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개봉 영화 ‘룸 넥스트 도어’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신작
올해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 수작
오랜만에 옛 친구 소식을 듣는다. 암에 걸려 입원 중이라는 말에 병문안을 간다. 전장을 누비던 종군기자 마사(틸다 스윈튼)는 기력 없는 모습으로 병원에 있다. 기자 동료로서 1980년대를 열정으로 함께 관통했던 마사는 이제 없다. 잉그리드(줄리언 무어)는 마음이 무겁다. 자주 마사를 찾는다. 어느 날 마사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잉그리드에게 한다. 연명 치료 대신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싶은데, 곁에 있어 달라고.
‘룸 넥스트 도어‘는 ‘존엄사’라는 문제적 소재를 스크린으로 끌어오나 존엄사에 대해 직설하는 영화가 아니다. 죽음과 삶을 병치시키며 사랑과 우정의 의미를 되새긴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번잡한 미국 뉴욕을 떠나 교외에서 오랜만에 인생의 즐겨움을 만끽한다. 함께 일광욕을 하거나 숲길을 산책한다. 새소리를 들으며 살아있음의 작은 의미를 돌아보기도 하고, 밤새도록 같이 영화를 보며 웃음꽃을 터트리기도 한다. 잉그리드는 그동안 몰랐던 마사와 딸의 사연을 들으며 마사를 더 알아간다. 잉그리드는 매일 아침에 깨어나면 마사의 방문이 닫혀 있을까(마사가 ’결단’의 신호라고 일러뒀다) 두렵지만, 마사가 살아있는 동안은 즐겁다. 그렇게 한동안 멀어져 있던 친구와 우정을 다진다. 다시 못 올 시간이라는 자각이 있기에 마사와 함께하는 일분일초가 소중하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첫 영어 영화..."누구라도 박수 칠 수작"
죽음을 목도하거나 강하게 인식하면 삶은 바뀌기 마련이다. 영화는 미사가 겪은 두 가지 사연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강조한다. 마사는 결혼하지 않고 낳은 딸이 있다. 딸의 아빠는 베트남전쟁 참전으로 마음이 망가진 후 사람을 구하는 직업인 간호사로 일하다 사고로 죽는다. 마사는 이라크전쟁 취재 중에 전장에 끝까지 남아 사람들을 돕는 가톨릭 사제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죽음이라는 공포 속에서 사랑을 더 뜨겁게 확인한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의미가 있다고 영화는 슬쩍 말하는 듯하다.
미국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2020)를 밑그림 삼아 만든 영화다. 스페인 명장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영어로 만든 첫 영화다.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영어권 배우들이 주로 출연하나 알모도바르만의 색채는 여전히 진하다. 강한 색감, 기이한 이야기들, 인상적인 화면 구도 등에서 알모도바르의 인장을 확인할 수 있다. 틸다 스윈튼과 줄리언 무어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각각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과 여우주연상 수상 이력이 있는 두 사람이 내년 오스카 트로피를 다시 품어도 놀랄 일이 아닐 듯하다.
지난달 제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첫 상영회에서 이례적으로 17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아 화제를 모았다.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는 순간 누구라도 마음속에서라도 박수를 크게 칠 수작이다. 23일 개봉, 15세 이샹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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