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사장은 아무나 하나: 폐업 전쟁'
자영업자 입장에서 본 폐업 사유 분석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복길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SBS플러스의 자영업 컨설팅 예능 '사장은 아무나 하나' 방송. SBS플러스 제공
배달앱을 켜면 ‘별점 순’, ‘리뷰 많은 순’으로 정렬해 업체를 고른다. ‘진상’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트집을 잡아 별점을 깎는다는 걸 알면서도, 눈은 자꾸만 ‘별 5개’가 박힌 상호로 향한다. 외식업체의 ‘리뷰 이벤트’도, ‘블랙컨슈머’를 폭로하는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도 결국 배달앱을 관성적으로 이용하는 나 같은 소비자들 때문이다.
월 소득 100만 원 미만의 자영업자 900만 명 중 외식업 비율은 70%. 이러한 수치 앞에 혹자는 자영업자들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혹자는 장사를 해서는 안 되는 이들이 장사에 뛰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둘 중 어떤 것이 더 일리 있는 주장일까? 이 시장에 얽혀 있는 소비자, 판매자, 마케터, 플랫폼, 배달 노동자 등의 복잡한 입장들을 떠올리면, 이 시장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생존이냐, 폐업이냐

SBS플러스의 '사장은 아무나 하나: 폐업 전쟁'. SBS플러스 제공
지난달 방영을 시작한 SBS플러스의 '사장은 아무나 하나: 폐업 전쟁'은 이러한 혼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예능이다. 부실한 외식업체를 찾아 진단한다는 점에서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나 '손대면 핫플: 동네 멋집' 등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방송은 프랜차이즈 업체 대표가 진단을 요청한 가게에 방문한 뒤, 운영 상황과 재정 등을 살핀 후 별도의 솔루션 없이 곧바로 ‘생존’과 ‘폐업’이라는 심판을 내리는 것이 전부다. ‘폐업’을 선고한 뒤, 업주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방송은 거기서 종료된다. 업주가 폐업을 받아들이면 ‘폐업 지원금’ 1,000만 원을 지급한다. 기존 방송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파격이다.
그러나 이러한 포맷에 신선함을 느껴 텔레비전을 켠다면 분명 실망하게 될 것이다. 방송은 ‘폐업 진단’에 앞서, ‘진상’ 고객들의 행패가 담긴 식당 폐쇄회로(CC)TV를 공개한 후 패널과 변호사 등이 코멘트를 나누는 것으로 방송 분량의 절반을 채운다. 마치 ‘자영업자의 자격’을 논하기 전에, ‘아프니까 사장이다’라는 메시지에 충분한 공감을 보내는 것처럼.
자영업자 입장에서 본 폐업

SBS플러스의 '사장은 아무나 하나' 방송 캡처. SBS플러스 제공
‘솔루션’ 없이 ‘공감’과 ‘진단’만으로 참담한 외식업계의 현실을 담아낼 수 있을까? 방송은 외식업에 얽힌 수많은 이해관계 중 철저히 업체 사장들의 입장에 집중하여 그들의 눈높이에서 방송을 진행하고, 그것을 업계 전반의 문제점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함량 미달의 업장보다 ‘진상’ 고객을 먼저 배치한 것 역시 이 방송의 타깃이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임을 보여주는 연출 중 하나다.
방송은 자영업의 고충에 충분히 공감을 표한 다음, 지체하지 않고 대부분의 자영업자가 겪고 있을 문제 속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크지 않은 상권에 비해 무리한 권리금을 내고 개업한 작은 수족관 카페, 건강을 잃어가는 자신의 인건비는 비용으로 추산하지 않는 연어 식당, 월 매출 평균 1,500만 원을 올리지만 비싼 재료 가격과 배달 수수료 지출로 남는 것이 없는 샐러드 가게. 3회까지 방영된 방송에서 업주들은 모두 ‘폐업’ 선고를 받고 만다.
대기업 수탈·배달플랫폼 폭리

SBS플러스의 예능 '사장은 아무나 하나' 방송 캡처. SBS플러스 제공
하지만 방송은 폐업 선고의 사유를 업주의 나태하고 방만한 운영에서 찾지 않는다. 방송은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대기업의 아이디어 수탈 문제, 전쟁과 기후 문제로 폭등한 재료 가격 상승 문제,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없는 유통 과정의 문제, 수수료로 폭리를 취하는 배달 플랫폼의 문제 등 외식업 전반에 드리운 구조적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 시청자에게 설득시킨다. 이 과정에서 방송은 ‘성실하게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는 자영업 성공 신화의 한계를 설파하며 그 신화에 취해 스스로에게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리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에게 경영에 관한 코칭을 제공한다.
‘폐업’을 선고받은 세 명의 업주 중 둘은 그 제안을 거부하고 ‘조금 더 버티겠다’는 포부를 말한다. 자신들이 놓치고 있었던 운영 비용들을 면밀하게 살피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자신만의 해결책을 내놓으며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스르고 내일을 도모한다. 방송은 그들을 말리지 않고 위로와 박수를 보내지만, 그들이 처해있던 구조적 문제들은 씁쓸히 남겨둔다.
‘소질이 없으면 자영업을 관둬라’, ‘잠을 줄여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된다’. 두 공허한 구호 속에서 분투하는 자영업자들은 건강을 잃고 줄어드는 수입을 견디며 버틴다. 과연 시청자들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방송은 질문을 거듭하며 답변을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