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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입력
2024.09.09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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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부르는 대일 양보 외교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연상
국교정상화 60년 새로운 선언
과거사 반성·사과 빼놓을 건가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아~ 와타시노 고이와(아 나의 사랑은)~" K팝 그룹 뉴진스의 하니가 6월 말 일본 도쿄돔에서 부른 마쓰다 세이코의 노래 '푸른 산호초'의 후렴구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곳곳에서 이 노래가 들릴 정도로 한국에서도 큰 화제였다. '한일가왕전'이란 TV 프로그램에서 일본 가수들이 부른 노래도 온라인에서 동영상이 공유되며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K팝의 일본 열풍에 비할 바는 안 되지만, 한국에서도 일본 대중가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훈훈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연달아 발생했다. 7월 우리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찬성한 것을 시작으로, 역사관 논란이 있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KBS의 광복절 '기미가요' 방송 논란 등이 이어졌다.

특히 광복절 다음 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고 말한 것은 뒤통수가 얼얼한 충격을 줬다. 그는 "마음이 없는 사람을 억지로 다그쳐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 과연 진정한가"라며 일본에 더 이상 과거사에 대한 사과나 반성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3월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놓고 일본 기업 대신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배상하도록 결정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에 양보를 거듭했다. 반면 일본 정부의 과거사 인식은 전혀 변함이 없다. 문부과학성은 매년 3월 검정교과서를 발표할 때마다 일제의 만행을 지운다. 방위성과 외무성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계속하고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이어진다. '컵의 반 잔은 일본이 채울 것'이란 기대는 공허했다.

이런 한일 관계는 셸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연상케 한다. 나무는 모든 것을 주지만, 소년은 받기만 한다. 이런 관계를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20%대 국정 지지율에서 드러난다. '푸른 산호초'가 불리는 시대에 '친일 매국노' 같은 구시대적 표현이 다시 활개를 치는 이유다.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추진한다는 새 한일 공동선언도 걱정스럽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서 일본은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다. 그러나 2015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우리 아이와 손자, 후세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우게 해선 안 된다"고 선언한 이후, 일본 정부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새 공동선언에 그동안 미지근하게 반응했던 이유도 과거사 언급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고까지 했으니, 이제 일본도 반성이나 사죄 부담 없이 새 공동선언에 관심을 보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과연 정부가 어떤 내용을 구상하고 있는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결말처럼 우리가 모든 것을 주고 그루터기만 남아서는 안 된다. 철 지난 '반일'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양보 일변도의 대일 정책이 오히려 반일 역풍을 부르니 재고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가 대등한 관계에서 당당한 자세로 일본과 마주해야 국민도 마음 놓고 상호 교류할 수 있다.

미국 작가 셸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의 표지.

미국 작가 셸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의 표지.


최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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