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주의 '동물복지 이야기'
지난 6월 17일, 대구시에 위치한 ‘아이니 테마파크'라는 지하 실내동물원에서 방치되던 동물들이 인근 민간 동물원으로 옮겨졌다. 아이니 테마파크가 파산을 신청하면서 동물들은 경매에 부쳐졌고, 경매에 참여한 동물원이 약 1억3,000만원을 들여 동물들을 매입했다고 한다. 사자를 비롯한 200마리 이상의 동물들은 순차적으로 새로운 시설로 옮겨진다고 한다.
아이니 테마파크는 지난해 여름 이른바 ‘갈비뼈 사자’ 학대 논란이 있었던 부경동물원을 자회사로 둔 실내동물원으로, 동물의 시설이나 관리 면에서 부경동물원과 다를 바 없는 시설이었다. 심지어 이 실내동물원은 코로나19가 유행하던 2020년에는 경영난을 호소하며 한 유튜버로부터 생닭 100마리를 기부받기도 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는 당시 기고한 칼럼을 통해 이곳이 시민들의 기부를 받으며 명맥을 유지해야 할 곳이 아니라 문을 닫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부경동물원이나, 아이니테마파크의 경영난이 심화될 때까지 어떠한 공적 대응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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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동물원’ 쏟아질 텐데.. 멸종위기종 책임져야 할 국가는 뒷짐만
부경동물원이 논란이 되는 동안 휴원 상태였던 아이니테마파크에 있는 동물들도 구조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됐었다. 그러나 정부는 ‘(동물원 동물들은) 사유재산에 해당한다’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나마 대구시가 동물 사체가 방치된 현장을 점검하고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무혐의로 끝났다. 사업자가 운영비를 납부하지 못해 동물이 법원에 압류되지 않았더라면 동물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지 아무도 모른다. 국제적 멸종위기종 보호의 책임은 엄연히 국가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민간에서 운영하는 동물원의 매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정상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앞으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애초에 실내 단칸방에 사자, 호랑이를 전시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방치한 것이 문제였는데, 다행히 2022년 12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었다. 개정된 취지대로 법률이 운용된다면 아이니테마파크같은 시설은 신규로 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기존 등록된 시설은 5년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2028년까지 기준을 갖춰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열악한 동물원이 아이니테마파크 한곳만 있는 게 아니다. 경기 부천시와 대전시 등 비슷한 유형의 시설들이 전국 도처에 있다. 법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런 곳은 가면 안 되는 곳’이라는 시민 인식이 확산돼 관람객이 줄면 도태될 가능성이 높은 시설들이다.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수많은 동물이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예방하고 대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동물원수족관법이 개정되면서 허가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행정처분을 3차 이상 받거나, 동물학대 등 법을 위반해 조치 명령을 받았는데 이행하지 않는 경우 동물원 허가 취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마련되었다. 그런데 허가를 취소한 경우 동물을 정부가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 조항은 법 개정 과정에서 누락되었다. 추가적인 법 개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보호가 필요한 동물이 생겼을 경우를 대비한 시설도 필요하다. 새로운 시설을 짓는 것이 당장 어렵다면, 공영동물원들이 동물을 증식해 늘리는 대신 보호가 필요한 동물을 수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부경동물원의 사자 ‘바람이’가 청주동물원으로 이송된 것이 좋은 예다. 개정된 법은 권역 내 동물원의 질병관리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거점동물원’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환경부장관이 긴급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야생동물의 보호’를 거점동물원의 업무 중 하나로 명시했다. 이러한 업무를 거점동물원뿐 아니라 전국 공영동물원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대상을 확대하고,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실태조사를 통해 유예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동물을 감당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
시민들은 '동물원은 종 보전 기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법 개정으로 ‘동물원·수족관 검사관제’라는 새로운 제도가 생겼다. 동물원, 수족관에 대한 검사 지원이나 사육환경의 적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전문 검사관을 지정한 제도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검사관 제도를 활용해 동물복지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에 시설을 점검하고 조치 명령을 내리는 등 적극적인 관리 감독을 시행해야 한다.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동물원을 무분별하게 늘리지 않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야생동물을 대하는 방법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조사대행 :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19%p) 결과 응답자의 53%가 동물원이 변화해야 하는 방향으로 ‘야생에서 살 수 없는 동물의 보호소 역할’을 꼽았다.(1,2순위 응답 합산) ‘오락과 재미를 위한 기능 강화’라는 응답은 8.6%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점차 없어져야 한다’는 응답은 2022년 조사보다 6.3%p 증가했다.
지방자치단체든, 민간이든, 수익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동물원을 설립하는 것을 방조한다면 결국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동물만 늘어나게 될 것이다. 동물원이 동물을 책임지지 못해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면 원인을 제공한 동물원이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가 필요하다. 야생동물을 돌보는 일에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고, 어떤 결론을 내더라도 동물에게 완벽한 ‘해피엔딩’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을 더 늦기 전에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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