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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피곤해도...김이강 시인은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

입력
2024.09.13 12: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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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 김이강 시인
도시 산책자의 걸음 따라가는 '산책 시집'
"걷기를 시에 반영…강북 골목 걸어보세요"

시인 김이강. 현대문학 제공

시인 김이강. 현대문학 제공

“택시를 부를까 여러 번 고민했다. 다음 골목으로 들어서서 걷다가 다음 골목 또 다음 골목으로 걸었다. 그렇지만 금세 지치고 피로해지기 시작한다. 인간은 금세 지치고 피로해지고 만다”면서도 김이강(42) 시인은 걷는다. 새 시집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에서 김 시인의 시 역시 서울 이화여대 앞 거리에서부터 안국동, 동묘, 은평구와 성북구를 걷는다. 올해 2월 나온 시집 ‘트램을 타고’에서도 서울 해방촌, 혜화동, 창경궁 등을 걸었던 그다.

지치고 피로하다면서도 김 시인은 왜 계속 걷는 걸까. 그는 12일 한국일보에 “시인이 되지 않았더라도 많이 걸었을 것”이라며 “‘걷기’에서 여러 가지 체험이 생겨난다”고 설명했다. “걸으면서 떠오르는 생각, 걷는 리듬, 걸으며 보고 듣는 것과 사람들이 모두 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환경이 되어 시에 반영돼요.”

실컷 걷다가 “여길 왔었어” 낄낄대는 순간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김이강 지음·현대문학 발행·80쪽·1만2,000원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김이강 지음·현대문학 발행·80쪽·1만2,000원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는 “도시의 산책자가 거니는 발걸음을 천천히 따라가는 ‘산책 시집’”이라는 설명이 더없이 어울린다. 김 시인은 자신이 거닌 도시의 풍경을 시로 재현한다. 다만 그 도시의 풍경은 우리가 익히 아는 것과 다르다. “한파 때문에 한산한 이대 앞 거리였는데 우리가 구경한 옷들은 모두 여름의 셔츠들”(‘우리 어째서 한 번에 23초까지만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그곳에 가져갔을까?’)처럼 시간이 뒤엉키고 “옥상을 둘러싼 담은 어쩐지 높지만 가까이 가면 낮아지고 사람의 얼굴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움푹 패인 지형”(‘밤의 표면’)처럼 공간도 왜곡됐다.

시공간을 가뿐하게 가로지르는 김 시인의 산책은 어디로 닿을까. 산책이라는 행위가 '특정한 목적이나 목적지 없는 걷기'인 만큼 그는 걷고 또 걷다가 이렇게 중얼거린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분명히 생각하고 움직였는데, 얼마 전에 왔던 장소에 오늘 다시 도착해있다. 우리 여길 왔었어. 낄낄 웃는다.”(‘패티스미스’)

표제작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는 시가 아닌 에세이다. 김 시인은 “에세이라 (시에 비해) 가공이 덜 된 면은 있다”면서도 “시와 관련한 생각, 사람을 보는 시선, 늘 가지고 있던 관계성이 잘 녹아들어간 글”이라고 전했다. 에세이에서 김 시인은 서울 마포구에서 용산구까지 이어지는 경의선 숲길에서 만난 ‘그’와 걸으며 “걷고 이야기하면서 바라보는 얼굴은 조금 다른 세계에 있다”고 말한다. 알 수 없기에 “더듬고 짚어가는 대상”이 되었지만, 사실은 “곁에 실재하여 함께 걷는 동안에도 그다지 다르진 않았지”라고 그는 곱씹는다. 시인의 산책은 나란히 걸으며 서로를 다 알 것 같다고 오해하는 순간에 물러나 오래 바라보며 이해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다.

“서울 강북의 모든 길 걸어보기를”

가을비가 내린 5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서 우산을 쓴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시스

가을비가 내린 5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서 우산을 쓴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시스

2006년 등단한 김 시인은 2012년 첫 시집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를 냈다. 2018년에는 시집 ‘타이피스트’를, 올해는 ‘트램을 타고’를 내며 6년이라는 주기를 지켰다. 올해는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로 1년 두 권의 시집이라는 드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놨다. 그는 일부러 6년의 간격을 두고 시집을 낸 것은 아니라면서도 “느리게 쓰는 편이라 늦게 내게 됐다. 열정적으로 작품을 내놓는 작가들이 부럽지만, 지금의 속도가 내겐 맞는다”고 전했다. 다음 시집은 다시 6년을 기다려야 읽을 수 있는지를 묻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는 여름의 끝과 겨울의 시작이 닿을 듯 닿지 않는 계절의 틈새에서 천천히 걸으며 읽고 싶은 시집이다. 김 시인에게 그의 시와 함께 산책하기 좋은 공간을 물었다. 그는 “당연히 경의선 숲길”이라면서도 “추천할 장소가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짧은 고민 끝에 그는 “서울 강북의 모든 길”이라고 답했다. “강남에는 걸을 곳이 없지만, 강북은 한국의 궁궐이라든지 옛 집터, 미술관이 산재해 있잖아요. 곳곳의 골목들이 다 좋으니까요.”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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