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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유창한 최측근 한동훈, '특급 칭찬'하던 尹과 왜 돌아섰나

입력
2024.10.05 14:00
수정
2024.10.0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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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여의'도'와 용'산'의 '공'복들이 '원'래 이래? 한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의 뒷얘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절대 파격 인사가 아니다.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다양한 국제업무 경험도 가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4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하며 한 말입니다. 그야말로 ‘특급 칭찬’입니다. 윤 대통령은 인사 발표 뒤 차를 타고 사무실을 떠나면서도 “국제적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미국 변호사이고, 수사·재판 경험이 많은 한 검사장이 가장 적합하다”고 추켜세웠습니다.

‘법무부 장관에게 영어 실력이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는 고차원적 질문도 나왔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49세 한 대표를 법무부 장관 자리에 발탁하며 ‘검찰 기수 파괴’가 단행됐지만, 별 탈 없이 넘어갔습니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 최측근’임을 모르는 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 대표를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부르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되레 강성 친윤석열계는 한 대표를 ‘배신자’라며 손가락질합니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용산에서 한 대표와 만찬을 하며 눈길조차 주지도 않더라”라고 했습니다. 그사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여권 인사들은 ①김건희 리스크 ②윤·한 스타일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③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뜰 수 없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한 대표가 ‘차기 권력’을 겨냥한다면, ‘현재 권력’인 윤 대통령과의 충돌은 필연적이라는 뜻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를 방문해 난간을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를 방문해 난간을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김건희 여사' 리스크 두고 한 '독립할 결심' 했나

여권에서는 한 대표가 일찌감치 윤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할 결심’을 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지난 1월 김 여사와 한 대표 간의 ‘문자메시지 읽씹’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한 대표는 김 여사의 명품백 의혹에 ‘김 여사의 사과’를 요청하며 윤 대통령과 부딪혔습니다. 사건의 한복판에 있던 김 여사는 1월 15일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한 대표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냅니다.

“한 번만 브이랑(VIP·대통령) 통화하시거나 만나시는 건 어떠실지요. 내심 전화를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꼭 좀 양해 부탁드려요.”(1월 15일) “비대위 차원에서 사과를 하는 것이 맞는다고 결정 내려주시면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1월 19일) “함께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였는데 아주 조금 결이 안 맞는다 하여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의심을 드린 것조차 부끄럽습니다.”(1월 25일) 이 문자들은 지난 7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에서 공개된 것입니다.

한 대표는 김 여사의 절절한 메시지에 일절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읽씹’입니다. 당시 4월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 지지율은 추락을 거듭했고, 여권에선 ‘김 여사 사과’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친윤계는 이를 두고 “한 대표가 김 여사의 사과를 뭉겠다”고 퍼부었습니다. 한 대표가 도움을 호소하는 영부인을 외면했다는 비판도 상당합니다.

한 대표는 왜 그랬을까요. “여사가 사과를 하려 했다면 당대표에게 사적인 문자를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당과 공식적인 루트로 논의해야 한다"는 게 한 대표 측 설명입니다. 집권여당 대표가 선출된 권력이 아닌 영부인과 물밑에서 공무를 논의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윤 대통령과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은 동지적 관계’였던 검사 한동훈이, ‘정치인 한동훈’으로 독립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기타 선물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기타 선물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보스 리더십 vs 조선제일검... 너무 다른 스타일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20년 관계'를 어떻게 유지했는지 놀라울 정도로 서로 다릅니다. 윤 대통령은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두주불사 스타일이며, 검사 시절 '윤석열 사단'을 이끌 정도로 강력한 '보스 리더십'을 자랑합니다. 한 대표는 전혀 술을 마시지 않고, 굳이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는 스타일입니다.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이 같은 특징은 그를 ‘조선제일검’에 이르게 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타고난 반골'이라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정권 당시 “위법을 지시할 때 따르면 안 된다”,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권력을 치받았습니다. 한 대표는 지난해 12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 오르며 “누구를 맹종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윤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꼬리표를 의식한 ‘정치적 변명’ 정도로 해석됐지만, 지금 보면 ‘작심 발언’이 확실합니다.

한 대표는 공사 구분도 유별납니다. 검사 시절 ‘전관예우 변호사’를 일절 만나지 않았다는 일화가 그의 일면을 설명합니다. “한 대표는 검사 시절 검사장 출신 선배도 변호사로 개업하면 잘 만나주지 않았다. 설혹 만나더라도 여느 검사처럼 ‘검사장님’이라며 예우하지 않고 꼬박꼬박 ‘변호사’라고 칭했다.”(정치권 관계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 대표가 지난 1일 오후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 등을 논의하는 여야 대표 회담을 마친 뒤 각자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 대표가 지난 1일 오후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 등을 논의하는 여야 대표 회담을 마친 뒤 각자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는데...

한 대표의 지상과제는 ‘차기 대통령’입니다. 정치 지형은 한 대표에게 불리합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20%까지 떨어져 역대 정권 중 가장 낮습니다. 국민이 ‘검사 출신 대통령’을 다시 선택할지에도 물음표가 붙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을 장악한 이재명 대표는 일찌감치 ‘대권 경기장’에 올라 몸을 풀고 있습니다.

한 대표로서는 절박합니다. 대통령과 충돌하더라도 ‘중도·수도권·청년’ 지지층 확장이 불가피합니다. 다음은 여권 관계자의 말입니다. “한 대표는 검찰 시절 권력을 겨냥한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만약 정권이 바뀐다면 보복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대표는 지금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태다. 국민만 보고 갈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 입장은 다릅니다. 지지율이 바닥인 윤 대통령은 국정 성과를 내기 위해 집권여당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어떤 정부도 하지 못한 의료·연금·노동 개혁을 성공시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합니다. ‘믿을 수 있는 검사 후배’인 한 대표를 법무부 장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키운 이유입니다. 윤 대통령에게 한 대표는 ‘또 하나의 태양’이 아닌 ‘국정 조력자’여야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만찬 뒤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 대통령실 참모진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만찬 뒤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 대통령실 참모진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양측 관계는 위태롭습니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을 일주일 넘게 묵살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자신에 맞서던 안철수·나경원·이준석 의원을 ‘찍어낸’ 경험도 있습니다. 여권에서는 ‘한동훈 패싱’이 ‘한동훈 축출’로 이어질 것이란 루머까지 나돕니다. 한 대표도 윤 대통령과 물러설 기미가 없습니다.

화해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다만 해결 방식은 정반대입니다. 한 대표 측은 “여권이 상식적, 합리적으로 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윤 대통령이 한 대표를 여당 대표로 인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반면 친윤계에서는 “윤 대통령은 ‘형님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면 한없이 약해지는데, 싸우자고 덤비면 제압해야 하는 성격이다. 한 대표가 조금만 유연해지면 극적으로 관계가 풀릴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개인 스타일이건, 정치적 욕심 때문이건, 권력 싸움에 피해를 보는 건 국민입니다. 누가 먼저 '국민을 위해' 자존심을 굽힐지 궁금해 집니다. 정치에 필요한 건 '유창한 영어 실력' 같은 특급 칭찬이 아닌 대화와 타협의 능력임을 유념하기 바랄 뿐입니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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