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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된 만남, 우연한 만남

입력
2024.09.11 20: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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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휘영청 보름달이 뜨면 보고 싶은 얼굴이 떠오른다. 한가위 고향 가는 길이 막혀도 즐거운 건 '만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왕태석 선임기자

휘영청 보름달이 뜨면 보고 싶은 얼굴이 떠오른다. 한가위 고향 가는 길이 막혀도 즐거운 건 '만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왕태석 선임기자


며느리들의 눈물이 흥건한 옛말이 있다.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 근친은 시집간 딸이 친정에 가서 부모와 만나는 것. 화전은 꽃을 심어 가꾼 밭으로, 꽃놀이를 뜻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대문 밖에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던 시절, 시집살이의 고달픔이 잔뜩 묻어 있는 말이다. 잘못된 세상은 바로잡혔다. 지금, 아들의 소중한 짝인 며느리들은 집 안팎에서 능력을 맘껏 펼치고 있다.

한가위가 눈앞이다. 한가위 풍속 중 ‘중로상봉(中路相逢)’이 떠올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중로상봉은 한가위 무렵 멀리 떨어져 사는 일가친척이 중간 지점에서 만나 하루를 즐기던 풍속이다. 시집간 딸과 친정엄마의 비밀스러운 만남에서 비롯됐다. 그리워하던 모녀는 경치 좋은 산이나 냇가에서 만나 맛난 음식을 먹으며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걸어서 오고 가는 시간을 빼면 볼 수 있는 시간은 겨우 반나절. 그래서 붙은 이름이 '반보기'다. 애틋하기 그지없는 만남이다.

'상봉' 하면 이산가족이 생각난다. 1985년 추석 무렵, 남북 간 처음으로 성사된 이산가족 상봉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줬다. 그날 오랫동안 헤어져 살던 가족들 만남에 모두가 내 일인 양 울며 기뻐했다. 상봉은 약속한 시간에 정해진 곳에서의 만남이다. 상우와 같은 말이다.

약속하지 않은 만남도 있다. 조우와 해후다. 둘 다 우연히, 뜻밖에 만났을 때 어울린다. 그런데 조우와 달리 해후는 조건이 있다.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을 경우에만 쓸 수 있다. 엊그제 헤어진 친구를 우연히 시청역 지하도에서 만났다면 해후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럴 땐 조우라고 해야 한다. 20여 년 전 헤어진 연인을 길거리나 미술관, 기차 안 등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해후했다면 운명으로 얽힌 관계일 게다.

같은 목적으로 여럿이 한데 모이는 것은 회동이다. 회동은 만나는 사람의 수가 중요한데, 세 명 이상 모여야 쓸 수 있다. 둘의 만남에 회동은 어울리지 않다는 뜻이다.

상봉, 조우, 해후, 회동. 모두 우리말 '만남(만나다)’으로 통한다. 단어의 정확한 쓰임새를 모른다면 한자어를 쓸 이유가 없다. 잘난 척하다 오히려 망신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편하고 친근한 우리말을 쓰는 게 여러모로 좋다.

가윗날의 가장 큰 즐거움은 '만남'이지 싶다. 가족, 친척, 고향 친구들…. 가는 길이 막히더라도 즐겁게 떠나시라. 설렘이 지루함을 날려줄 테니.






노경아 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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