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채무에 복잡한 매각 절차
인수자 못 찾아 대부분 방치
대학 문 닫자 지역 상권도 몰락
강진군 등 지자체 활로 모색도
지난 22일 전남 나주시 남평읍. 2000년 폐교된 광주예술대학교 교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이곳은 인근 고등학교와 부지를 공유하고 있지만 잘 정돈된 고등학교 교정과 달리 버려진 폐건물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건물 1층 유리창은 곳곳이 파손돼 나무판자로 덧대두었고, 외벽엔 습기가 차서 이끼와 곰팡이가 피었다. 건물 곳곳엔 잡초가 무성했다.
1993년 세워진 광주예술대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문을 닫은 4년제 대학이다. 한때 디자인학과, 동양미술학과, 음악학과, 무용학과, 문예창작학과 등 모두 5개 학과에 200명이 다녔지만, 2000년 5월 재단 비리로 문을 닫았다. 하지만 24년이 지난 지금까지 뚜렷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채 흉물로 방치돼 있다. 저출생 여파, 재단 비리 등으로 대학들의 폐교가 잇따르고 있다. 광주예술대처럼 방치된 폐교 대학(전문대 포함)이 전국에 22개나 되지만 대부분 뚜렷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버려져 지역의 흉물이 된 상황이다.
학교 문 닫자,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주변 상권
대학이 문을 닫으면 그 여파는 사방팔방으로 미친다. 지난 10일 찾은 전남 강진군 성화대 인근엔 대학교와 함께 문을 닫은 폐건물이 즐비했다. 대학 구성원들이 먹여 살려 온 식당과 원룸촌이 도미노처럼 무너진 탓이다. 상권이 무너지면 부지 가치가 폭락하고 유령도시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강진군에 거주하는 강영석(75)씨는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때만 하더라도 노래방이며, 당구장, 오락실마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며 "지금은 모두 문을 닫아 팔리지 않은 폐허만 남게 됐다"고 씁쓸해했다.
대학이 폐교되면 체불임금 등의 채무가 학교 매각의 발목을 잡는다는 게 재단들의 주장이다. 학교법인이 기본 재산으로 갖고 있던 땅과 건물을 팔아 채무를 변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 폐교 대학은 지방 중소도시에 있어 가치가 낮다. 대학 부지는 교육용 시설로 등록돼 건폐율이 20%에 불과한 것도 걸림돌이다. 건폐율이 80%인 수익용 시설로 바꾸려면 건축물 용도 변경을 거쳐야 하는데, 번거로운 절차까지 감수하면서 이미 상권이 무너진 대학 캠퍼스를 매입할 인수자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제주 서귀포시 하원동에 위치한 30만㎡ 규모의 옛 탐라대학교 부지와 학교 건물은 10년 넘게 흉물로 방치됐다가 지자체가 개입하면서 겨우 재활용 방안을 찾았다. 탐라대는 경영난을 겪다 부실대학 구조조정을 위해 지난 2011년 같은 학교 법인이 운영하는 제주산업정보대와 제주국제대로 통폐합돼 사라졌다. 방치된 학교 부지를 매입한 것은 지자체다. 제주 미래 발전 토대를 위한 공유자산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제주도는 2016년 415억 원을 투입해 부지 31만2,217㎡와 건물 11개동(3만316㎡)을 매입했다. 도는 이후 학교 부지 활용을 위해 국내외 대학 유치에 나섰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도 관계자는 “옛 탐라대 부지에 외국대학을 유치하는 것은 대학이 한 곳도 없는 서귀포 지역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기 때문에 많은 공을 들였지만 실패했다”며 “학교 부지가 크고, 한번 임대되면 장기간 사용이 이뤄져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 대학 유치 협상 과정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폐교 재활용 '강진군 실험' 주목받는 이유는
지역 흉물로 방치된 대학 공간을 재활용할 해법은 없을까. 수백억 부지를 매입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 탓에 대부분 구상 단계에 머무는 것으로 보인다. 전북 군산시는 서해대를 매입해 활용 방안을 찾으려 애썼지만, 210억 원에 달하는 매입비를 마련하지 못해 결국 백지화했다. 경북 경산시는 대구미래대학교 부지를 일부 매입해 청소년수련관과 육아지원센터를 건립하겠다는 구상을 수립했지만, 지난 2022년 3월쯤 해당 부지에서 불법 폐기물이 나와 2년째 소송전을 벌이는 형편이다. 처리비용만 20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대학 유치를 추진하다 연거푸 고배를 마신 제주도는 탐라대 부지에 대학 유치 대신 그린수소 관련 기업과 항공우주(UAM), 바이오산업 등 미래 성장 기업을 유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남 강진군은 최근 폐교 대학인 성화대 부지를 매입해 '청년 사업가 거점 공간'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자체가 폐교 대학을 매입, 재활용하는 구상이 실행 단계까지 온 것은 강진군이 처음이다. 폐교 부지를 모두 매입한 뒤 330억 원을 들여 스타트업 기업, 인큐베이팅 지원, 드론 특별자유화 구역 지정 등 청년 창업가 커뮤니티 및 정주 공간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지역까지 내려올 스타트업 기업을 찾는 일이 여전히 고민거리다.
정은지 강진군 미래산업팀장은 "넓지만 외진 곳에 있다는 것이 그간 대학 폐교 부지를 해결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이라며 "거리와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은 4차 산업 기업을 집중 유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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