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 국방물자구매과 직원들
“면도기, 로션, 활동화… 장병들이 전역할 때 쓰던 보급품을 다 가지고 가게 해봅시다!”
정치인들과 각급 기관장, 단체장들이 현충원을 찾는 호국보훈의 달인 6월. 이달 초 정부대전청사 에 자리 잡은 조달청 국방물자구매과 사람들은 이런 다짐을 했다고 한다. 전역 신고 때 입은 전투복을 제외하면 ‘전리품’ 정도로 깔깔이(방한내피) 하나 챙겼을 뿐, ‘거저 줘도 안 한다’는 열악한 보급품에 대한 기억이 있는 이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라를 지킨 이들의 공훈에 보답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겐 병역의무를 수행 중인 지금의 군인들이 더 중요하다!” 김명균(54) 과장, 김민지(55) 서기관, 권수헌(52) 사무관, 이형진(44) 주무관 등 20여 명의 국방물자구매과 직원이 결의의 주인공이다. 군 장병들이 먹고 입고 쓰는 국방상용품의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민하는 이들을 지난 20일 대전청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들은 가장 먼저 보여준 보급품은 면도기. 김 과장은 “지금까지 총액계약으로 물품 구매가 이뤄지다 보니 덤핑 경쟁이 벌어졌고, 납품 조건은 충족하지만 녹이 슬거나 절삭력이 떨어지는 등 품질 저하로 악성 민원 물품 상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물건"이라며 면도기에 대해서도 다수공급자계약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수공급자계약 방식은 2020년 7월 방위사업청으로부터 국방상용품에 대한 공급 업무를 넘겨받은 조달청이 복수(다수)의 업체들과 계약을 맺어 나라장터 쇼핑몰에 입점시키고, 육해공 등 각급 부대가 이곳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 방식이다. “지난달 아들을 군대 보낸 과장님의 사심 가득한 구매 정책”(김 서기관)이라지만 이미 다수공급자계약은 다양한 물품에서 이뤄졌고, 수요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한 이 계약 방식은 확대되는 중이다.
올해 면도기 조달 예산은 22억 원. 50만 국군 장병들을 1년 동안 말쑥하게 해줄 면도기 구매금액으로 적지 않은 예산이지만, 면도를 하다 턱이 베이는 ‘비전투 손실’과 사기 저하를 고려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김 과장은 요즘 상황을 “상부에서 주는 대로 군말 없이 받아서 사용해야 했던 군대에서, 좋아하고 필요한 것을 직접 골라 쓰는 군대로 바뀌는 중”이라며 “활동화, 급식, 각종 피복 등 지난해 조달청이 공급한 물자는 3,112품목에 이른다”고 말했다. 조달청의 보급품 조달 방식이 인기를 끌면서 2021년 2조1,000억 원 수준이던 조달청 군수품 공급실적은 2022년 2조8,000억 원으로 급증했고, 작년엔 3조1,000억 원을 넘겼다. 올해도 그 이상을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장병들이 영내에서 더 많은 ‘사제품’과 같은 수준의 보급품을 쓰게 될 것”이라는 게 이 주무관의 귀띔이다. “러닝화와 트레일화 등 두 종류로 지급되는 활동화도 나이키, 아디다스, 휠라, K2, 트렉스타, 블랙야크 같은 제품으로 교체가 될 겁니다.”
그러나 해당 브랜드의 상품 가격은 정부가 책정해놓고 있는 예산(러닝화 3만 원, 트레일화 5만 원) 범위 밖임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김 과장은 “면도기, 로션 등등의 업체들에 ‘미래 고객을 잡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는데, 그게 주효했다”며 “백팩 두둑하게 쓰던 물건을 가지고 집으로 가는 전역 장병들이 많아지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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