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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된 미 해군 MRO 시장… 한화와 HD현대, 일본 넘어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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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된 미 해군 MRO 시장… 한화와 HD현대, 일본 넘어설까

입력
2024.10.16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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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한화오션, 미 MRO 진출에 사활
일본 못 간 저부가가치 물량만 수주할 수도
日 따라잡고 신조 함정 수주 포석 다질 필요

9월 2일 오후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가 정비를 위해 입항해 있다. 한화오션 제공

9월 2일 오후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가 정비를 위해 입항해 있다. 한화오션 제공

미국 해군의 함정 유지ㆍ보수ㆍ정비(MRO) 시장 진출을 노리는 국내 방산업계가 연일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경쟁국인 일본을 넘어서는 게 우선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우리나라가 미 해군기지가 포진한 주요 전략 요충지도 아닌 데다, 최첨단 기술의 보안 유지를 위해서라도 아시아에선 미국이 구축함 같은 고부가가치 함정의 MRO를 지금까지처럼 일본에 주로 맡기지 않겠냐는 예상이다. 이 때문에 국내 방산업체들이 미 해군 MRO 시장에 진출하려는 진짜 목적은 MRO 점유율 늘리기보단 신조 함정 수주의 포석을 다지기 위함이라는 분석이다.

미 해군에 필요한 MRO 중 40%만 제때 수행

15일 미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현재 미 잠수함의 약 30%가 수리를 받으려 대기하는 중이다. 미 해군에 필요한 함정 MRO 중 약 40% 정도만 제때 완료될 만큼 지연이 심각한 걸로 나타났다. CRS는 “숙련노동자가 부족하고, 미 정부가 보유한 조선소 4곳의 역량이 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해군 역사상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미국과 글로벌 패권을 다투는 중국은 보조금을 바탕으로 대형 조선소 20곳을 보유, 세계 최대 규모의 해군을 발 빠르게 구축하는 중이다. 미국으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카를로스 델토로 미 해군성 장관이 지난 2월 방한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둘러보고 한미 간 MRO 협력 체계를 강화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였다.

이에 국내에선 연간 20조 원 규모에 달하는 미 해군 함정 MRO 시장이 방산업계의 새로운 ‘캐시카우(현금 창출원)’가 될 거라는 기대가 크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도 미 MRO 시장 진출에 사활을 걸었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지난달 17~20일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가스텍 2024'에 참가했다. 가스텍은 세계 최대 가스ㆍ에너지 산업 전시회로, 에너지 분야 기업은 물론 보관과 운반선을 제작하는 조선업계도 참여한다. 정 부회장이 추석 연휴까지 반납하고 방미한 건 미 조선업 MRO 사업의 수익성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점검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진두지휘하는 한화오션은 지난달 국내 조선소 최초로 미 해군 군수지원함의 MRO를 수주하며 경쟁에 불을 지폈다.

정기선(왼쪽) HD현대 부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HD현대·한화그룹 제공

정기선(왼쪽) HD현대 부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HD현대·한화그룹 제공


75년간 MRO 해온 日, 미 해군의 아시아 핵심 전력

문제는 이들 기업이 입지를 넓히려면 미 해군 MRO 시장 중 아시아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일본을 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은 미 7함대가 주둔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요코스카 해군기지를 중심으로 미 항공모함과 구축함, 잠수함 등의 MRO를 맡고 있다. 올해만 해도 미 해군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인 USS 로널드 레이건을 비롯해, 이지스 구축함인 USS 밀리어스와 USS 벤폴드 등의 MRO를 잇따라 마쳤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75년 넘게 미 해군과 7함대의 MRO를 해왔다”라며 “인도-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 해군 작전의 핵심을 담당하는 중요한 축”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항공모함과 이지스 구축함 등 수익이 큰 고부가가치 함정의 MRO는 일본이 전담하고, 일본에서 소화할 여력이 없는 남는 물량을 국내 업체들이 수주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문근식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원은 “미국은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크기에 보안이 필요한 함정들의 MRO는 일본에 줄 가능성이 많다”라며 “군사적 동맹으로서 한미보다 미일 관계가 더 신뢰성이 높은 데다 해군기지도 일본에 위치해 함대를 운용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한화오션이 지난달 미 해군에서 수주한 군수지원함의 MRO 사업 규모는 약 200억 원 정도인데, 업계에선 이익이 거의 남지 않을 걸로 본다. 문 연구원은 “탄약과 식량 등을 싣는 군수지원함의 MRO는 수익성이 크진 않다”며 “한화오션이 미 해군 MRO 시장 진출을 위한 투자의 개념으로 접근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5월 16일 일본 도쿄 요코스카 해군기지에서 미 해군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인 USS 로널드 레이건이 출항하자 승무원 가족과 친구들이 인사를 보내고 있다. AP 연합뉴스

5월 16일 일본 도쿄 요코스카 해군기지에서 미 해군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인 USS 로널드 레이건이 출항하자 승무원 가족과 친구들이 인사를 보내고 있다. AP 연합뉴스


방위비분담금에서 미 함정 MRO 비용 지급?

일각에선 국내 업체들이 일본을 따라가려면 우선 미 해군 MRO 사업의 경비를 한미 방위비분담금에서 지불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본이 수행하는 미 7함대 배속 함정의 MRO 사업은 비용이 미일 방위비분담금에서 지급된다고 한다. 미국 입장에선 해군 함정의 MRO 비용을 직접경비로 지불하는 대신 방위비분담금에서 해결하면 부담이 적으니 일감을 맡기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최태복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이사는 “한미 방위비분담금은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지원하는 비용”이라면서 “미 해군 또한 한반도 전쟁 억제를 위해 역할을 하는 만큼 이를 해군 함정의 MRO까지 폭넓게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럴 경우 방위비분담금 증액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가 이 문제에서 너무 앞서 나가면 미국이 방위비분담금을 증액하자고 할 것”이라며 “향후 미 대선 결과를 지켜본 뒤 한미동맹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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