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전쟁 참전 유공자' 자녀에 공직 30% 할당
"'5선' 하시나 총리 지지층에 특혜" 시위 번져
군병력 투입 후 무력 진압… 인터넷 차단하기도
방글라데시 정부가 '독립 유공자 자녀 공무원 할당제'가 촉발한 대규모 청년 시위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100여 명이 사망하는 등 유혈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누적된 청년 실업으로 인한 분노가 촉발시킨 시위는 올해 5번째 집권에 성공한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의 독재 행보에 반발하는 반(反)정부 시위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다급한 상황에 방글라데시 대법원이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시위를 가라앉힐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정부 강경 진압에 133명 사망"… 공무원 할당제 뭐길래
AFP 통신은 21일(현지시간) 주요 병원을 통해 자체 집계한 결과 방글라데시 전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로 지금까지 151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사망자 절반가량은 최루탄·고무탄 등 경찰 발포로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정확한 사상자 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시위는 방글라데시 법원이 최근 정부의 공무원 할당제 폐지 결정을 무효로 되돌린 데서 촉발됐다. 공무원 할당제는 1971년 파키스탄과의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자녀에게 공직의 30%를 할당하는 정책이다. 과거 반대 여론에 2018년 폐지됐던 정책인데, 법원이 다시 '문제가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그러자 청년들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었다. 방글라데시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고 안정적인 정부 일자리를 놓고 매년 대학 졸업생 수십만 명이 치열하게 경쟁한다. 청년 실업률이 40%에 육박하는 방글라데시 청년들의 분노에 할당제가 불을 지핀 셈이다.
특히 할당제로 특혜를 받는 독립 유공자들은 대부분 집권 여당 지지층이라고 AFP는 분석했다. 하시나(76) 총리는 방글라데시 '건국의 아버지'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 초대 대통령의 딸이다. 그가 지지 기반을 공고히 다지려 특정 집단에 이익을 몰아주고 있으며, 거수기로 전락한 사법부도 동조했다는 게 시위에 나선 청년들의 주장이다.
'5선' 하시나 총리 퇴진 요구로 번져
정부의 선택은 무력 진압이었다. 전국에 통행금지령을 발령하고 치안 유지를 위해 장갑차 등 군병력을 배치했다. 또 대학 등 각종 기관을 폐쇄하는가 하면 "잘못된 정보 확산을 막겠다"며 국토 전역에서 인터넷 접속을 막았다. 이로 인해 주요 언론사 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먹통이 됐다.
하지만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시위대는 전국 주요 도로를 봉쇄하고 국영 방송사와 경찰서 등 주요 정부 시설에 불을 질렀다. 지역 교도소를 습격해 수감자 수백 명을 탈출시키기도 했다. 중앙은행과 경찰청 홈페이지에는 해킹 공격을 가했다.
특히 유혈사태가 벌어진 후로는 학생 시위를 넘어 하시나 총리 퇴진 운동으로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세계 최장수 여성 정부 수반' 타이틀을 달고 있는 하시나 총리는 올해 1월 야권의 보이콧 속 치러진 총선에서 5선에 성공했지만, 이 과정에서 정적 탄압과 부정선거 논란이 제기된 상태다. 시위에 참석하고 있는 타흐미드 호세인은 미국 CNN방송에 "더 이상 할당제에 대한 시위가 아닌, 권위주의 정부에 반대하는 인민 운동"이라며 "학생을 향한 발포는 적절한 투표시스템 없이 권력을 유지해 온 독재 정부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시위가 격화하자 방글라데시 대법원은 이날 정부안을 대폭 조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AFP에 따르면 대법원은 전체 공직 중 93%는 기존처럼 능력에 따라 배분하고 5%만 독립 유공자 자녀에게, 2%는 소수 민족과 장애인 등 취약 계층에게 할당하는 안을 제시했다.
다만 시위대가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 시위 단체 대변인은 "대법원 판결은 환영하지만 정부가 우리 요구(할당제 폐지)를 받아들일 때까지 시위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AFP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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