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인터뷰>
오랫동안 현장서 체감 오염 실태 잘 알아
"눈에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심각성 몰라"
한국일보 '지옥이 된 바다' 문제 의식 공감
'네 탓' 못하게 부처·지자체 간 협업 활성화
"어선 사들여 해양 쓰레기 수거 투입할 것"
편집자주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피 흘리는 바다거북, 뱃속에 찬 쓰레기 탓에 죽은 향유고래. 먼바다 해양 생물들의 비극은 뉴스를 통해 잘 알려졌죠. 우리 바다와 우리 몸은 안전할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간 쓰레기로 가득 찬 바다를 찾아 다녔습니다. 동해와 서해, 남해와 제주에서 어부와 해녀 63명을 만나 엉망이 된 현장 얘기를 들었고, 우리 바다와 통하는 중국, 일본, 필리핀, 미국 하와이를 현지 취재했습니다. 지옥이 된 바다.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추적했습니다.
제주 서귀포가 고향인 강도형(54) 해양수산부 장관은 스스로를 ‘과학 다이버’라고 소개했다. 해양학자 출신인 그는 남극과 열대 지역인 마이크로네시아 등에서 해양생물을 연구하며 바다에 수시로 뛰어들었다. 앞마당 같은 제주 바다에는 몇 번이나 들어갔는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덕분에 강 장관은 해양 쓰레기 실태를 책이나 서류로만 공부한 게 아니라 오랫동안 눈으로 직접 보고 체감했다. 우리 바다의 쓰레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이해하는 이유다.
강 장관은 지난 9일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진행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본보의 ‘추적 : 지옥이 된 바다’ 시리즈를 꼼꼼히 읽었다며 “현장에 가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들을 기록한 보도라서 (해양 행정가로서) 매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해양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수도꼭지’를 잠가야 한다는 본보 제안에도 적극 동의한다고 했다.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거나 내륙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다음은 강 장관과의 일문일답.
-윤석열 정부는 2년여 전 출범하며 ‘청정한 바다’를 국정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금껏 성과를 꼽는다면.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54%를 차지하는 그물, 통발 등 폐어구만 놓고 보자. 이전에는 바다에 유실된 걸 줍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이제는 어구가 만들어져서 버려질 때까지 모든 과정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예컨대 지난해에는 ‘어구 생산∙판매 신고제’를 도입해 그물∙통발 등 제조업자가 생산, 판매 기록을 3년간 남기도록 했다. 어구가 얼마나 시중에 팔렸는지 알아야 바다에 가라앉은 폐어구 양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진한 점은 없었나.
“해양 쓰레기 정책은 하루아침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 길게 봐야 한다. 관련 법을 제·개정할 부분이 여전히 있다. 예컨대 어선이 조업 중 그물, 통발 등을 유실했을 때 빠뜨린 지점을 해수부나 해양경찰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하려고 한다. 어민들이 일부러 낡은 어구를 바다에 버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고기를 잡다가 불가피하게 그물을 끊어야 할 때 바다에 빠지는 상황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정보를 토대로 당국에 알려달라는 것이다. 만약 신고하지 않으면 페널티(불이익)를 줄 수 있다. 가령, 어촌 신활력 증진 사업(국비·지방비를 투입해 지역 어촌의 수산업 인프라·관광·주거·환경 등을 정비하는 사업) 대상지를 선정할 때 감점을 크게 매기는 방식 등이 가능하다. 해수부 장관 출신인 조승환 의원(국민의힘)이 수산업법 개정을 발의했는데, 유실 어구 신고 의무화 조항 등이 담겨 있다."
-눈에 보이는 해안 쓰레기는 잘 치우는 편이지만 먼바다에 가라앉은 쓰레기는 수거가 잘 안 된다.
"내년부터는 감척 사업(정부가 수산자원 보호를 위해 고깃배를 사들여 연근해 조업 어선 수를 줄이는 사업)을 통해 확보한 어선을 쓰레기 수거선으로 만들어 바다에 투입할 예정이다. 배를 판 어민들에게 수거선 운항을 맡겨 경제적으로 수입이 생기도록 도울 수도 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나왔는데 해양 쓰레기 예산 중 눈에 띄는 게 있나.
"우선, 우리나라에서 올해부터 세계 최초로 시행한 어구보증금제를 내실 있게 해나가려고 예산을 추가로 잡았다. 지금은 여러 어구 중 통발에만 1,000~3,000원의 보증금을 붙여서 팔고, 나중에 못 쓰게 될 때 이를 반환하면 보증금을 돌려준다. 내년부터는 자망(그물의 한 종류)과 부표에도 보증금제를 시범 실시하려고 30억 원을 편성했다. 폐통발을 반환하는 어민에게 보증금과는 별도로 700~1,300원을 더 주는 '폐어구 회수 촉진 포인트제' 운영을 위한 예산 2억 원도 잡았다."
-버려진 그물, 통발에 물고기나 꽃게 등이 걸려 죽는 '유령 어업' 피해가 심각한데, 정부가 피해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그래서 부경대학교 연구팀에 유령 어업 피해 현황을 파악해 저감 대책을 연구해달라고 용역을 맡겼다. 내년 상반기에 결과가 나온다. 지금까지는 전체 조업량의 10% 정도(4,100억 원)가 유령 어업 피해를 본다고 추산했는데, 이번에는 기존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바다 현장도 직접 조사해 더 정밀히 피해 규모를 알아볼 계획이다. 유령 어업이 어떤 해역에서, 어떤 어구 탓에 많이 발생하는지도 살펴볼 것이다. 분석 결과가 나오면 유령 어업 피해가 심각한 지역을 중심으로 폐어구를 집중 수거하는 등 맞춤형 대책을 마련하겠다."
-여름 집중호우철에 내륙 쓰레기가 강물을 타고 해안가로 흘러가 지역 어촌을 엉망으로 만든다. 그럼에도 중앙 부처끼리 또는 지자체 간 문제 해결을 위한 협업이 제대로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
"육상 쓰레기의 해양 유입은 기후변화와 맞물려 있다. 하천 쓰레기는 환경부가, 해양 쓰레기는 해수부가 담당하고, 여러 지자체도 엮여 있다. 그런데 세 주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더라. 그래서 장관 취임 후 가장 먼저 했던 일 가운데 하나가 5대 하천(금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한강)별로 관계기관 실무협의회도 만든 것이다. 해수부 지역 조직인 지방해양수산청과 환경부 산하의 각 하천 관할 환경청, 지자체 등이 참여해 하천 쓰레기의 해상 유입 문제를 논의한다.
-어민들이 습관적으로 쓰레기를 바다에 버린다는 증언이 적지 않다. 어민 교육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데.
"어민 의식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 다만 책상에 앉혀놓고 교육하기보다는 어민들이 직접 체험을 통해 쓰레기의 심각성을 체감해봐야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예컨대 지난 7월 '폐어구 수거 경진대회'를 열어 42개 어촌계 등이 열흘간 쓰레기를 주워 오도록 해서 시상했다. 어민 스스로 쓰레기를 주워 봐야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해양 쓰레기 정책을 펼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육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곳(바다)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바다를 '무한히 넓은 곳'이라고 생각해 쓰레기 버리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정책 당국 입장에서 가장 고민하는 지점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진 문제를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과학적 기법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심각성이 제대로 보이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뱃사람도 포기한 바다
늙은 어부의 고백
해양 쓰레기의 역습
세금 포식자가 된 쓰레기
국경 없는 표류
불편한 미래
살고 싶어요
국회와 정부가 나선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를 둘러보세요.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