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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산불서 구조된 동물들 바라보다 3년 전 울진 떠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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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산불서 구조된 동물들 바라보다 3년 전 울진 떠오른 이유

입력
2025.02.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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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의 '동물복지 이야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산불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로스앤젤레스(LA) 팰리세이즈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도 아직 잡히지 않았는데, 22일에는 또 다른 산불이 발생하며 좀처럼 재난의 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난 상황이 지속되는 만큼, 가족을 잃거나 부상당하는 등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이 속출하고 있다. 대피 명령이 떨어졌을 때 집을 비웠던 주민이 반려동물을 찾아 애태우는 장면도 보도됐다. 한 주민이 대피 과정에서 반려동물과 헤어진 지 5일 만에 제보를 받고 달려간 장소에서 상봉하며 기뻐하는 장면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지난 7일 발생한 LA산불로 반려견과 헤어졌던 보호자가 5일만에 반려견과 재회한 뒤 눈물을 쏟고 있다. Liz Kreits X(옛 트위터)

지난 7일 발생한 LA산불로 반려견과 헤어졌던 보호자가 5일만에 반려견과 재회한 뒤 눈물을 쏟고 있다. Liz Kreits X(옛 트위터)

피해 지역의 주 정부가 운영하는 동물관리국은 동물을 잃어버렸거나 도움이 필요한 시민들을 위한 긴급 전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LA 동물관리국은 반려동물과 함께 입소할 수 있는 대피소 3개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는 켄넬, 밥그릇, 사료, 담요를 제공한다.

‘이튼 산불’ 지역에서 발생하는 동물의 지정 구조센터인 동물보호센터 ‘패서디나 휴메인’(Pasadena Humane)은 지난 1월부터 1,000마리 이상의 동물을 구조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화재 지역에서 발견된 동물의 사진, 정보, 발견 장소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고 반환율을 높이기 위해 입양 전 보호 기간을 30일로 늘렸다. 부상과 화상을 입은 동물들이 구조되면서 지역 동물병원과 시민 등 지역사회의 도움도 쏟아지고 있다.

LA 패서디나 동물보호소에는 화재 피해를 입고 보호를 받기 위해 수용되었다가 가족 곁으로 돌아간 동물이 1,000마리를 넘었다. 패서디나 휴메인 페이스북

LA 패서디나 동물보호소에는 화재 피해를 입고 보호를 받기 위해 수용되었다가 가족 곁으로 돌아간 동물이 1,000마리를 넘었다. 패서디나 휴메인 페이스북

캘리포니아 소재 동물보호센터들의 역량만으로는 부족하기에 네바다 주, 유타 주 등 인접 지역 동물보호센터와 구조단체들까지 힘을 모으고 있다. 새로운 동물들의 입소 공간을 만들기 위해 원래 보호 중이던 동물들은 다른 주의 동물보호센터들이 힘을 합쳐 이송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보호단체인 ‘베스트 프렌드 애니멀 소사이어티’는 NPR과의 인터뷰에서 육로와 비행기까지 동원해 패서디나 동물보호센터의 동물들을 유타 주로 이송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 시민들도 임시보호로 동물보호센터의 과밀화 문제를 더는데 동참하고 있다. 심지어 임시보호 신청자가 너무 많아 프로그램을 잠시 중단했을 정도다.

불과 3년 전인 2022년, 경북 울진군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에서 화마를 피하지 못한 채 목줄에 묶여 숨을 거둔 동물들을 마주해야 했던 한국과는 매우 대조적인 광경이다. 비록 동물의 피해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LA에서는 재난 상황에 처한 동물을 돕고자 하는 체계가 갖춰져 있는 것은 물론이고 동물을 돕는 민간의 원조 규모도 한국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왜 그럴까.

로스앤젤레스 시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주 지자체들은 고위험 지역에서 즉시 대피해야 하는 거주자를 대상으로 대피 시 반드시 챙겨야 할 ‘6P 원칙’을 세우고 알렸다. 그중 제일 최우선은 ‘사람과 반려동물’(People and Pet)이다. 이어서 신분증 등 중요 서류(Papers), 처방약(Prescribtion), 사진 등 대체불가한 물건(Pictures), 개인 컴퓨터의 하드 드라이브(Personal computer), 신용카드(Plastic) 등이 뒤따랐다. 반려동물을 사람과 나란히 1순위로 둔 지침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면서도 우리 현실과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2022년 경북 울진군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살아남은 개의 모습. 살아남은 개 곁에는 목줄에 묶인 채 불타 숨진 다른 개가 있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2022년 경북 울진군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살아남은 개의 모습. 살아남은 개 곁에는 목줄에 묶인 채 불타 숨진 다른 개가 있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반면 한국의 현행 동물보호법은 ‘(동물의) 소유자 등은 재난 시 동물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만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마련한 ‘반려동물 가족을 위한 재난 대응 가이드라인’에는 ‘반려동물을 이동장으로 옮기고 미리 준비해 놓은 반려동물 재난 키트를 챙긴다’, ‘출발하기 전 이동하고자 하는 대피시설에 연락하여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할 여분의 공간이 남아있는지 확인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정작 반려동물이 대피할 수 있는 대피소는 없다. 재해구호법 제3조는 구호 대상을 '이재민, 일시대피자, 이외 재해로 인한 심리적 안정과 사회 적응 지원이 필요한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운영 중인 국민재난안전포털의 비상대처요령에 따르면 ‘봉사동물 이외의 반려동물은 대피소에 데려갈 수 없다’고 되어 있다.

꼭 동물 동반 대피소가 아니더라도 재난 상황에서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반려동물과 함께 갈 수 있는 대피시설’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물보호센터는 이미 넘쳐나는 유기동물로 허덕이고 있어 위급한 상황에서 동물을 구호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서 가동할 수 있는 체계도 마련되어 있지 않고, 민간 시설 간의 네트워크도 미흡한 상황이다.

동물 양육자마다 인식의 차이가 큰 것도 문제다. 앞서 언급한 울진 산불 현장뿐 아니라 다른 재난에서도 동물과 대피할 장소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다가 사람과 동물이 함께 위험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보호자의 관심 부족으로 피해를 입는 동물도 있다. 꼭 재난 현장이 아니더라도 한파나 무더위에 방치된 채 목숨을 잃는 동물도 많다. 반려동물뿐 아니라 농장동물도 소유자를 대상으로 재난재해의 대비와 대처 방법을 교육하고 알릴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심한 강도의 재난이 잦은 빈도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재난 상황에서 동물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사람의 복지와도 직결된다. 단시일에 수준 높은 시스템을 갖추기는 어렵겠지만 시급한 것부터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야 한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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