커녕 똑같은 궤변을 편다. 두둔하고 옹호하고 심지어 버럭한다. 이게 왜 내란이냐고, 이게 왜 탄핵 대상이냐고.

대한민국헌법 제77조 1항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계엄 선포 요건을 엄격히 규정한다. 그날(2024년 12월 3일) 그 시각(오후 10시 28분) 국민들은 평화롭게 술을 마시고 TV를 보고 잠을 청했다. 이게 전시나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풍경인가. 심지어 대통령이 총애하는 이상민(전 행정안전부 장관)조차 검찰에서 이렇게 말했단다. “상식적으로 계엄군을 투입할 정도로 사회질서가 혼란스러워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고. 요즘 헌법 다시 읽기가 유행이라니, 국민의힘 의원들도 해당 조문의 1항부터 5항까지 다시 한번 정독을 권한다.

너무도 명백한 불법계엄과 그에 따른 탄핵에도 불구하고 정권 재창출을 도와달라고 읍소하자면 정당을 해체하는 수준의 파괴가 있어야 한다. 후보를 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기가 있어야 한다. ‘친윤’을 자처해온 이들은 후선으로 과감하게 밀어내야 함은 물론이다. 그게 염치고 양심이다. ‘반(反)이재명 여론’에만 기대 아무런 혁신 없이 내란 우두머리와 한배를 타고서 다시 대통령을 뽑아달라는 건 자멸의 길이다. 원인 제공자를 재공천한 강서구청장 선거와 뭐가 다른가.

권성동(원내대표)·권영세(비상대책위원장) 등 국민의힘 지도부가 지난 3일 서울구치소를 찾아 윤 대통령을 면회하며 "인간의 도리"라고 했다. 접견정치를 이제 그만하겠다는데도 국민의힘 주변에는 접견 대기가 줄을 잇는 지경이란다. 아마 이들도 대선이 끝나면 하나 둘 윤 대통령을 ‘손절’할 것이다. 다만 지금은 지지율 상승에 취해 정권 재창출만을 보며 그를 도구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본다.

정말 인간(혹은 정치인)의 도리를 안다면, 국민과 유권자에 대한 도리부터 찾는 게 마땅하다. 정권 재창출을 도와달라 할 양심과 염치를 챙길 시간이 아직은 있다.

이영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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