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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개꿈에 개 없다

입력
2024.07.31 18: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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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지난 25일 "개판"이라는 말에 아수라장이 된 국회 본회의장. 가뜩이나 더운 날, 오해받은 개들의 한숨이 깊어졌다. 뉴스1

지난 25일 "개판"이라는 말에 아수라장이 된 국회 본회의장. 가뜩이나 더운 날, 오해받은 개들의 한숨이 깊어졌다. 뉴스1


개들의 한숨이 깊어졌다. “개판!” 지난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거칠게 쏟아진 말이다. 개들이 고깃덩어리를 차지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어지러운 상황을 떠올린 이가 꽤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더워 혀를 내놓고 사는 개들은 억울할 뿐이다.

개판을 개들이 마구 판치는 모습으로 알고 있다면 오해다. 개판은 개와 전혀 관련이 없다. ‘5분 전’을 붙이면 뜻이 더 명확해진다. ‘개판오분전’은 한국전쟁과 맞닿아 있다.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난 이들이 남으로 남으로 모여든 부산의 피란촌. 그나마 이곳에선 굶주린 피란민에게 밥을 나눠 줬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 배식하는 이는 솥뚜껑을 열기 전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을 뛰어다니며 이렇게 외쳤다. “개판 5분 전!”

개판은 솥뚜껑을 연다는 뜻이다. 개(犬)가 아니라 개(開)다. 큰 솥단지 위에 나무판을 덮어 밥을 지었기에 ‘널빤지 판(板)’ 자를 썼다. 굶주린 피란민들은 “개판 5분 전” 소리에 정신없이 몰려들었을 것이고, 그곳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을 터다.

‘5분 전’을 뺀 개판도 상태나 행동 등이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개꿈, 개나발, 개수작, 개죽음 속 ‘개’ 역시 멍멍이와 거리가 멀다. 헛되거나 쓸데없음을 더하는 말이다. 돼지꿈에는 돼지가 등장하지만 개꿈엔 개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어수선하게 꾼 꿈이 개꿈이다.

개떡은 맛도 모양도 별로인 먹거리다. 보릿겨 등을 반죽해 아무렇게나 반대기를 지어 찐 떡이다. 그래서 질이 떨어진다는 뜻의 '개'가 붙었다. 맛이 시고 떫은 개살구의 '개'도 같은 뜻을 더한다. 이 경우 상대어는 품질이 우수하거나 진짜를 뜻하는 ‘참’이다. 참뜻, 참사랑, 참흙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개꿀은 벌집에 들어 있는 꿀로, '개'는 야생 상태를 뜻한다. 개는 개고생, 개망나니, 개잡놈처럼 그 정도가 심하다는 뜻을 더하기도 한다. 개새끼 역시 사람을 욕하는 말로, 강아지와는 거리가 멀다. 보드라운 털에 앙증맞은 강아지는 개새끼가 아니라 새끼 개다.

요즘 정치판은 난장판이요, 아수라장이다. 난장은 오래전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던 마당이다. 시험 날, 전국에서 몰려든 선비들로 떠들썩하고 뒤죽박죽인 상태가 난장판이다. 아수라는 싸움을 좋아하는 귀신이다. 포악한 아수라들은 모이기만 하면 싸워 혼란에 빠졌는데, 그런 상태가 바로 아수라장이다. 개들 보기 부끄럽다.




노경아 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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