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용맹하게, 주도하는"
대한축구협회가 1년여 준비 끝에 내놓은 한국축구 기술철학이다. 근본적 방향성 없이 되는대로, 우왕좌왕 움직인다는 그간의 비판을 의식한 것인데, 축구계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새로운 내용이 없을 뿐 아니라 눈에 띄는 실천방안도 없어서다. 일각에선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을 앞두고 보여주기식 행정을 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축구협회는 20일 서울 축구회관에서 '대한민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담은 한국축구 기술철학 발표회'를 열었다. 협회는 "2022년 중반부터 협회 내부에서 우리만의 축구철학을 정립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어 작년 1월 기술본부 내에 기술기획팀을 신설하고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협회가 제시한 한국 축구 지향점은 크게 3가지다. △세계 축구 주도 △세계적인 선수 육성 △축구 팬을 위한 영감 등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아시아 1위를 탈환하고 △2033년까지 세계 10위권에 진입하면서 동시에 △월드컵 4강 이상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목표 달성 방안으로 제시된 건 '빠르고, 용맹하게, 주도하는' 기술철학과 관련된 게임모델 정도다.
문제는 현재 한국 축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나 사과 없이 이상적인 목표와 불투명한 실천방안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 축구는 64년 만의 우승을 목표로 했던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졸전 끝에 준결승에서 탈락해 '아시아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데 이어 선수단 갈등으로 세계적 망신을 당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도 지난 3월 태국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3차전에서 무승부를 거두며 23위로 떨어졌다. 아시아 국가로 한정할 경우, 1위 일본(18위)과 무려 5계단 차이가 난다. 2위 이란(20위)과도 3계단이나 떨어져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협회는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협회가 매번 이런 식으로 뜬구름 잡는 기술철학만 만드니 현장에서 적용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며 "기술철학 발표에 앞서 위기에 처한 한국 축구를 돌아보며 오답노트를 쓰는 시간부터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이 임박한 시기에 기술철학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다른 축구계 관계자는 "기준 없이 선임했다는 지적을 피하려 절묘한 타이밍에 발표한 것 같다"며 "새 감독 선임 과정에서 이 기술철학이 얼마나 반영됐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협회는 이달 말쯤 새 감독 선임 작업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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