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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가득 찬 지층, 플라스틱 암석... 우리는 이미 '인류세'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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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가득 찬 지층, 플라스틱 암석... 우리는 이미 '인류세'를 산다

입력
2024.08.30 14:29
수정
2024.08.3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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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부산 세계지질과학총회]
산업화 이후 인간 활동, 지구 운명 바꿔
어느 나라서나 확인되는 인류세 증거들
공식 선포는 무산됐지만 연구 계속돼야

2022년 경기도의 한 지층 아래에서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등의 ‘기술화석’이 발견된 현장. KAIST 인류세연구센터 제공

2022년 경기도의 한 지층 아래에서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등의 ‘기술화석’이 발견된 현장. KAIST 인류세연구센터 제공

“쓰레기 매립지도 앞으로는 지질학적 지층으로 간주돼야 합니다. 매립지 영향으로 산사태를 비롯해 실제 지층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0일 오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4년 세계지질과학총회’의 ‘인류세’ 세션에 참가해 ‘폐기물 지층의 인류학적 중요성’을 발표한 남욱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말했다. 남 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곳곳에서 지진으로 땅속 쓰레기 매립지가 파손되며 환경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영구 동토층이 녹으며 메탄이 발생하는 것처럼, 무단 투기를 포함해 세계 곳곳의 쓰레기 매립지에서도 메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남 연구원은 “100% 인간 활동인 폐기물 때문에 지구가 바뀌고 있다”고 우려했다.

인류세(Anthropocene)는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을 바꾸는 지질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오존층 파괴의 원인을 밝혀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네덜란드 과학자 파울 크뤼천이 2000년 처음 제안했다. 급속한 산업화 시기 이후, 특히 퇴적층에 핵실험의 흔적인 플루토늄이 등장한 1950년 이후를 인류세의 시작으로 본다. 지질시대 명명 권한을 가진 국제층서위원회는 2009년부터 인류세워킹그룹(AWG)을 만들고 인류세를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정할지를 연구해왔다.

당초 이번 부산 지질총회에서 인류세가 홀로세(Holocene)를 이을 새 지질시대로 선포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세계의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지난 3월 층서위원회가 “인류세 도입은 성급하다”고 부결하면서 인류세는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아그니에슈카 갈루스카 폴란드 얀 코하노브스키대 화학연구소 교수가 30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세계지질과학총회의 인류세 세션에 발표자로 나서 폴란드 북서부 코워브제크 해변에서 발견된 총알 파편 암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부산=신혜정 기자

아그니에슈카 갈루스카 폴란드 얀 코하노브스키대 화학연구소 교수가 30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세계지질과학총회의 인류세 세션에 발표자로 나서 폴란드 북서부 코워브제크 해변에서 발견된 총알 파편 암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부산=신혜정 기자

그럼에도 이번 총회에서는 전 세계에서 연구된 인류세의 증거들이 활발하게 논의됐다. 아그니에슈카 갈루스카 폴란드 얀 코하노브스키대 화학연구소 교수는 폴란드 북서부 코워브제크 해변에서 발견된 총알 파편 암석을 소개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로 해변에 떨어진 황동 총알이 사암·석회암과 만나 새로운 물질이 됐다는 설명이다. 갈루스카 교수는 “최근 몇 년간 섬 연안에서 발견된 플라스티스톤(플라스틱 암석)과 마찬가지로 인류세의 예시”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인류세연구소장인 박범순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1930년대 이후 낙동강 하구 퇴적물에 중금속이 증가했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일제강점기 석탄 연소가 증가한 1931년, 국가 재건과 산업화가 본격화한 1961년, 1981년 퇴적층에서 수은을 비롯한 여러 중금속 농도가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1934년 녹산댐 건설 이후 퇴적물이 모래에서 진흙으로 바뀐 현상도 나타났다. 박 교수는 “유사한 사례를 일본, 중국은 물론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암석 '플라스티스톤'이 발견된 지역들. '리우웨이 왕, Plastistone: An emerging type of sedimentary rock(2023)'에서 인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암석 '플라스티스톤'이 발견된 지역들. '리우웨이 왕, Plastistone: An emerging type of sedimentary rock(2023)'에서 인용.

학자들은 공식 명칭 도입과 별개로 우리가 실제 인류세에 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자연 환경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증거와 인간 활동의 연관성을 밝히는 연구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세워킹그룹에 참여했던 프랜신 매카시 캐나다 브록대 지구과학과 교수는 “20세기 중반 급격한 산업화로 지구 환경은 그간 인류의 경험은 물론 심지어 마지막 빙하기의 경험을 뛰어넘는 변화를 겪고 있다”며 “이를 무시하거나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대신, 과학적 분석에 따라 논의하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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