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은사 "솔선수범한 속이 맑은 아이"
직장 동료 "멋진 노래를 들려주던 작가"
"강이는 유독 기억에 남았어요. 머리를 뒤로 딱 묶은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젠 교편을 내려놓은 배윤경(71)씨는 37년 전 '그 학생'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교실 한편에 조용히 앉아 늘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학생. 수업 시간마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앉아 있던 그 학생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바로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53)의 고등학교 시절이다.
한강이 풍문여고(현 풍문고)를 다닐 때 2학년 담임이었던 배씨는 '조용하게 친구들을 이끌던 학생'으로 한강을 기억했다. '학급 반장 한강'은 큰 소리로 친구들을 통솔하거나 지시를 내리기보단 묵묵히 앞장서는 학생이었다. 배씨는 "강이는 조용한 카리스마를 보이는 반장이었다"며 "본인이 먼저 행동을 하니 늘 다른 아이들도 따라왔다"고 말했다.
열성적으로 수업에 임하던 모습도 선생님 기억이 남아 있단다. 배씨는 "강이는 늘 믿음이 가고 침착한 학생이었다"며 "다른 과목 선생님들에게도 눈이 초롱초롱하고 흡수력이 굉장히 좋았다고 칭찬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이를 불렀을 때 돌아보던 수수한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며 "속이 깨끗하니 훌륭한 작품도 나왔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한강의 △은사 △과거 직장 동료 △그와 인연을 맺었던 문인 등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과묵하고 성실한 학생", "침착하고 꼼꼼했던 기자", "멋진 노래를 들려주는 작가" 등 이들이 기억하는 한강의 모습은 저마다 달랐지만, 수상 소식에 감동하고 축하하는 마음만은 모두 같았다.
"탄탄한 취재로 주인공 삶 그려"
한강은 작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회 초년병 시절 잠시나마 잡지사 기자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 1993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한강은 잡지 '샘터' 편집부에서 기자로 일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한강은 같은 해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등을 실으며 시인으로 등단했고, 다음 해인 1994년엔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작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잡지사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이 기자로 근무할 당시 샘터의 편집부 차장이었던 박몽구 시인은 한강이 소외된 이들에게 보였던 관심을 기억했다. 박 시인은 "강원도 탄광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취재하는 등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꼼꼼하고 차분하게 기획했다"며 "소설을 쓸 때도 상상력에 모두 의존하기보단 탄탄히 취재를 해서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이 피부에 와닿게 그려냈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인상적이었던 한강의 글솜씨를 언급하기도 했다. 박 시인은 "소설가로 등단하기 전이었음에도 이미 문장을 수정할 여지가 없었다"며 "우린 잡지사여서 윗사람들이 많이 고쳐주기도 하고 지시도 많이 했는데, 한강은 본인이 한번 꼼꼼히 취재하면 더 이상 손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벽한 문장을 구사했다"고 설명했다.
동료 문인들은 한강이 뛰어난 춤 실력을 보여줬다며 의외의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 충청지부장인 김창규 시인은 "출판기념회나 작가 모임에서 만나면 뒤풀이 장소에서 노래도 잘하고 춤도 멋지게 추는 그런 작가였다"며 "샘터에서 근무할 때도 만났는데 이렇게 역사의 발자취를 남긴 대단한 작가가 돼 뭉클하다"고 말했다.
연세대 동문들도 기쁨
한강의 모교인 연세대 동문도 벅찬 마음을 드러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11일부터 연세대 백양로에는 '연세인 한강, 백양로에 노벨상을 새기다' 등 현수막이 곳곳에 걸렸다. 이 학교 학보사는 노벨상 수상을 알리는 호외를 제작했다. 인터넷에선 윤동주 김수영 최인호 윤후명 기형도 성석제 김영하 등 연세대 출신의 쟁쟁한 문필가들의 업적을 새삼 기리는 글도 이어졌다.
연세문학회 회원인 목지수(25)씨는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문학회 친구들이 모인 카톡방이 '연세대 선배' '경사다' 등의 내용으로 폭발했다"며 "발표되는 순간 세상이 밝아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가 드디어 한강을 알아본다는 생각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문학회 회원인 오상현(25)씨는 "저는 전부터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며 기쁨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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