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안전공단 자격유지검사장 가보니]
서울에 단 두 곳, 65세 이상 운전사 '빽빽'
시험 변별력 낮고 응시 횟수 제한도 없어
"인지·신체 능력 과학적 판단 항목 마련"
지금부터 번호를 부를 테니 접수하러 나와주시면 되겠습니다.
12일 오전 서울 노원구 한국교통안전공단(공단) 노원자동차검사소 2층. 유선 마이크를 든 직원의 말에 아침 일찍부터 몰려든 운전 기사 50여 명이 일제히 손에 쥔 번호표를 들여다봤다. 버스나 택시, 화물차를 모는 65세 이상 고령 운수업 종사자들은 이곳에서 정기적으로(65~69세 3년 주기, 70세 이상 1년 주기) 자격유지시험을 치러야 한다. 단, 택시나 화물 기사의 경우 의료적성검사로도 대체 가능하다. 고령 기사 수가 늘면서 검사소는 매일 북적인다. 많게는 100여 명까지 몰려 기사들은 헛걸음을 하지 않기 위해 새벽같이 줄을 선다. 택시 기사 장모(66)씨는 "오전 9시에 딱 맞춰 오면 안 된다고 들어 번호표를 미리 뽑아 두려고 새벽부터 서둘렀다"며 "택시 운전은 오후부터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고령 운전자 검사장 '태부족'... 공단, 신설 검토
고령화 추세에 맞춰 고령 운수업 종사자가 가파르게 늘자 공단이 서울에 검사장을 하나 더 마련하는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매일 225명, 57명을 각각 감당하는 기존 서울 검사장 2곳(노원구·마포구)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공단에 따르면 자격유지검사(의료적성검사 포함) 대상 인원은 코로나19로 인해 2021년 8만2,786명으로 떨어졌을 때를 제외하고 매년 10만 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엔 12만1,931명으로 급증했다.
기자가 찾은 노원 검사소 역시 업무 시작 한 시간 전인 오전 8시부터 고령 기사들로 빽빽했다. 마포 검사장의 경우 온라인 예약만 가능한데 순식간에 마감된다. 이날 기준, 마포 검사장 온라인 예약은 8월 8일까지 한 자리 빼고 다 찼다. 공단 관계자는 "운전기사 인구가 많은 서울에 특히 많이 몰리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공단은 검사장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따로 부지를 조성하지 않고 서울 송파구 교통회관 1층에 마련할 예정이다. 하지만 새 기기를 들이는 게 아니고 지방 검사소(강원 7대·경남 14대)에 있던 기존 기기를 옮기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시험의 변별력이다. 자격유지검사는 신호가 바뀔 때 얼마나 빨리 브레이크를 밟는지 등 7가지 운전능력을 평가한다. 조이스틱, 누름 버튼,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로 구성된 검사기기를 이용해 화면을 보며 조작하는 방식이다. 택시나 화물차를 직접 운전하는 과정이 없어 실제 환경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최하 등급(5등급)이 2개 이상이면 불합격인데 2020년부터 합격률은 매년 96%를 넘겼고 지난해엔 98.5%에 달했다. 이마저도 탈락하면 2주 뒤 재검사를 치를 수 있고 횟수 제한도 없다. 지난해 처음 응시했다는 택시기사 유모(66)씨는 "솔직히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최근 시청역 역주행 사고로 9명을 숨지게 한 버스 운전기사 차모(68)씨도 이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퇴직 후 다시 운전대… "객관적 검증 중요"
보다 세밀한 검증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더구나 한국은 업종 구조상 고령 운수업 종사자 비중이 높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진입 문턱이 낮고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다는 장점에 은퇴 후 직업으로 운전대를 잡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3월 퇴직한 뒤 법인택시 기사 취업을 알아보고 있는 김광열(72)씨는 "아직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느껴 좀 더 벌어야 한다"고 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국토교통부는 자격유지검사 판정 기준 강화안을 9월까지 마련할 방침이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은퇴 후 일을 그만둘 수 없는 건 노인 빈곤율 1위인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이라며 "운전은 생명과 직결되는 사안이니 고령 운전자의 인지·신체 능력을 과학적, 객관적으로 판단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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